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금송아지 숭배'.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아론은 여론을 못 이겨 금붙이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고 말했다.

창조과학의 오류와 문제점을 비판하는 책 <아론의 송아지>(새물결플러스)의 제목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저자 임택규 씨는 미국에 사는 공학자다. 모태신앙인 그는, 창조과학을 접하면서 마치 아론의 금송아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인간의 의식과 생각 안에 가두려 한다는 말이다.

과학과신학의대화(과신대)와 새물결아카데미가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는 북토크를 5월 30일 열었다. 두 단체가 5월 한 달간 진행하고 있는 기획 강좌의 일환이다. 이때까지 김남호 교수(Liv Kim·울산대), 우종학 교수(서울대), 이정모 관장(서울시립과학관)이 강의했다.

이번 북토크는 김남호 교수 사회로 진행했다. 임택규 씨와 우종학 교수가 대담을 나눴다. 김 교수는 교인들이 창조과학에 대해 궁금해할 만한 주제를 선정해 질문했다. 공개강좌로 진행된 이날 북토크에는 70여 명이 참석했다. 페이스북 생중계로도 많은 사람이 시청했다.

<아론의 송아지> 북 콘서트가 5월 30일 새물결아카데미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우종학 교수, 임택규 씨, 김남호 교수. 뉴스앤조이 최승현

배 '선(船)' 자, 노아 홍수 증거?
공룡과 사람이 같이 살았다?
교회가 말하는 진화론은
'무신론적 진화주의'

김남호 / 창조과학이 퍼트린 과학 괴담이 많다. 유명한 괴담은 뭐가 있을까.

임택규 / 책에도 썼지만, 배 '선(船)' 자가 노아의홍수 증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 선 자는 한자 제자(製字) 원리 중 형성(形成)에 해당한다. 아주 옛날에는 노 젓고 다니는 배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상형(象形) 자로 배 주(舟) 자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거대한 선박이 나왔는데 그걸 부르는 이름을 선이라든지 연이라든지 불렀을 테고, 그걸 표현하는 글자가 없으니 배 주(舟) 자에 발음을 담당할 연(㕣)자를 붙여서 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 한자를 파자(破字)해서 배 주(舟) 자에 여덟 팔(八) 자에 입 구(口)가 있으니 노아 가족 8명을 뜻한다고 말하면, 제자 원리의 ABC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우종학 / 지구 나이가 6,000년이라는 창조과학자들 가설이 맞으려면, 인간과 공룡이 동시대에 살았다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 창조과학자들은 공룡 발자국과 사람 발자국이 같이 있는 증거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김남호 / 교회에는 진화 이론에 대한 알레르지 반응이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부반응을 보인다. '진화론'과 '진화주의 무신론'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진화론과 진화주의는 어떤 차이가 있나.

우종학 / 목사들이 진화론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건 따지자면 '진화주의'를 반대한다는 말이다. 진화주의는 신 없이 목적 없이 우연하게 자연계 스스로 진화한다는 뜻이다. 이런 건 기독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진화론은 '진화' 뒤에 '론'(論)이 붙었다. 때문에 이것이 세계관인지 과학 이론인지 불명확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명확하게 '진화주의'(무신론)를 반대해야 한다고 표현한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건 진화 이론 혹은 진화 과학이다. 진화 이론, 진화 과학은 반증 가능성 등을 과학자들이 철저하고 엄밀하게 연구하는 학문이다. 세계관으로서의 '진화론'과는 다르다.

