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탐구센터가 '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이란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평신도는 희랍어로 '라오스'(λαος)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뜻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평신도는 안수를 받지 않은 그리스도인 내지 목회자가 아닌 이들을 의미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평신도 신학'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루터대학교 박일영 전 총장은 "평신도 개혁 운동을 통해 한국교회 위기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계급화·서열화된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이전 로마 가톨릭 교회와 다를 바 없다며, 목회자 일탈을 바로잡기 위해 평신도 신학 운동이 전개돼야 한다고 봤다.

'평신도 신학 운동'이 한국교회 위기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한국교회탐구센터(송인규 소장)가 6월 8일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이란 주제로 제7차 교회 탐구 포럼을 열었다. 이재근 교수(웨신대), 송인규 소장이 '평신도'는 어떻게 생겨났고, 평신도 신학이 실현 가능한지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신자 제사장' 제시한 마르틴 루터,
일반 신자, 설교자·목회자 기능 따로 둬
"평신도·성직자 나뉘며 다시 계급주의화"

마르틴 루터는 1520년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 기독교 지역의 개혁에 관하여>라는 문서에서 만인제사장 정확히는 '모든 신자 제사장'의 원리를 최초로 제시했다. △성직자의 권세가 세상 권세 위에 있다 △교황 외에는 아무도 성서를 해석할 자격이 없다 △공의회는 교황만이 소집할 수 있다는 로마 가톨릭 '사제주의' 교리에 맞섰다.

그런데 지금의 개신교는 왜 사제주의와 유사한 체제를 지니고 있을까. 사실 루터는 사제주의에 저항했지만, 일반 신자와 설교자·목회자의 기능은 따로 구분했다. 이재근 교수는 "성경을 아무렇게 해석하는 행위와 이단 문제를 고민하던 루터가 신자와 설교자의 기능을 따로 뒀다"고 말했다. 루터는 한 설교에서 "우리가 모두 사제여도 우리 모두에게 설교의 자격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교수는 "'사제주의를 무너뜨리고 평신도를 재발견했다'는 16세기 종교개혁 명제는 큰 틀에서 수용 가능하다. 그러나 회중에서 구별돼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이들의 직분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치리회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그 입장과 견해는 차이를 보였다"고 말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여러 체제를 도입했다. 가톨릭처럼 예전주의를 강조하는 성공회·감리회·정교회가 있는가 하면 '간접민주제'를 채택한 장로회, 비예전주의를 채택한 회중 교회, 절대 평등제를 주장한 퀘이커·재세례파가 나왔다. 이 교수는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이 사제주의를 무너뜨렸다고 보기에 한계가 있다. 설교자나 목사가 스스로를 '신령한 자들'로 인식하고, 평신도를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고전 3:1)로 취급하는 현상이 보편화되며 교회는 다시 계급주의화 됐다. 비극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목회자 중심의 신학에서 벗어나 평신도 신학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한국교회탐구센터 송인규 소장은 목회자든 평신도든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했다.

목회자는 평신도 신학에 무지·무관심하고, 평신도를 교회 성장 도구로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평신도도 정작 평신도 신학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송 교수는 "지지하는 데 따르는 대가가 너무 크다고 여기는 것이다. 평신도는 사회적 사명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영 교수는 '평신도 신학'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발제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정재영 교수(실천신대), 최규창 대표(포토코리아)가 함께 '평신도 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 대표는 사제주의 개념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봤다. 신자들이 여전히 목회자를 필요로 하고 있고, 목회자에게 자신의 바람과 욕망을 투사하려 한다고 했다.

최 대표는 "'해석의 독점'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루터는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나 설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고 본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목회자 없이 시작했다. 서로가 설교를 보완해 나가고 있다. 다 같이 잡아 나가면 큰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공동체를 통해 (사제주의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재영 교수는 많은 사람이 성직주의를 원하고 있고 교회 문화와 정서가 위계질서에 의지하고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평신도 신학'은 어렵다고 봤다. 정 교수는 "교회 안에서 권위나 권력을 가진 목회자 쪽에서 먼저 내려놓는 시도를 해야 한다. 평신도가 주도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근 교수는 지금의 제도 자체를 무너뜨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장로교보다 민주적 시스템을 가진 침례교는 왜 한국에 와서 독재 구조로 바뀌었을까. 한국 사회, 문화 구조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좋은 제도를 도입했는데 왜 이런 구조가 나왔는지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제도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시대적 상황과 교회의 맥락을 살펴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규창 대표는 루터 시대와 다르다고 강조하며 공동체가 평신도 신학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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