'이러다 죽지.'

그땐 그랬다.

직장생활 1~2년 차였던가, 토요일에 퇴근하자마자 양육 모임을 하고 전폭(전도폭발)을 하고 저녁에 조장 모임을 연달아 했을 때였다. 조장 모임 소그룹을 인도하려고 앉았는데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성경 공부 모임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서 몸이 재충전되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쉽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다 죽지.'

그때도 그랬다.

부교역자로서 바쁜 일정을 달리면서, 나이와 성별을 떠나 사역자 중 가장 체력이 좋았는데, 그때는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이 알았다. 이러다 그냥 승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때, 어느 권사님이 영양제 한통을 주셨다. O메가369.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예전 컨디션으로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다른 것은 복용하지 않아도 그것만은 챙기려 한다. 그런데 이후로 O메가369를 잘 보지 못한다. O메가3을 대신 복용한다. 차이가 뭘까.

역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하지만 사람은 죽기도 한다. 교회에서 가장 건강해 보이고, 교회 일에 가장 전념하시고 수고하시던 장로님이 교회 건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암에 걸려 몇 달 만에 뼈만 앙상히 남은 채로 소천하셨던 적이 있다. 이 기억은 인생에 깊이 새겨진 아픈 흔적 중 하나다. 교회의 어두운 그림자 앞에서도 함께 힘썼던 좋으신 장로님이었기에 이후의 교회 일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 폴 칼라니티 지음 /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펴냄 / 284쪽 / 1만 4,000원

불현듯 사고가 우리를 엄습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를 비롯한 주변 누군가의 죽음으로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질병도 안개처럼 어느 순간 우리 삶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좀먹고 무너뜨리고는 한다. 강해 보이던 금속도 어느 순간 녹이 슨다. 녹이 슬어 손가락의 작은 힘만으로도 바스러지는 경우가 있다. 질병은 종종 그렇게 우리 육체뿐 아니라 우리 삶을 모래성처럼 무너뜨린다.

죽음을 동반한 질병은 우리가 세웠던 인생의 많은 플랜과 기대를 함께 무너져 내리게 한다. 무엇보다 삶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 그렇게 떠나는 모습을 보면 더욱 허망함을 느낀다. <숨결이 바람될 때>(흐름출판) 저자가 그렇다.

저자는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 해를 마치고 성공을 위해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도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되씹고, 그것을 자신의 인격에 체화했던 저자가 육신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이 무력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불치병은 낭만이나 순애보의 도구로 사용돼 애틋하게 다가오고는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곁에 있는 암은 우리 삶에 무거운 짐이 되어 우리가 무릎 꿇고 쓰러질 때까지 우리를 내리누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감상적 낭만에 빠지지 않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 저자도 그렇다. 그는 자기 삶에 최선을 다했고 의사로서 성실하게 살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앞날의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죽음은 그 모든 것을 리셋시킨다. 아니, 지워 버리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과학도로 살면서 어릴 적 신앙도 비합리적이라는 이름으로 무용하다 생각했는데, 죽음과 마주하면서 이성과 합리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는 교리적 접근도 아니고, 풀 수 없는 죽음과 삶의 문제를 앞에 둔 인간이 갖는 무력감과 초월자에 대한 도움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문제가 저자의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의사로서 죽음을 몰고 오는 질병에 다가가기도 하고, 의사가 아닌 환자 입장에서 질병을 보기도 한다. 또한 질병을 넘어 자신이 꿈꿔 왔던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데, 어느 순간까지는 그것이 성공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을 이어 가거나 이겨 내는 것도 사람 손으로 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결국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죽음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 조우를 기록하기 위해 썼던 글은 그의 손이 아닌 그가 평생 같이하고 싶었을 아내에 의해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렇지만 그 아픔에서 우리는 삶을 자각하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혜안을 갖는다. 죽음 앞에서, 그저 죽음을 회피하거나 삶을 연장하는 싸움에만 몰두하는 많은 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그렇게도 회피하는 죽음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고개를 돌리고는 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사는지, 자신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정의한 삶에서 얼마나 자신이 해석한 대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만일 그것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내가 살아가려 힘쓰는 일과 질병과 죽음을 피해 건강한 육신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문양호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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