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가족·친척·사회에서 격리되어 살다 홀로 죽음을 맞는 경우를 '고독사'(孤獨死)라고 부른다. 고독사에서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거나 가족(혹은 지인)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는, '무연사'(無緣死)라고 부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무연고 사망자는 2012년 698명, 2013년 894명, 2014년 1,008명, 2015년 1,245명, 2016년 1,232명으로 증가 추세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들은 연고 없이 유명을 달리했을까. 어떤 이유로 가족들은 이들의 죽음을 외면했을까. 단순한 질문으로 무연고 사망자를 추적한 20~30대 젊은이들이 최근 책을 출간했다. <남자, 혼자 죽다>(성유진·이수진·오소영 지음, 생각의힘 펴냄). 저자들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두세 달씩 네 번에 걸쳐 무연고 사망자 209명 주변을 취재했다.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유가족들은 왜 시신 인수를 거부했는지 책에 담았다.

저자들은 강조한다. 무연고 사망자들은 무연사하기 전 이미 무연'생(生)'을 살았다고. 책은 증가하는 무연사 현상보다 사망자들이 왜 무연한 삶을 살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 김찬호 교수(성공회대학교)는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연사로부터 아무도 무연하지 않다. 이 책의 목적은 은밀한 죽음의 엿보기가 아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그리움이나 희망 따위를 스스로 은폐했던 그들의 삶을 보여 주는 것이다. 1,000만의 도시에서 그들은 사막의 유골이 되었다. 북적한 서울의 도처에서 발견되고 공고되는 그들의 죽음과 달리, 그들의 삶은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다."

저자들을 만나 209명의 삶을 쫓는 과정이 어땠는지 묻고 싶었다. 6월 7일 저녁, 서울 홍대에 있는 카페에서 저자 이수진 씨(29)와 오소영 씨(27)를 만났다. 이들은 취재 전과 취재 후 무연사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오소영 씨는 개인이 나태하고 게을렀기 때문에 무연사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이수진 씨는 취재하는 내내 국내 사망신고 제도의 허점과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분개했다고 했다.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무연고 사망자는 대개 고시원, 쪽방에서 많이 발견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이름·나이·주소만으로 
무연고 사망자 209명 취재

- 무연고 사망자를 취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이수진 /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우리는 언론사를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들이었다. 취재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책을 낼 생각도 없었다. 글을 쓸지 영상물을 만들지 정하지도 않고,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팀원들과 취재 주제를 논의했다. 한 친구가 "나를 취재하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6년간 서울에서 하숙했다. 하숙생 5명과 한 집에서 같이 사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화한 적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그 오랜 기간 한 집에 사는데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1인 가구에 집중했다. 저소득층 가구, 혼자 사는 어르신, 유품 정리 업체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러다 우연히 무연사 사망자 공고문을 접했다(지자체는 신원 미상이거나 아무도 시신을 찾아가지 않는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무연사 사망자 공고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 기자 주). 무연사에 관심을 갖게 된 우리들은 취재 방향을 무연고 사망자로 좁혔다.

오소영 / 취재라는 것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처음에는 무연사가 이렇게 무거운 주제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2013년 취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고독사만 조금 알려져 있었고 무연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취재하면서 이 주제가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주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무연고 사망자는 말 그대로 신원 미상이거나 가족들이 시신 인수를 하지 않는 이들이다. 주변인을 찾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수진 / 취재 과정이 굉장히 어려웠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무연사 사망자 공고문밖에 없었다. 공고문에는 이름, 나이, 주소, 사망 장소만 나온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은 사망 장소가 병원이다. 그래서 거의 세 가지 정보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취재는 사망자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거주지를 방문하면서 시작했다.

취재원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시원 관리자, 이웃집, 집 주인, 동네 슈퍼 주인 등에게 물으면 매번 "모른다"는 말만 돌아왔다. 무연고 사망자 중에는 주변 인간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많았다. 책에서 사용했던 표현처럼, 이들은 무연생을 살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취재를 했다. 우편물을 확인하다, 교회에서 온 편지가 있으면 그 교회에 가 봤다. 사망자가 전에 폐지 줍는 일을 했다고 하면 주변 고물상을 다 돌았고, 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하면 근처 공장을 모두 돌며 탐문했다. 그런 과정에서 한 사람의 삶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다.

오소영 / 취재 과정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었던 건 막상 그들의 지인을 만났을 때였다. 사망한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취재하는 우리가 부고를 전하는 역할을 했다.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잔인한 질문을 해야 했다. 생전에 그분이 어땠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그런 상황이 어려웠다.

이수진 / 무연고 사망자 중에는 좋은 분도 있었고 가족에게 상처를 많이 준 이도 있었다. 취재할 때, 유족이 크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그 유족의 표정, 목소리에서 고인에게 품고 있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남자 혼자 죽다> / 성유진, 이수진, 오소영 지음 / 생각의힘 펴냄 / 320쪽 / 1만 7,000원.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들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네 번에 걸쳐 무연고 사망자 209명을 취재했다. 책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게으르고 나태해서가 아닌
외환 위기, 대량 해고 등
외부 요인이 무연사 원인

- 책에는 유족들에게 쫓겨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런 반발에도 무연사 취재를 계속한 이유가 있나.

