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의 어버이 되시는 하나님, 좋은 날 귀한 지체들과 교회로 함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태껏 소수자로 살아 왔고 여전히 상처가 아물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멸시와 차별 앞에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가기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이에게 응당 누려야 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언제 주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이들의 눈빛과 소리에 주눅이 들어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영으로 채워져서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우리도 하게 되길 원합니다. 자유와 해방을 담대히 선포하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울고 사랑이 필요한 자리마다 사랑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담담한 목소리에서 애절함이 느껴졌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결코 차별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예배를 드리는 내내 그들은 진중했다. 그렇게 21년간 신앙을 고백해 왔다. 국내 최초 성소수자들의 교회, '로뎀나무그늘교회' 교인들이다.

동성애자도 트랜스젠더도 기독교인일 수 있을까.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와 같은 우문이다. 그렇다 혹은 아니다로 대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6월 11일 주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의 한 허름한 건물. 로뎀나무그늘교회 예배 현장에는 남성 서른 명이 모여 있었다. 구성원의 90% 이상이 동성애자 남성이다. 나머지 10%는 지난해 말 부임한 여성 목사와 트랜스젠더(MTF), 레즈비언 교인이다. 때로 지방에서 서울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감추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교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로뎀나무그늘교회의 예배는 기성 교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사막의 오아시스
온갖 혐오·차별에도
교회 못 떠나

로뎀나무그늘교회는 개신교인 성소수자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하나님과 호흡하며 나아가는 교회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교회 △다양한 소수자와 함께하는 교회라는 기도 제목이 로뎀나무그늘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교회는 21년 전, 남성 동성애자 몇몇의 기도 모임으로 시작됐다. '동성애=죄'라는 시각이 강고했던 시절,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으로 방황하던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임에 나왔다. 아무에게도 터놓을 수 없었지만, 이들은 모임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상황을 나누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많은 사람이 거쳐 갔다. 그중에는 '탈동성애'를 목적으로 나오는 이도 있었다. 구성원들은 성경에서 동성애를 뭐라고 정의하는지,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이야기 나눴다. 지금보다 신학적·사회학적 담론이 없을 때였지만, 자기 신앙과 존재가 걸린 문제이기에 열심히 고민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로뎀나무그늘교회는 조금씩 정체성을 찾아갔다.

로뎀나무그늘교회는 따로 예배당이 있지 않다. 주일에 한 번, 성소수자 인권 단체 사무실을 빌려 예배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그러나 교회 밖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보수 개신교는 언제부턴가 자타가 공인하는 '동성애 반대 세력' 1순위가 되었다. 

A / 제가 지금 20대 중반인데, 대학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회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는 설교를 들어 보지 못했어요. 2012년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 때문인 거 같아요. 그때부터 '동성애=죄'라는 설교를 많이 들었어요. 혼란스러웠어요. 나는 이미 남성을 좋아하는데,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건가 싶었어요. 엄마한테 물어봐도 당연히 죄라고 말했고요. 그래서 한 3년간 교회 나갔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 의문이 많지만 여기에 나와 다시 신앙생활하고 있어요.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는 동성애를 '동성 간 성행위'로 치환하는 논리를 내세운다. 섹스가 사랑에 포함될 수는 있겠으나, 사랑이 곧 섹스는 아니다. 이성애가 이성 간 성행위만 의미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물론 동성애자 중에도 섹스 중독자가 있고, 성을 사고파는 사람도 있다. 이건 이성애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부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성소수자 중에도 진지한 그리스도인이 존재한다. 오히려 성소수자 그룹에서 개신교인 비율이 높은 편이다. 로뎀나무그늘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목사 아들, 장로 아들, 모태신앙인 경우가 많다.

B / 저는 수십 년간 교회 다녔어요. 부모님도 교회 다니시고요. 언젠가 어버이날을 맞아서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갔어요. 동성애 설교를 하더라고요. 온갖 혐오 발언이 나왔어요. 듣기 거북했죠. 너무 변태적이어서 제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목사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쾌락을 위해 동성애를 하고, 항문 섹스한다고 했어요.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는 동성애자들 숫자를 보면 안다고도 하고요.

동성애도 이성애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에요. 서로 배려하고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요. 그 목사 말처럼 단순히 몸만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거면 이성애자가 되지 왜 어려운 길인 동성애자가 되겠어요. 

C / 동성애자들을 섹스에 미친 사람처럼 이야기해요. 무조건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줄 알아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아닌 사람도 많아요. 그건 이성애자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우리도 똑같아요. 그런 부류가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어요. 한 번도 연애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요.

때때로 상처받은 마음에 '기독교 신앙을 떠나 버리자' 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하나님께 다시 돌아왔다. 로뎀나무그늘교회 교인들은 '이미 예수를 영접했기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계속 찾아오는 예수를 경험해서' 등으로 신앙을 버릴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들에게 찾아온 예수는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는 분이었다.

D / 우리 로뎀나무그늘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신앙의 뿌리가 깊어요. 초신자가 거의 없어요. 목사 아들, 장로 아들, 모태 신앙인이 대부분이에요. 동성애자이지만 이미 하나님을 만났고 예수의 존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거죠.

로뎀나무그늘교회는 현재 박진영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이들은 예배 후에는 기도회를 연다. 교인 한 명씩 돌아가며 기도 제목을 내면 다른 사람들은 기도 제목을 수첩이나 핸드폰 메모장에 적는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연대하고 손잡는 교회로
"지방에도 성소수자 교회 있어야"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부모 형제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성 교회에 나가면 아웃팅당할까 봐 늘 불안했다. 성 정체성을 밝혀도 괜찮은 로뎀나무그늘교회에 왔지만, 여전히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21주년을 맞은 로뎀나무그늘교회는 변화를 택했다. 교인들끼리 모이는 예배 공동체에서, 한국 사회 성소수자 인권에 목소리를 내는 공동체로 바뀌고 있다. 군형법 92조 6 폐기를 위한 집회에 나가고,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 참여해 이야기를 듣는다.

교인들은 "그동안 우리끼리만 예배하고 사회로 잘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교회에 찾아온다고 하면 오히려 겁 먹고 배타적으로 대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더라. 다른 단체들과 함께 연대하며 사회로 나오고 있다. 올해도 퀴어 문화 축제에 부스도 설치한다"고 했다.

변화는 지난해 말, 2대 담임목사로 박진영 목사가 청빙되면서 자연스레 시작했다. 박 목사는 여성이자 비성소수자다. 교인들은 비성소수자지만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있는 박 목사를 청빙했다. 박 목사는 주중에는 일하고 주일에는 로뎀나무그늘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한다.

바쁜 와중에 교회에서 새로운 모임도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성소수자바로알기프로젝트(성바프)다. 성바프는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시간이다. 기독교인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 인류학·의학·법학·성서해석학에 대해 강의한다. 교인들은 강의 내용을 책자로 만들려고 한다. 보수 개신교에 만연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이제 사회로 한 걸음 내딛은 로뎀나무그늘교회 교인들은 성소수자를 위해 애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교인 E는 "전국에 성소수자 교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 번씩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올라와 위로받고 간다. 그들이 사는 지역에 신앙생활할 수 있는 교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로뎀나무그늘교회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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