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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파는 '아재'들의 유쾌한 수다

과일 공동체 '푸른숲', 목사가 '뿌리' 내리니 '숲'이 됐네

이용필 기자   기사승인 2017.06.08  17: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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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천국'으로 불리는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을 6월 8일 찾았다. 제철을 맞은 과일들이 창고를 가득 메웠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서울 외발산동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은 '과일 천국'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제철 과일이 거대한 창고들을 빼곡히 채우고도 남는다. 제철 맞은 참외, 수박, 체리부터 물 건너온 아보카도, 망고, 자몽 등 없는 게 없다.

평일 새벽 6시가 되면 수많은 1톤 트럭이 도매시장 창고로 집결한다. 과일을 떼어 가는 중간 유통망 상인들이다. 좋은 물건을 구하려면 남들보다 일찍 시장을 찾아야 한다. 기자가 찾은 6월 8일 현장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도매인시장 E 구역 뒤편은 흥정하는 '아재'들 목소리로 시끌시끌했다.

"산딸기 내 차에 5개만 실어 줘. 이거 잡으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수박) 빼 줄 테니까, 자몽 하나 내 놔"
"내 차에는 안 좋은 놈만 실어 주고, 자꾸 이러기야?(웃음)"

아재 10명이 모여 각자 구매한 과일을 팔거나 교환했다. 현찰이 순식간에 오갔다. 한쪽에서는 때아닌 과일 맛 품평회가 펼쳐졌다. "내가 다 먹어 봤는데 이 참외가 에이스야." 박스에서 꺼낸 참외 한 개를 그 자리에서 손으로 쪼갰다. 부서진 참외를 조금씩 나눠 줬다. 껍질 째 씹어 먹으니, 아삭한 식감과 함께 달달한 향이 올라왔다.

도매시장서 과일 공동 구매·교환
2년 전 유영춘 목사가 기반 닦아

'푸른숲' 리더 유영춘 목사가 자신의 차량에서 과일을 빼내 옮기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아재들은 '푸른숲' 회원이다. 푸른숲은 2년 전 유영춘 목사(푸른숲비품과일 대표)를 통해 만들어진 '과일 공동체'다. 과일을 공동으로 구매하되, 파는 건 각자의 몫이다. 네이버 밴드 회원 3,500명을 보유한 유 목사가 가장 많은 과일을 팔고 있다.

과일을 교환하던 중 한 회원이 '아보카도'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맛이 괜찮다는 내용이었다. 한번 가 보자는 말과 함께 회원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태평양을 건너 온 미국산 아보카도는 짙은 녹색이었다. 표면은 까칠까칠하고,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아보카도 감별사로 불리는 박진국 씨가 입을 열었다.

"이거 지금 색깔만 보면 혹한데 칼로 찔러도 안 들어갈 정도로 단단해. 아보카도는 악어 등처럼 오돌토돌한 게 좋아. 까매진 다음 말랑말랑해졌을 때 먹어야 맛있어."

아재들 눈빛이 무엇에 홀린 듯 반짝거렸다. "나는 5박스." 유영춘 목사가 가장 먼저 구입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다른 회원들도 뛰어들었다.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도매업자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회원들의 1톤 트럭에 아보카도 박스를 가져다 실었다. 트럭에 실린 과일의 양은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다. 유 목사의 트럭은 다른 회원들과 달리 과일 박스로 빼곡했다. 하루에 이 과일을 다 파느냐는 질문에 유 목사는 "거의 다 판다"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찬양 사역자에서 과일장수로 변신한 김정훈 목사는 "영춘이는 나보다 두 배나 많이 판다"고 부러워했다. 

찬양 사역자에서 과일장수로 변신한 김정훈 목사가 과일 정리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과일을 떼다가 파는 게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도매상을 '뚫는' 일부터 소비자가 원하는 과일을 제때 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힘겹게 기반을 닦은 유 목사는 형편이 어려운 목회자, 일반인과 함께 일을 해 나가고 있다. 

과일 공동체 '푸른숲' 회원은 유영춘·김정훈 목사를 포함 유철(찾아가는과일, 안양), 박형준(아이신선해, 평택), 김용이(과일있어요, 평촌), 이재현(더과일, 당진), 박진국(백석망고, 일산), 조인재(폴아저씨, 동탄), 주금돈(세자매청과, 경인), 황용수(데일리과일, 강서), 김석종(삼송, 고양), 김지혜(푸른숲, 방배) 씨 등 총 12명이다.    

푸른숲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수익의 10%를 지역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유 목사가 이 일을 시작하며 내건 철칙이다.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겠노라는 다짐이다. 성경의 가르침이자, 예수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의 자세라고 믿기 때문이다. 푸른숲 회원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각자 일하는 지역의 장애인, 독거노인, 청년들을 위해 수익의 일부를 내놓고 있다.

푸른숲 회원은 매일 이곳 농산물 시장을 찾는다. 3~4시간 동안 과일을 고르고 구입한다. 품질과 맛은 당연히 좋아야 한다. 김정훈 목사는 "비품(약간 손상을 입었지만, 먹는 데 지장 없는 과일)을 원하던 소비자가 최근 맛좋은 정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트렌드가 변했다"고 말했다.

