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2014년 겨울 저녁. 세월호 가족과 봉사자들은 여느 때처럼 광화문광장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이 서명대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민우 아빠 이종철 씨와 영석 아빠 오병환 씨를 보고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낯선 여성이 울음을 터뜨리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여성의 이름은 레베카 정(29).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온 한인 2세다.

레베카는 세월호 가족들을 직접 만나자,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해외 자원봉사자들이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해 만든 사이트(www.Sewoltruth.com)에 세월호 희생자 기사를 영문으로 번역해 올려 왔기 때문이다.

레베카는 그날 이후로 시간만 나면 광화문과 안산을 찾았다. 1년에 한두 차례 한국에 방문할 때, 매번 광화문광장·안산·홍대에서 피켓을 들고 서명을 받았다. 뉴질랜드에서는 꾸준히 세월호 관련 글·기사를 영문으로 번역해 사람들에게 알렸다. 지난달에는 지성이 부모님을 뉴질랜드 한인 모임에 초청해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진행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수화기 너머 레베카는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말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매일 광화문광장, 홍대입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명을 받고 있다며, 자신이 한 일은 별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뉴질랜드에 있는 레베카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 레베카(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진 제공 레베카 정

뉴질랜드 현직 의사
세월호 참사, 생방송 목격
희생자 소개 글 60여 개 번역
"많이 읽고 많이 울었다"

레베카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신학대를 나와 호주와 뉴질랜드 한인 교회에서 목회했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영국을 떠나 뉴질랜드에 정착했다. 레베카는 오클랜드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해 현재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한 적은 별로 없지만 레베카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다. 해외 한인 사회에서는 집, 교회, 학교 등 어디를 가도 한국인을 만날 수 있고,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한국어도 유창하다. 지난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성희 총회장) 총회가 외국인 선교사를 초청해 세월호 가족들과 간담회를 열었을 때, 레베카가 통역을 맡기도 했다.

레베카는 3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뉴스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선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골든 타임 72시간이 지나가는 걸 보면서, 대한민국 희망이 함께 잠기는 것 같았다.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더 기가 막혔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자, 세월호 가족들은 더욱 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됐어요. 정부가 이들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일부 국민은 따가운 시선을 보냈어요. 정치적인 이슈가 전혀 아닌데도, 왜 그렇게 보는지 모르겠어요. 위로받고 이해받아야 할 가족들은, 거리로 나와 단식을 하고 풍찬노숙했죠. 이분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무엇이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베카는 우연히 알게 된 세월호 사이트(www.sewoltruth.com)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한국 신문에 실린 세월호 관련 기사를 번역해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이었다. 현재 희생자 67명에 대한 소개 글이 올라와 있는데, 1~2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레베카가 번역했다.

레베카가 단원고 416기억교실을 찾아 글을 남기고 있다. 사진 제공 레베카 정

번역은 힘들었다. 어려운 단어나 문장이 나오면 다른 한인에게 묻거나 사전을 찾으면 됐다. 하지만 희생자들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읽고 고치는 일은 레베카의 마음을 수시로 무너뜨렸다.

"의사가 꿈이었던 다영이, 세월호의 어린 영웅 차웅이, 제자들을 지켜 주신 유니나 선생님… 희생자 한 분 한 분의 소중함과 그들이 남긴 빈자리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지 느꼈던 거 같아요. 번역하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글은 지아 엄마 지영희 씨의 편지예요. 친구 같았던 딸을 잃은 어머니의 아픔이 전해져 몇 번이나 읽고 울었어요."

2014년 겨울, 한국에 방문했을 때도 광화문광장을 먼저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 레베카는 세월호 가족들이 이러고 있다는 것이 억울하고 분해 눈물이 나왔던 것 같다고 했다.

막말하는 목사에게 실망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시민들에게 위로

레베카는 세월호 가족을 대하는 한국 사회를 보며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세월호 가족을 향해 막말을 내뱉는 사람들, 특히 정치인, 대형 교회 목사들에게 실망한 반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위로를 얻었다고 했다.

"세월호 피케팅, 서명지기 등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세월호 가족들을 비롯해 여러 자원봉사자 분들이요. 그중에는 기독교인도 있었어요. 거의 매일 나와서 현장을 지키고 계셨죠. 이분들이 제게 어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쳐 줬던 것 같아요.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만 신앙생활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에서 듣는 설교와 모임에서 나누는 간증이, 일상과 동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교회 안에는 정말 선하고 좋은 분이 많아요. 그런데 교회 안에서만 봉사하지 말고, 바깥에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손을 잡아 주고 함께하는 기독교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레베카는 뉴질랜드에서도 '세월호'를 알려 왔다. 지난달에는 지성 부모님과 함께 세월호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 레베카 정

녹색당 국회의원 후보 출마
인종차별, 정치 무관심 개선 의지
"세월호 더 알리고 싶어"

올해 레베카는 뉴질랜드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클랜드 노스코트 지역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다. 정치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목사 아버지를 좇아 의술로 하나님을 전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당에서 지역구 후보로 나올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정치'라는 세계에 선입견이 있잖아요. 정치인들은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을 더 내세우려 한다고요. 고민 끝에 수락했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왔던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거라고요."

그는 경쟁 후보가 현직 장관이고 인지도가 높아 자신은 당선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꼭 자기가 당선돼야 한다기보다, 정당 투표율을 올리는 게 주목적이라고 했다. 그래도 포부는 있었다. 그에게 녹색당을 선택한 이유와 국회의원이 되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물었다.

"당원이 된 건 3년 전이지만, 그전부터 녹색당을 개인적으로 지지해 왔어요. 녹색당은 뉴질랜드에서 대표적인 진보 정당 중 하나예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운영되고 있죠. 환경보호, 사회정의, 비폭력, 합리적인 의사 결정 등을 중요하게 여겨요. 녹색당은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뉴질랜드는 이민자들이 많은 사회예요. 인종차별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고 싶어요. 이민자 자녀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편인데, 이들의 인식도 개선하고 싶고요. 개인적으로는 선거운동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세월호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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