이수진 / 우리가 하는 취재는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취재하면서 과연 이 일이 바람직한지 자문했다. 몇 번을 고민했지만, 알려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가 취재한 209명이 무연사한 이유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다. 외환 위기, 대량 해고, 사고, 질병 등. 개인의 잘못보다 외부 요인이 컸다. 이를 제대로 조명할 필요를 느꼈다.

관심도 적었다. 우리가 만난 관계 부처 공무원들은 실태를 잘 모르고 있었다. 무연사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도 만나기 어려웠다. 책을 낼 때 관련 전문가를 찾을 수 없어 조언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더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소영 / 처음 무연사를 접할 때, 이들이 나와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이, 가족과 각자의 이유로 단절돼 있다가 홀로 사망했다고 여겼다.

취재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분들의 삶을 복기해 보니, 누구나 저런 상황에 처하면 무연사할 수밖에 없겠더라. 이들은 결코 실패하고 싶어서 실패한 게 아니었다. 경제 위기, 해고, 교통사고 등 한 번의 실패가 삶 전체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재기하지 못했다.

무연사는 단순히 가난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책을 보면 무연고 사망자들이 살고자 하는 욕구가 컸던 것 같다.

오소영 / 고인들의 유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 무연고 사망자를 취재했을 떄였다. 결핵을 앓고 있던 그분은 매일 혈당을 체크해 A4 용지에 기록했는데, 그날 일어난 일들도 함께 적었다. 어떤 날에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고, 이번 주말에는 교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는 등. 또렷한 글씨로 적은 글이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으로 다가왔다.

'무연고 사망자는 게으르고 무기력할 거야', '공사장에서 막일을 해도 먹고살 수 있는데 왜 저렇게 살아', '도와줘 봤자 술만 먹을 텐데' 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편견이 깨졌다.

이수진 / 무연고 사망자 곁에 도와주는 이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내가 취재했던 분은 40대였는데, 고시원비를 낼 돈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마지막 주소지를 찾아가니 옛 회사 동료 집이 나왔다. 그분은 10년 전 봉제 공장에서 고인을 알게 되어 여러 차례 도움을 줬다고 했다. 고시원 월세를 내 주거나 반찬을 챙겨 주었다. 우리가 부고를 전하자 그분이 서럽게 울었다. 며칠 전 자기에게 찾아왔을 때 집에 있는 빈 방에 들어와 살라고 말할 걸 그랬다며 후회하더라.

답답했다.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왜 스스로 생을 포기했을까. 좌절이 컸던 거 아닐까 싶었다. 실패 이후 재기를 돕지 못하는 시스템, 타인과의 관계를 짐으로 만드는 각자도생 풍조, 돈이 중요하다는 인식 등 복합적인 이유로 살아갈 희망을 포기한 것 아닐까.

지자체는 신원 미상이거나 아무도 시신을 찾아가지 않는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무연사 사망자 공고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사진 제공 이수진

- 책에 등장하는 209명 중 남성은 194명, 여성은 15명이다. 통계를 봐도 무연고 사망자 중 남성 사망자 수가 여성보다 월등히 높다. 그 이유는 뭘까.

이수진 / 앞서 언급한 사례와 비슷한 것 같다. 무연사한 남자에게도 관계는 분명 존재했다. 가족이 있었고, 손 내밀면 그들을 도와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관계를 끊어 버렸다. 고도 성장을 거치면서 가장의 역할은 경제적 부양으로 더욱 굳어졌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 남에게 쉽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등이 남성들을 무연의 생과 사로 밀어낸 것 아닐까.

- 책에는 유가족들이 겪는 어려움도 나온다. 구청이 무연고 사망자라고 공고했는데, 사망신고 처리가 안 되는 경우를 봤다. 그래서 유족들이 수급비를 못 받는다고 들었다.

이수진 / 국내 사망신고 제도에 허점이 많다. 무연고 사망자 공고문을 보고 취재를 갔는데, 무연사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우편물이 오고 있었다. 알아보니 사망신고가 안 되어 있었다. 구청에서 무연고 사망자라고 공고했지만, 사망신고는 따로 해야 하는 것이다.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 사망진단서는 병원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사망진단서를 받기 위해서는 시신을 인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밀린 병원비를 내야 한다. 병원비 2,000~3,000만 원을 낼 형편이 안 돼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가족들이 있다. 이들은 사망진단서가 없으니 사망신고도 못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지 오래됐지만 행정상 사망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자녀들이 수급비를 못 받는 경우도 보았다.

오소영 / 구청·주민센터 공무원들은 가족들만 사망신고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법원에 문의한 결과, 동장이나 병원장이 대신 신고할 수 있다. 담당 공무원들이 이런 내용을 잘 모르고 있던 것이다. 오히려 병원 관계자들이 제도를 잘 안다.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가장 열심히 찾는 이들도 공무원이 아니라 병원 관계자다. 밀린 병원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립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서울시 내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은 이곳에서 납골된다. 사진 제공 이수진

이수진 / 우리가 취재하면서 알게 된 무연고 사망자들은 대부분 '비자발적 무연사'였다. 관계를 갖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재기하길 바랐지만 사회구조적인 이유로 스스로 관계를 절단하거나 절단당했다.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무연사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단번에 바뀌진 않겠지만 관심이 모이고 목소리가 쌓이면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오소영 / 무연사가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운이 좋아서 그런 삶을 피할 수 있었던 거지, 우리도 언제든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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