푸른숲, 남 먼저 생각하는 '가치' 공유
수익 10%는 활동하는 지역사회에 환원
"목사들, 현장의 아픔 몰라"

도매시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웃으며 과일을 나르는 푸른숲 회원. 뉴스앤조이 이용필

물품 구입이 끝나면 보통 아침 8~9시가 된다. 푸른숲 회원들은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8일에는 도매시장 부근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대신했다. 인천 계양구, 서울 목동, 고양 삼송, 평택 등 각자 일하는 장소를 소개하고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출산을 앞둔 회원, 돈 대신 상품권을 받은 사연 등 에피소드는 넘쳤다. 종교 이야기도 나왔는데, 회원들은 개신교, 천주교, 불교, 무교 등 다양했다. 유영춘 목사가 대뜸 불교 신자인 박진국 씨에게 농담을 건넸다.

"형, 일요일에 교회 다니면 나랑 정훈이가 (과일 가게 장사) 대신해 줄게. 콜?"
"나는 절에 다니잖아. 가끔."

약속이라도 한 듯 아재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주문한 온두라스 원두로 내린 커피가 나오자 한 회원이 "어디서 온두라스 냄새 나지 않냐"고 아재 개그를 던졌다. 아재들은 또 한 번 뒤집어졌다. 아재들의 이야기는 럭비공처럼 요리조리 튀었다. 어렸을 때 돼지 오줌보로 공놀이를 했다는 이야기부터 올해 가을 와이프 몰래 1박 2일 여행을 떠나자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나왔다.

대화 내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두 달 전 푸른숲에 합류한 황용수 씨도 원년 멤버처럼 보일 정도로 녹아들었다. 황 씨는 "아내 소개로 푸른숲을 알게 됐다.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이유도 있지만, 수익의 10% 나눈다는 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푸른숲) 분위기도 매우 좋아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푸른숲처럼 과일을 공동으로 구매해 판매하는 단체는 여럿 있다. 전반적인 시스템은 비슷하지만, 푸른숲만의 차이가 있다면 '리더'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없다는 점이다. 푸른숲 교육팀장을 맡고 있는 유철 씨가 말했다.

"다른 데는 보통 '대빵'이 제일 좋은 물건(과일)을 차지하거든. 아래로 갈수록 안 좋은 물건을 집게 돼 있지. 막내들도 알면서도 그걸 받아야 해. 룰이니까. 근데 얘(유영춘 목사)는 외려 다른 사람한테 좋은 물건을 내어 줘. 그렇다고 따로 돈을 받지도 않아. 자기가 손해 보는 게 룰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상했지. 자기는 망해도 좋은데 다른 사람이 컸으면 좋겠다, 그게 남는 거라고 하더라고.

("그걸 믿어?"라고 유 목사가 말하자, 유철 씨가 "물론 주님만 아시겠지"라고 받아쳤다. 회원들은 한바탕 웃었다)

내가 받은 게 있다 보니 새로 들어온 회원한테도 (좋은 물건을) 양보할 수밖에 없어. 또 수익의 10%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야 하고. 이 친구가 작은 뿌리 역할을 하면서 숲을 이룬 거야. 그래서 우리는 '푸른숲'이라고 불러."

"우와, 말 잘한다", "목회해도 되겠네", "역시 교육팀장이야"라는 회원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한때 신학을 공부했다는 유 씨가 말을 이어 나갔다.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목사들이) 교인의 삶을 전혀 모른다. 1,000원, 1만 원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피땀 흘리는지 모른다. 현장의 아픔을 모르니까, 고작 한다는 말이 '기도합시다'뿐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는데, 그건 회피에 지나지 않았다. 이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보니 피부에 와닿았다. 몇 푼 안 되는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정직하게 사는 건 또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오늘도 몇 번을 거짓말했는지(웃음)."

푸른숲 교육팀장을 맡고 있는 유철 씨(사진 가운데)는 목회자들이 현장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푸른숲은 최근 언론과 TV방송을 몇 차례 탔다. 덩달아 유영춘 목사를 찾는 이도 많아졌다. 푸른숲 회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회원을 늘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물품 공급과 관리에 힘이 부치는 실정이다. 유 목사는 "회원들과 대책을 논의해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른 아침 술·담배 없는 유쾌한 아재들의 수다는 1시간가량 진행됐다. 모임이 끝난 뒤 회원들은 차에 한가득 실린 과일을 팔기 위해 차량에 몸을 실었다. 카페에는 아재 냄새가 아닌 은은한 과일 향기가 맴돌았다.

과일로 삶을 나누는 푸른숲 회원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과일 맛 평가는 현장에서 이뤄진다. 유영춘 목사는 손으로 참외를 깨뜨린 후 껍질 째 먹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돈 계산은 빠르고 정확히 이뤄진다. 핸드폰 계산기로 계산 중인 회원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정훈 목사가 한 회원과 과일 흥정을 하면서 웃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유영춘 목사의 1톤 트럭에 과일이 한가득 실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많은 언론에 소개된 유영춘 목사. 그는 푸른숲을 통해 어려운 목회자와 일반인을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아보카도 감별사 박진국 씨(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가 회원들에게 좋은 아보카도를 고르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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