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브렌든선교연구소 블로그에 실린 구균하 신부의 글(원제: Fresh expressions of churches)입니다. 허락을 받고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 of church)'은 영국성공회가 낸 보고서 '선교 중심의 교회(Mission-shaped Church)(<선교형 교회>, 비아 역간)'와 최근 영국 감리회와 성공회에서 사용하는 새로 만들어진 용어다. 새로운 회중을 모으고 교회를 이루는 것(planting)과 기존 교회 안에서 다른 기풍과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을 묘사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다른 기풍과 스타일이라고 한 것은 다른 그룹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단일한 대표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여하는 이들과 맥락에 따른 다양한 접근이 있을 뿐이다. 강조점은 기존 교회처럼 어디에나 있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어떤 형태든 맥락과 상황에 적합한 교회를 세우는 것(planting)에 있다.

어떤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은 기존 교회와 매우 다르기도 하다. 폴제스해변에 있는 서핑하는 이들의 교회, 스케이트파크에 있는 젊은이들과 그리고 스키 타는 사람을 위한 교회 등이 있다. 다른 예는 좀 알려진 형태지만 익숙한 구조는 아니다. 카페·술집·교회 또는 학교 안에 있는 교회를 들 수 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전 연령대 사람들(아이들, 젊은 부부, 은퇴자까지)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교회를 볼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새로운 표현은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서핑하는 이들의 교회는 서핑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들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그러나 서퍼들이 교회를 이루는 데 목적이 있다. 많은 교회가 같은 지역에 사는 이웃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네트워크 기반' 저변에는 중요한 성서적 원칙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원칙은 1고린(고린도전서)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원칙은 복음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선포될 때 하느님은 일부 신자를 넘어 교회를 성장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바울로는 복음의 씨앗을 심었고, 다른 사람은 물을 주었지만 하느님께서 키워 주셨다. 1고린 3:6-9에서는 하느님께서 키워 주신 것이 교회라고 말한다. 또한 바울로는 새로운 신자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한 몸'이 되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원칙은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를 얻기 위해 우리 세상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선교사는 자신들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문화에 들어가야 한다(1고린 9:19-23). 그리고 새로운 신자를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걸림돌(1고린 1:18-25)로 마주해야지 새로운 신자가 교회 문화를 걸림돌로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신자는, 그들이 낯설게 느끼는 교회 문화 안으로 세상의 문화를 가져오기보다 문화 안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이들이 될 수 있다.

'새로운 표현들'을 실천하는 조직은 지난 10년 동안 발전했다. 이 조직은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 of church)에 관한 실제 정의가 형성되었다. 이 말은 완성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은 문화의 변화를 맞아, 아직 교회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우선적으로 형성한 교회 형태다.

- 경청, 봉사, 성육신의 선교, 제자 양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 복음과 교회의 지표, 교회가 자리한 문화적인 맥락에서 성숙한 교회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선교적/선교의/선교 지향의/선교 중심의 'Missional'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우선적으로 교회 구성원이 아닌 이들을 위한 것이다. 교회 경험이 없거나, 교회에 한두 번 가 봤거나 과거에 경험했던 교회로 돌아가려는 의향이 전혀 없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모르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교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영국에서는 적어도 성인의 3/4 그리고 어린아이·젊은이 대부분이 교회와 정례적인 관계없이 평생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이들은 커다란 선교의 장이다.

상황적/맥락적 'Contextual'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우리의 변화하는 문화'를 향한 응답이다. 이 운동은 교회가 복음과 문화, 두 요소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고, 여기에 다가가려 시도하는 것이다. 이 말은 문화에 순응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문화에 다가가기에 적절한, 문화를 변용하기에 적절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양성하는/양성을 지향하는 'Formational' - Educational

제자도(Discipleship)는 교회의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 of church)에 있어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단순히 봉사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어떤 행사에 참석하는 이들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교회적/교회 중심의 'Ecclesial'

교회의 새로운 표현은 교회 설립 또는 새로운 회중을 뜻한다. 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방법이 아니며 기존 회중들 사이에 새로운 회중을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름만 바꾼 구태의연한 전도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것은 어중간한 보여 주기거나, 기존 교회 공동체의 양적인 성장을 위한 중간 단계 촉진용 프로그램이 아니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의 표준 모델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동일할 수 없고 동일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교회의 새로운 표현은 과정이며, 다가가려는 네트워크나 공동체에게 귀 기울임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한다. 이것은 전략적인 계획이라기보다 식별이다. 성령의 기회를 찾고 하느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식별이다. '경청' 뒤에 봉사가 있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봉사보다 경청이 앞서야 한다. 복음을 전하려는 그리스도인은 먼저 스스로가 복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한 진정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성육신적 선교'의 시작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른다는 의미이며 공동체 안에서 복음화을 위해 봉사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제자를 양육할 수 있다.

우리가 마지막에 결정해야 할 것은 예배이다. 새로운 표현들은 회중을 모으는 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예배하는 회중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희망을 불어넣는 것도 아니다! 경청이 첫 번째다. 예배 스타일에 관한 결정은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이다.

신생 교회들과 신생 회중들이 있다. 그들은 성숙할 만큼 많은 시간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성숙한 표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의 지표들은 하나이요,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것(one, holy, catholic, apostolic)이었다. 그러나 성숙은 과거의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문화적인 맥락에 적절해야 한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이라는 말은 모든 지역 교회를 '교회의 표현'으로 본다. 어떠한 지역 교회도 온전하게 그리스도와 복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따라서 각 지역 교회는 다른 상황이나 은사를 가진 다른 지역 교회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별히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교회의 기존 형태를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서로가 기존 교회와 경쟁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상황을 놓고 물려받은 유산을 가진 기존 교회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 모두가 필요한 하느님의 교회에 관한 경륜(경제)을 지칭하는 말로 '혼합경제 교회(the mixed economy church)'라는 말을 사용한다. 혼합경제 교회에 대해서는 조만간 설명하겠다.

지금은 도전과 격동의 시간이다. 대부분 교단이 여전히 지금의 문화에 깊이 다가가지 못할 오래된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는 새것과 옛것, 모두가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구균하 / 신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브렌든선교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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