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구약성서에는 '초하루'(월삭)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사야서에는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사 66장 23절)는 구절이 있다. 유월절·장막절 등 유대인의 이집트 탈출 역사와 관련 있는 절기는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초하루를 안식일에 버금가는 절기로 지켰다.

주원준 연구원(한님성서연구소)은 유일신을 믿는 이스라엘이 초하루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아시리아, 바벨론 등 강대국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구약성서를 읽기 전, 고대근동학을 이해하고 당시 역사적 상황, 문화 등을 이해한다면 더 풍성한 눈으로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주에 이어 주원준 연구원이 '이웃 종교와 대화하며 발전한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로 5월 23일 한국YMCA에서 강의했다. 그는 고대 이스라엘은 지리적 요충지에 뒤늦게 자리 잡은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고, 전례를 만드는 과정 등은 주변 강대국들의 종교의식과 관습을 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원준 연구원(한님성서연구소)은 약소국이자 후발 국가였던 고대 이스라엘이 주변국의 관습을 그대로 따랐을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서 속 수많은 '초하루'
안식일 이은 주요 절기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달'을 숭배해 왔다.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와 중간에 거쳐 간 하란은 '달신'을 모시는 대표적인 도시였다. 이들은 보름달이 아니라 초승달을 숭배했다. 보름달은 이미 다 찼기 때문에 저물 일만 남았지만 컴컴한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내며 초승달이 떠오르면, 달신이 세상을 빛나게 한다고 믿었다. 초승달이 뜨는 날인 '초하루'에는 축제가 열렸다.

주 연구원은 구약성서 여러 구절을 예로 들며 강력한 달신 신앙은 고대 이스라엘 종교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열왕기하에 보면 아들을 못 낳는 수넴 여인이 예언자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아들이 죽은 것을 안 여인은 남편 몰래 예언자를 찾아가려고 하는데 이를 본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묻는 정황상 초하루나 안식일에 예언자에게 가는 건 당연하다는 거다. 수넴 지역 관습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주원준 연구원은 다윗과 요나단 이야기에도 초하루가 등장한다고 했다. 그는 "요나단이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고 다윗에게 말하는데, 여기서 초하루를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 왕궁에서 초하루에 무언가 큰 행사를 열었다는 것을 정황상 추측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후발 주자로 시작한 고대 이스라엘이 왕궁을 만드는 것이나 왕궁을 운영하는 전례 등을 다른 나라에서 많이 참고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서에서도 초하루와 안식일은 거의 동급으로 등장한다. 바벨론과 아시리아 왕궁에서 초하룻날 거대한 축제를 여는데, 고대 이스라엘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원준 연구원은 말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달신 숭배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지역이다. 사진은 달의 신 '난나'(Nanna). '신'(Sin)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진 출처 Ancientpages.com

달신 신앙 견제하면서
유대인 '야훼신학' 형성

고대 메소포타미아 달신 숭배 문화의 영향을 받아 초하루를 명절로 지키던 고대 이스라엘. 하지만 유일신 신앙을 키워 오던 고대 이스라엘은 달신 숭배 문화를 견제하면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야훼신학을 만들었다. 주 연구원은 고대 이스라엘 내 여러 신학 계파가 있는데, 크게 신명기계 신학과 창세기계 신학이라고 했다.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달신 신앙이 우리에게 뿌리 깊이 남아있는데, 이를 문화적으로 따를 수는 있어도 마음으로 따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안 된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만약에 마음으로 따르면 이스라엘에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창세기계 신학자들은 달을 유일신의 피조물로 만들어 버렸다. 달을 탈신화해서 달신 숭배를 극복하려고 했다."

주원준 연구원은 당시 일주일을 7일로 보는 고대 근동 문화에서 각 날 이름을 어떻게 붙였는지를 보면, 유일신 문화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달신을 숭배하는 이들은 날에 각각 신의 이름을 붙였다. 그 신을 숭배하는 날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날에 숫자를 매겼다. 유일신 야훼를 믿는 이들에게 신의 이름으로 날을 부를 수는 없었다는 게 주 연구원의 설명이다.

구약성서를 보면 달신 신앙과 더불어 하늘·바람·피·강 등을 숭배하는 다른 문화가 깃들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은 외부 문화의 영향을 비판 없이 수용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 신화를 탈신화해 자신들의 야훼 하나님이 주체가 되는 '야훼신학'으로 계승했다.

고대 이스라엘은 주변 제국에 비해 늦게 시작됐고 독립된 나라를 유지한 역사도 굉장히 짧다. 주원준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작고 연약한 민족이었지만 유일신을 믿는 믿음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구약성서에서 묘사하는 고대 이스라엘은 외양적으로나 토라 내용으로나 분명 고대 근동 영향을 받아 유사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만, 독특한 무형의 믿음을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을 눈여겨보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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