임택규 / 창조과학자들은 지질학도 천문학도 해양학도 전부 '진화론'이라고 한다. 최소한 진화론이라는 게 어떤 이론, 어떤 분야를 지칭하는지 우선 알면 좋겠다. 내부적으로 진화라는 용어 정의부터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남호 / 소진화는 확인·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지만, 대진화(종 분화 - 다른 종류로 진화하는 것)는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임택규 / 소진화와 대진화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시간의 종축을 따라서 보면 어디까지 같은 종이고 어디서부터 다른 종인지 나누기 어렵다. 가령 한국말의 경우 고문헌을 보면 같은 말도 달라지는 게 보인다. 18세기 의성 김 씨 가문의 한글 편지를 보면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다르다. 그래도 많이 다르지 않아서 우리가 집중해서 읽으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용비어천가 2장에 있는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를 보면 헷갈린다. 더 올라가서 8~9세기 처용가(향가)를 보면, 이게 한국말인가 싶다. 같은 한국말인데도 과거 사람과 의사소통은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진화의 패턴이다. 공통 조상을 갖고 있는 시점부터, 뭔가 달라져서 생식적으로 교미가 안 되는 수준까지 전부 연결돼 있다. 그래서 소진화와 대진화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진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 콘서트에는 70여 명이 참석했다. 페이스북 생중계로도 많은 사람이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창조과학이 한국교회 득세한 이유
"질문하지 않는 문화" 때문
"다른 견해도 있다" 가르쳐야

김남호 / 창조과학은 유독 미국과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임택규 / 유럽은 기독교 문화가 2,000년 동안 구·신교 나뉘지 않고 함께 내려왔다. 그러다 보니까 창조과학이라는 가치가 파고들 여지가 적었다. 미국은 신대륙이다. 떨어져 있다 보니 유럽과는 달랐다. 성경을 과학적 합리성으로 증명하겠다는 '천박한 시도'가 파고들었다. 또 다른 신대륙 호주에도 창조과학이 만연해 있다.

한국교회는 미국 교회와 똑같다. 미국교회가 한국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 창조과학을 수입한 1세대가 전부 미국 유학파이기도 하다.

우종학 / 그동안 창조과학을 설파했던 분들의 순수한 동기는 인정해야 한다. 많은 분이 방방곡곡 다니면서 복음을 변호하겠다는 마음으로 창조과학을 전했다. 과학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창조과학'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학을 무신론처럼 여기는 시대에 창조과학을 들고나와서 "그렇지 않다"고 외쳤다.

그럼에도 유사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과학이 이렇게나 퍼진 이유는, 반지성의 양분이 한국교회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가 강단에서 울려 퍼져도, "그게 말이 되냐"고 물어볼 수 있는 합리성·지성이 없었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굉장히 강조해 왔다. 기독교 신앙을 개인화해서 그렇다. 창조과학은 그 흐름에 있었던 것 같다. 반지성의 토대, 양분을 먹고 자란 게 아닌가.

하나 더. 한국 사람 중 과학 다큐멘터리나 과학 서적 읽는 게 취미인 사람은 소수다. 학계에서는 상식이지만 대중에게는 새로운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을 말하면 곧 무신론처럼 들릴 수 있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좀 더 목소리를 내서 과학은 이렇다고 설명했어야 했다. 마크 놀(Mark Noll)이 지적한 대로,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김남호 / 창조과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있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교회 리더십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지혜로울까.

우종학 / 교회 리더십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정면으로 거스르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교회 전체적으로 창조과학을 신봉하는데, 주일학교 선생님 한 명이 일방적으로 창조과학이 틀렸다고 가르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기독교적이고 신앙적인 다른 견해가 있다"고 가르쳐 주면서 가능성을 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는 여지, 가능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아론의 송아지> / 임택규 지음 / 새물결플러스 펴냄 / 334쪽 / 1만 6,000원

두 시간에 가까운 토론을 마치며, 우종학 교수와 임택규 씨는 한국교회가 좀 더 열린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종학 교수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간의 방법과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안 되니 불안하다고 느낀다. 금송아지처럼 깨끗하고 산뜻한 걸 원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불안하다. 그러나 안개에 쌓인 길을 걸어가는 게 믿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아론의 송아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구도자의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우리가 어떤 길로 갈지 몰라도, 가다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깊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택규 씨는 "흔히 냉철해 보이고 이성적으로 보이면 '신앙이 있을까' 의심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예수를 믿고 신앙을 가지니까 냉철하고 이성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론의 송아지>가 조금이나마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이성을 갖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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