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 김우식의 일흔일곱 굽이 인생 수업> / 김우식 지음 / 웅진윙스 펴냄 / 272쪽 / 1만 4,000원

자기 이야기, 그렇습니다. 책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웅진윙스)은 참여정부 시절 비서실장과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을 지낸 김우식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의 자서전 같은 인생론입니다. 시시콜콜 자신의 출생과 성장 과정 등을 담은 것은 아니어서 굳이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그렇습니다.

저자가 오랜 세월 연세대학교에서 교수와 총장으로 학생들과 함께했던 삶의 자취와 청와대 비서실장과 과학기술부장관을 지내며 얻은 다양한 삶의 터득을 물 흐르듯 자연스런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김우식의 일흔일곱 굽이 인생 수업'이라는 책의 부제에서도 책이 무엇을 말할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잘 늙게 해 주세요!

가끔 사람들은 '노망난 노인들'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말수를 줄이려고 한다든가, 새로운 기능의 기기들을 익히려고 한다든가, 마음에 안 드는 신문화도 이해하려 한다든가,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고 쓰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필수 아이템으로 다가오는 책입니다. 곱게 늙으려는, 아름답게 마치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양치하면서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자신을 보고 '나는 누구인가?'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는 그랬습니다. 그게 신의 뜻이라며 "평소에는 보여도 보이지 않던 자아의 얼굴을 찰나적으로 보았기"에 그랬다고 합니다. 그가 터득한 '기도 응답'(저자의 표현대로)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배우고 익힌다.
깨닫고 이룬다.
나누고 떠난다." (264쪽)

그가 살아온 족적은 바로 이 세 가지 원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도 아직까지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날들을 합쳐 기도해 봅니다. 그건 먼저 잘 늙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가족과도, 하는 일과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잘 늙어야 하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 잘 늙어 가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참 새록새록 마음속에 들어옵니다. 아직은 그의 나이만큼 이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며 더욱 잘 늙어 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아버지로서, 할아버지로서 산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저와 꽤 닮은 그의 애틋함이 구구절절이 흐릅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성가대석에 서 있는 큰딸이 돋보기안경을 쓰고 찬송 부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녀딸이 큰딸과 나란히 성가대석에 설 정도로 아이들까지 다 키워 놓았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한창때인데, '저 녀석이 벌써 노안이 오나' 싶어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34~35쪽)

이튿날 저자는 눈 영양제를 딸에게 선물하곤 '눈 좀 아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답니다. 그리고 이내 후회합니다. 좀 조곤조곤 말할 걸, 하고 말입니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서투름이 그대로 읽힙니다. 저와 닮아 한참을 책을 덮고 먼 산을 보았습니다. 저만치서 제 아들딸이 눈에 밟힙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지만 저자 또한 여전히 가족의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한 노인입니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나도록 손자를 보지 못하여 며느리에게 신경을 쓰기도 합니다. 채근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곤 다시 후회하고… 여전히 보통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살다 잘 가게 해 주세요!

'나누고 떠난다'는 저자의 삶의 원칙이 참 옹골찹니다. 뜻을 이루었는데 잘못 떠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저자는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자신은 많은 것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최고위 공직에도, 최고위 교육직에도 올랐으니 말입니다.

그는 지금도 '나누고 떠난다'는 원칙 아래 잘 살고 있음이 책의 여기저기서 드러납니다. 잘 가는 것, 이건 참으로 중요합니다. 잘 살지 않았는데 잘 갈 수 없습니다. 잘 늙지 않았는데 잘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잘 가는 문제는 잘 사는 문제와 같은 내용입니다. 책에서 그런 게 많이 읽힙니다. 저도 잘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총장 재직 시절, 시국이 시끄러울 때 시위 현장을 누비며 학생들과 교수들 입장에서 문제를 푼 일,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대통령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대통령을 종북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며 직언한 일 등이 특히 제 마음을 끕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언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반민주주의자가 아닙니다. 용공 좌경도, 친북 세력도 아니고 그저 이 나라가 잘 살기를 바라는 대한민국주의자고 대한민국 세력이에요. 그러니 총장님('실장'보다는 '총장'이라고 불렀다고 함), 안심하세요." (147쪽)

잘 사는지 아닌지는 문제가 있을 때 드러납니다. 저자는 문제 있을 때마다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건 물론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했던 의연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비서실장으로 부임하여 실장실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게 대형 금고라고 합니다. 단박에 든 생각은 '비서실장실에 금고가 왜 필요하지?'라는 거고요.

"총무비서관을 불러 금고를 열어 보게 했더니 금고 안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거지요. 대체 이 금고의 용도가 뭐냐고 묻자 총무비서관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다른 정부 때 어떤 용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150쪽)

미루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언뜻 '비자금'이란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전 정부의 일이니 더 이상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다른 용도는 메모지, 복사지, 포스트잇, 필기구를 비롯한 온갖 문구를 넣어 두는 곳으로 말입니다.

비싼 대형 금고가 문구류 저장소가 된 거지요. 이런 것이 이명박 정부와 고 노무현 정부의 차이점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이후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사용했을지 참 궁금합니다. 대통령이 탄핵당했는데도 수십 억의 특수 활동비를 사용한 정부이고 보니, 궁금할 수밖에요.

77세를 살아온 한 어르신의 정부와 학교, 가정을 섭렵하며 들려주는 '잘 산 이야기', 어떻게 이 짧은 글에 다 담겠습니까. 하지만 그만큼은 살아 낼 수 없을지 모르지만 기도해 봅니다. 잘 늙게 해 달라고, 잘 살다 잘 가게 해달라고.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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