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여성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작업은 수십 년간 지속돼 왔다. 한국교회에서 이런 관점은 여전히 낯설다. 한국교회에서 성경은 남성 중심 텍스트다. 이것이 과연 옳은 걸까.

평화교회연구소(전남병 소장)가 철저하게 여성주의 관점에서 성경 속 여성 캐릭터를 살펴보는 강의를 마련했다. 드류대학에서 여성신학을 공부한 최순양 교수가 5월 25일부터 6주간 강의한다. 라합, 하갈, 레위인의 첩, 음녀 이스라엘, 하와, 룻을 다룬다. 최 교수는 해외 유수 페미니즘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비평하며 강의를 이어 갈 예정이다. 미국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등의 이론도 다룬다.

첫 강의 주제는 기생 라합이었다. 라합은 여리고 왕의 전갈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정탐꾼 둘을 자기 집에 숨겨 준 여인이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할 때 라합과 그 가족은 이때의 일로 구원을 받는다. 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해석은,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을 도운 믿음의 여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주의 관점에서 이 본문을 읽으면, 여러 해석이 도출된다.

평화교회연구소가 여성 시각으로 성경을 보는 강의를 시작했다. 참가자들 반응이 뜨겁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백인 학자 페웰 "라합은 영웅"
역사 알고 행동한 주체적 인물
민족+여성=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백인 페미니스트이자 구약학자인 데나 놀란 페웰(Damma Nolan Fewell, 1958~)은 기생 라합을 이스라엘 지도자나 선지자에 버금가는 영웅으로 해석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을 만났을 때, 그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일을 알고 자세하게 언급한다. "홍해 물을 마르게 하셨고, 요단강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어떻게 전멸시켜서 희생 제물로 바쳤는가에 대한 소식을 우리가 들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다"라고 말한다. 페웰은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두 번째는 라합이 주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라합은 정탐꾼을 도우면서 "내가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당신들도 내 아버지의 집안에 은혜를 베풀겠다고 주님 앞에서 맹세하고 지키겠다는 확실한 징표를 나에게 달라. 나의 부모와 형제자매들, 그들에게 속한 모든 식구를 살려 달라"고 말한다. 페웰은 라합이 두 남성에게 요구 사항을 분명하게 언급한 점에서 라합을 주체적이라고 해석했다.

페미니즘에 '탈식민주의' 관점이 더해지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탈식민주의는 식민화를 지지하는 인종차별을 해체하고 종주국과 식민국 사이에 발생하는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문제의식을 갖는다. 페미니즘이 한 사안을 '젠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젠더는 물론 '인종', '민족'의 눈으로 관찰한다. 인종, 젠더, 경제 상황 등 복합적인 억압으로부터 고통당하는 여성들 시각으로 여성과 사회상을 살핀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성경 해석은 이방 인종에 대한 편견을 벗기는 작업이다.

최순양 교수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학자로 무사 두베 쇼마나(Musa W. Dube Shomanah, 1964~)를 소개했다. 두베는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최초로 여성학적으로 성서를 해석한 인물이다. 두베는 성경 속 제국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비식민지화를 통해 성경을 재해석한다. 그녀는 성서를 읽을 때 본문이 △당시 제국주의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식민화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는가 △지배와 종속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젠더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를 신성화하는가 질문한다.

최순양 교수는 두베가 기생 라합을 양가적 관점에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합이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팔 수밖에 없는 약자이고 피해자지만, 동시에 자기 민족을 배신한 가해자라고 보는 것이다. 최 교수는, 두베의 설명만 보면 오히려 그녀가 라합을 비난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두베는 기생 라합이 제국주의적 상황에서 가장 억압받는 대상으로 보았다. 라합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식민화해야 하는 가나안 여성이었다. 여성 중에서도 '기생'이기에 가장 취약한 상황에 있었다. 라합은 정탐꾼 두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라합은 피해자다. 그러나 라합은 자신의 가족과 안전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배신했다. 식민지인이 갖고 있는 교활함을 상징한다. 라합은 자신이 살던 공간과 나라가 불안전한 것을 깨닫고 그들을 침범할 제국주의자들 편에 섰다."

두베는 백인 페미니스트 페웰의 성서 해석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기생 라합이 주체적이고 영웅적인 요소를 지녔다는 페웰 의견을 반박하며 "라합은 지배자의 의도를 지혜롭게 자신의 이익으로 돌린 인물"이라고 말했다. 라합은 이스라엘을 돕는 식민지인으로 여호수아서 저자가 긍정적으로 그려 놓은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최순양 교수. 뉴스앤조이 최유리
강의 후 참가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라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두 사람이 제시한 해석은 새롭기는 했지만, 최순양 교수는 두 사람 이론 모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페웰은 그간 감춰져 있던 성경 속 여성을 부각시키다 보니 여성을 좋은 측면으로만 해석하려고 했다. 성경에서 여성들 목소리가 배제됐다는 사실만 밝혀도 괜찮은데, 페미니즘 관점에서 여성 캐릭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두베도 마찬가지다. 최 교수는 두베가 여성 목소리보다 민족 상황에 더 치중한 나머지, 기생 라합이 처한 상황을 잘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했다. 기생 라합이 생존을 위해 정탐꾼들을 도왔을 수도 있는데, 두베는 이 점을 크게 염두하지 않았다.

최순양 교수가 강의한 후, 참가자들은 페웰과 두베의 해석에 거침없이 자기 견해를 밝혔다. 한 참가자는 두베 의견을 반박했다.

"두베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말한다. 민족 아니면 가족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민족을 위한 영웅이 되지 못하면, 교활한 여성 취급한다. 성녀 아니면 악녀, 영웅 아니면 피해자로 바라보는 관점은 인물을 대상화한다. 우리는 대상화 대신 당사자성으로 인물을 이해해야 한다. 당사자성으로 본다면 라합은 악녀보다는, 요즘 거침없이 주체적인 여성을 뜻하는 '썅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구조적인 한계 속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썅년 아닐까."

남성 참가자 역시 당사자성을 강조했다.

"두베가 말한 것처럼 라합은 기민한 사람이었다. 라합은 민족이 자신에게 주는 가치가 크지 않아 배신했을 수 있다. 성경 본문에서 라합은 두 사람에게 정탐을 도울 테니, 자기 가족을 살려 달라고 말한다. (다른 해석 없이) 그 장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꼭 여성이라고 불쌍한 사람으로 볼 것이 아니다. 여성이라고 해서 나쁜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무조건 '착한 피해자'로만 보는 것도 타자화된 시선 아닌가."

한 여성 참가자는 더 이상 성경 속 여성 캐릭터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했다. 지레 겁먹고 어떤 해석이 맞는지 고민하지 말고, 일단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해 보자고 권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한 적이 없다. 거의 처음으로 여성 캐릭터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데, 완벽한 정답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남성 캐릭터를 두고는 완벽한 답을 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데 말이다. 라합이 영웅이든 악녀였든 무엇이 되었든지 여성 캐릭터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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