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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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결심은 다 하신 겁니까.

평일 오후 4시. 민규가 한영호의 한의원을 찾은 시간이었다.

예정된 약속은 아니었다. 유재환과의 독대가 있는 뒤, 한영호는 줄곧 기약 없는 민규의 결단을 기다려 왔다. 그 사이 민규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정신적 압박 속에서 시간을 보냈고, 한영호의 기다림은 어느 순간부터 초조감으로 물들어 갔다.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도합 보름이란 시간 동안 민규는 침묵했다. 일요일 11시 예배 때에도 민규는 한영호의 시선을 외면했다. 설교의 주제는 여전히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주제였음에도 민규는 한영호를 바라보지 않았다. 강대상 아래에서 드높은 강대상을 절박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한영호의 안타까운 갈망이 한가득 묻어 있는 시선을 피하는 데 바빴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는 동안 신기하게도 김인철 장로 측의 반응 또한 침묵으로 일관되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둔중한 정신적 압박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김인철은 그 보름 동안 예배에 불참하지 않고 일요일 11시 예배를 엄수했다. 장의자 앞자리에 앉아 숙연한 태도로 민규의 설교를 경청했다. 예배가 끝난 뒤 김인철은 예배당 입구 앞에서 인사를 나누는 민규의 손을 힘 있게 잡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대신 드러냈다. 악수를 나눌 때 민규는 김인철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갑게 가라앉는, 차분하고 신중한 가운데 거대한 학살을 준비하는 맹수의 본능이 그대로 민규의 정신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사이, 민규는 김정은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김정은을 교회에서 바라보는 배척과 외면의 시선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민규는 교회 사람들의 시선이나 그들의 바람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거나 불편해지진 않았다. 대신 김정은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교회 구름다리 너머의 신애원이 떠올라 불편했다고 보는 게 민규의 속마음일 것이다.

민규는 신애원의 일을, 그곳에서 벌어지는 한 장면 한 장면을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기억했다. 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래서일까. 민규의 몸과 의식은 차라리 기억하지 않으려는 배척의 의지로 들끓었다.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장면, 아이들을 학대하는 괴물들, 그 악마들이 일요일 11시 예배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정장 차림을 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그리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강대상 아래에서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마치 커다란 뱀이 장의자 사이사이를 스멀거리며 꿈틀거리는 형국이었다. 뱀의 간교한 혀가 보일 때마다 자신의 영혼 전체가 맹독에 중독되는 듯한 아찔함이 민규를 괴롭혔다.

민규는 자신의 원초적인 심약함에 대해 생각했다. 또 하나. 변명과 자기 합리화에 능한 자신의 악마적 기질을. 그러한 악마의 기질이 쓰임새가 있다면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민규는 오히려 자신에게 말을 걸어 보려 다가오는 김정은을 철저히 피했다. 그 보름의 시간 동안 민규는 김인철 장로가 제공한 초고층 고급 아파트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민규의 칩거는 보름 내내 계속되었다. 자신의 귓가를 맴도는 윤서주의 마지막 애원 '날 구원해 줄 수 있잖아요'란 외침에도 불구하고 민규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죽음보다 더 깊은 침묵의 시간을 지냈다.

그렇게 보름 만에 침묵의 베일을 벗고 한영호의 한의원을 찾은 민규의 눈앞에 보이는 건 환자들이 아니었다. 한영호의 연구실 안에는 김정은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의 권사, 그리고 유재환의 복귀를 간절히 기다리는 기도 모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민규는 그들을 향해 눈을 떼지 않은 채 한영호의 질문에 되물음으로 답했다.

- 한의원 일은 아예 그만두신 것 같네요.

- 기도에 때와 상황의 타협이 있어선 안되니까요.

- 지금이 기도할 때였습니까.

- 지금처럼 절박한 때가 또 어디 있을까요?

- 왜죠?

- 그 질문은 … 충분히 짐작하셨겠지만 다시 한 번 일깨워 드리죠. 목사님이 이 지옥의 난국을 타개할 마지막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 …

- 목사님에게도 남은 기회가 많지 않아요. 벌써부터 담임목사 교체 건이 장로회의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영호의 말 속엔 분명한 절박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민규는 한영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영호가 말을 이었다.

- 김인철 … 그 작자는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인물이면서도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입니다. 한시라도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장로님.

- 예. 목사님.

- 그런데 그거 아세요?

- … ?

- 아브라함의 믿음이니 뭐니 하는 게 이스라엘 민족의 건국신화일 수 있다는 사실을요.

- 목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목사님의 논문이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그 믿음이 한 민족의 민족 이념이라 해도 예수님의 보편 정신과 결합되어 대승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요.

- 그건 논문에나 등장하는 수사예요.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아요! 아시겠어요?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민규의 말을 들은 한영호의 시선이 큰 충격에 사로잡힌 듯 했다.

- 목사님…

- 당신이 기다리는 유재환 목사는 현실 속 인물이 아니에요. 이상에 불과해요.

- 그래서 …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겁니까?

- 삶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있습니다. 전 지금 사적 인생의 치유가 필요해요. 여기서 힘을 키우고 인지도를 높인 다음 공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습니다.

- 그때는 이미 늦어요. 아이들의 신음과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이때, 정민규도 작심한 듯 한영호의 말을 되받았다.

- 아이들을 학대한 건 신애원이 아니라 그 부모들이에요. 무책임하고 가난하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부모들이요.

순간 김정은의 눈빛이 민규의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차갑고 냉정한, 무슨 뜻이 담겼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민규는 그런 김정은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무거운 한 마디를 남겼다.

- 전 교회로 돌아가겠습니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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