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슬라브 볼프는, 종교의자유와 차이를 존중하는 일이 국가와 지역을 초월한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그는 세계종교가 '다른 종교와 비종교의 자유를 긍정하고 촉진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고재길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 문화)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종교 갈등은 중세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차별과 테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배제와 포용>·<알라>(IVP) 등으로 알려진 기독교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의 책 <인간의 번영>이 최근 IVP에서 출간됐다. 그는 이 책에서 종교 분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세계종교에서 발견한다. 여기서 세계종교는 불교·힌두교·유교·유대교·기독교·이슬람 등을 의미한다.

종교 갈등을 종교로 풀 수 있다니 이게 무슨 역설일까. 볼프는 세계종교가 기본적으로 종교의자유를 긍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종교는 각 사람이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유와 책임을 인정한다. 종교 간 분쟁은 종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기능장애' 증상이다.

미로슬라프 볼프의 저서 <인간의 번영> (IVP) 출간 기념 좌담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조 발제를 하고 있는 고재길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IVP는 6월 12일 '지구화 시대,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인간의 번영> 출판 기념 좌담회를 열었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사회를 보고, 고재길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 문화), 김찬호 교수(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인간의 번영>을 번역한 양혜원 박사(종교학)가 패널로 참석했다.

고재길 교수가 기조 발제로 30분간 책 내용을 요약 설명했다. 이후 1시간 30분 동안 패널들이 책에 나오는 개념과 오늘날 한국교회 현실을 주제로 토론을 펼쳤다. 62명이 참석해 토론을 경청했다.

종교 갈등 해결 시급
관용과 이웃 사랑
종교의자유 보장

볼프는 세계종교가 기본적으로 종교의자유를 인정한다고 말한다. 볼프는 존 로크(John Locke)를 인용한다.

"로크는 기독교 핵심을 이웃 사랑에서 찾는다. 이웃 사랑은 모든 인류, 심지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온유하게 대하고 그들에게 자선과 선의를 베푸는 것이다. 종교적 비관용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로크는 지적한다." (138-139쪽)

볼프는 불교, 무슬림 등 다른 종교 지도자들 역시 종교의자유를 가르쳤다고 말한다.

"불교인들도 종교의자유를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붓다는 명백하게 그것을 가르쳤다. 기독교 전통의 대변자들처럼 붓다는 각 사람은 무엇이 '안녕과 행복으로 이끄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자신이 결정한 길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144쪽)

"위대한 페르시아 학자 파크르 알딘 알라지는 종교의 문제에 있어서 강제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종교의 본질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신은 강제와 압박 위에 신앙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수용과 자유로운 선택 위에 세우셨다.' 펫훌라흐 귈렌(Fethullah Guelen)과 같은 많은 현대 무슬림 지도자들이 알라지 해석에 동의한다." (145쪽)

하지만 오늘날에는 종교 간 긴장이 존재한다. 어떤 종교인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만 참 종교로 여기고 타 종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볼프는 그 이유를 종교가 정치 공동체,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종교 공동체가 정치 공동체와 거의 일치하는 시대에, 단일한 종교가 그 정치 공동체에 통일성을 제공하지 않으면 정치 질서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시대에, 세계종교가 태어났다. 그래서 그 공동체는 이단이나 배교를 반역으로 여기고 추방이나 사형으로 처벌했다." (149쪽)

볼프는 종교적 신념이 다르더라도 상호 존중하고 이를 유지해 주는 적절한 제도, '존중의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정치적 다원주의'다. 볼프는 사람들이 이런 정치적 다원주의 형태에 회의적이라고 했다. 세계종교를 믿는 대다수가 종교적 배타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프는 종교적 배타주의와 정치적 다원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신교는 오랜 역사 동안 대체로 배타적이었고, 그 정도 또한 특별히 심했다. 이슬람보다도 더 배타적이었다. 하지만 기독교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오늘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다원주의 형태를 탄생시켰다. 만약 기독교가 종교적 배타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다원주의를 지지할 수 있었다면, 다른 세계종교도 배타주의 때문에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176쪽)

배타성에서 절대성으로
무슬림·성소수자
존중과 대화 필요

기조 발제가 끝난 뒤, 패널들은 볼프의 주장을 한국교회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토론했다.

김찬호 교수는 배타성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적 배타성을 절대성으로 바꿔 말하고 싶다. 배타성과 절대성은 같아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배타성은 다른 것을 배제하는 반면, 절대성은 자신의 신념을 고수한다. 개신교가 배타성이 아닌 절대성을 추구하면, 다른 종교·양식·교리를 존중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고재길 교수는 김 교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우선 기독교인들이 공적 직무를 수행할 때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는 것을 지양하는 게 첫 단계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근주 교수는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양혜원 박사는 나의 종교의자유가 중요한 것처럼 타인의 종교의자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찬호 교수는 동성애 반대가 반지성적인 태도에서 나왔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현재 한국교회가 극도의 배타성을 보이며 차별하는 두 집단은 성소수자와 무슬림이다. 볼프의 책을 통해 한국교회가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양혜원 박사는 "나의 종교의자유가 중요하다면 타인의 종교의자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종교의자유는 말 그대로 종교의자유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국가는 개인의 인권을 법으로 보장한다. 나의 인권이 중요한 것처럼 동성애자의 인권도 중요하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박해받지 않고 살아갈 자유, 취직할 수 있는 자유, 사랑하는 사람과 살 자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찬호 교수는 "어떤 교회는 축도할 때마다 '이슬람에 있는 병든 영혼을 위해'라는 말을 꼭 한다. 나는 타 종교를 무조건 악마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가 박해를 많이 받았다고 말하는데, 역사를 보면 박해받아 죽은 기독교인보다 기독교가 박해해서 죽인 사람이 훨씬 많다"고 했다.

그는 "동성애 반대는 반지성적인 태도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성경에는 동성애 외에도 다른 금지 조항이 많이 등장한다. 동성애가 죄악이라면 왜 다른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가. 설령 동성애가 정말로 문제가 있다 해도, 그만큼 다른 사회문제에 개신교가 책임감을 갖고 목소리를 냈는지 묻고 싶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안 통하니 이제는 동성애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재길 교수는 "어렵고 예민한 주제다. 한국교회는 대다수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공격은 잘못된 것이다.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을 존중하며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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