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에 대한 공포를 말하기 전 먼저 만나야 합니다.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기독교인은 편견·두려움으로 무슬림을 오해하고 있고, 무슬림 또한 기독교인을 권력자·전쟁광으로 오해하고 있어요. 아예 우리 땅에 들어오는 것조차 못하게 하기 전에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해요."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프랑스 초교파 그리스도교 공동체 '떼제(Taizé)'에서 30년째 생활하고 있는 신한열 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떼제는 프랑스 동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이자 이곳에 자리 잡은 수도 공동체 이름이다. 1940년 떼제를 찾은 스위스 개신교 목사 아들 로제(Roger) 수사는, 여러 종파로 갈라진 그리스도교의 화해를 꿈꾸며 이곳에서 수도 공동체를 시작했다.

떼제공동체는 '화해와 일치'를 표방한다.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의 화해, 종교가 다른 이들 간의 화해, 세대 간 화해, 정치 이념이 갈라놓은 사회의 화해를 꿈꾼다. 그리스도교 수도 공동체지만 무슬림 난민을 환대하고, 종파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를 이뤄 생활한다. 사회에서 약자에 가까운 청년과 빈민들을 돌보며, 세상을 위해 중보 기도에 힘쓴다.

1988년 떼제 땅을 밟고 4년 후, 신한열 수사는 종신 서약을 했다. 올해는 그가 종신 서약을 한 지 25주년 되는 해다. 얼마 전 떼제에서 겪은 이야기를 엮어 <함께 사는 기적>(신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프랑스 떼제공동체 신한열 수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신한열 수사를 5월 21일 서울 연희동 신앙과지성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한열 수사는 계속된 한국에서의 강연 일정 때문에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나직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 갔다. 신 수사는 한국에 잘 소개돼 있지 않은 떼제공동체 모습을 설명해 주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수도 공동체, 무슬림을 환대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떼제 이야기는 한국교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으로 가득했다.

해외 선교와 중보 기도로
세상과 소통하는 공동체

수도원을 향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세상과 단절'이다. 세상과 단절을 택하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수도원 전통이 간간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에게 낯설다.

떼제공동체는 세상과 소통하는 수도 공동체다.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청년 수만 명이 떼제를 찾는다. 떼제 수사들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공동체를 떠나 해외에서 30년 혹은 40년씩 살기도 한다. 떼제는 시골이긴 하지만 프랑스라는 제1세계에 속한 나라다. 수사들은 다른 대륙, 특히 가난한 나라에 간다. '파견된 형제들'은 방글라데시, 케냐, 세네갈, 브라질 등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고 있다.

신한열 수사는 "해외에 간 수사들은 개종 전도에 힘쓰지 않는다"고 했다. '선교'에 익숙한 한국 개신교인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그럼 떼제 수사들은 거기 가서 무엇을 할까. 신한열 수사는 "그냥 가서 삽니다"라며 웃음 지었다.

"그냥 사는 게 참 중요합니다. 실적 내지 않고 그냥 사는 거죠. 물론 지역 교회와 협력해서 청년을 돕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나누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리스도를 모시고 갑니다. '개종 전도'를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에 가 있으면 그 법을 존중합니다."

전도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게 겁이 나 피하는 게 아닐까. 신한열 수사는, 신앙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특히 경제적인 도움을 주면서 신앙을 강요하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며 방글라데시에서 겪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방글라데시 같은 경우 그리스도교를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는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이 믿는 종교예요. 스위스 출신 우리 수사 한 사람이 방글라데시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는데, 그 수사한테 '너희 기독교인들은 왜 이렇게 우리 이슬람 형제들을 못살게 구느냐'고 묻더래요.

그가 이렇게 묻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리는 게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겠어요. 선교사가 한 나라에 지내면서 신자를 몇 명 만들고, 세례를 몇 명 줬는지가 판단 기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떼제공동체는 중보 기도로 세상과 소통한다. 신한열 수사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수도원은 세상을 중보하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원의 기도를 살펴보면 추상적이지 않고 언제나 구체적으로 나라와 지역, 사람을 기억하며 기도한다고 했다.

떼제공동체 토요일 저녁 기도 풍경. 저녁 기도 시간에는 어려움에 처한 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 떼제공동체 페이스북

떼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찬양으로 중보 기도를 마친 후 늘 어려움에 처한 나라와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도한다. 일례로 세월호 참사 발생 후, 떼제 저녁 기도 시간에는 세월호 참사 당사자와 가족, 고통 속에 있을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기도가 몇 주간 계속됐다.

"여러 나라가 자연재해를 입거나 큰 고난을 당했을 때는 그 나라를 위한 기도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합니다. 최근 시작된 것이 아니고 떼제의 아주 오랜 전통 중 하나죠. 제가 1988년 떼제에 처음 왔을 때에도 저녁 기도 때마다 청년 두 사람이 나와서 자기 나라 말로 구체적인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한 3주 지나고 우연히 한국과 관련한 기도문을 읽다 보니, 수많은 이름 가운데 제 이름도 있더군요. 수사님들이 제가 떼제에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 알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거예요. 중보 기도 목록에서 발견한 아주 오래된 이름 가운데는 '김대중'이라는 이름도 있었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 계실 때, 떼제에서는 그분을 기억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무슬림 환대하는 기독교 공동체
"환대는 그리스도의 정신"

타 종교를 존중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으려는 떼제공동체의 노력은 최근에도 빛을 발했다. 아프리카 및 중동 출신 무슬림 난민이 급증할 때 유럽 몇몇 국가는 빗장을 걸어 잠궜다. 프랑스는 영국행을 소망하는 수단·시리아·이라크 난민들을 북부 칼레(Calais)시에 모았다. 그러다 '정글'이라고 불리는 난민촌에서 온갖 인권유린이 벌어졌다. 프랑스 당국은 2016년 말 칼레시의 난민촌을 철거하고 난민을 받겠다고 하는 도시들로 난민들을 내보냈다.

떼제는 수단 출신 무슬림 난민 7명을 받았다. 무슬림 청년들을 받기 전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동의를 구했다. 공동체 방을 내어 주고 이들이 무사히 정착할 수 있게 도왔다. 기도할 수 있는 카펫을 깔아 주고 인근 모스크의 이맘을 연결해 줬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고국을 떠나 안전과 평화를 택한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이 소식이 지역 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악성 댓글이 달리고 결국 기사는 삭제됐다. 세상에는 차별과 편견, 증오심이 가득한 목소리가 난무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무슬림이 폭력적인 종교이고, 교회를 무너뜨릴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도 있다. 무지에서 오는 공포, 잘못된 정보에서 오는 두려움을 어떻게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우애를 쌓아야 해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 본인은 모른다 하더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분명히 그분 안에 계시거든요.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결합해 계십니다. 신자도 때로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데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더 그렇겠죠.

어떻게 하나님이 세례 받은 사람에게만 계시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 계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을 갖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게 아니라, 그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리스도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나와 다른 배경·생각·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고요.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다면 그 사람과 먼저 친구가 돼야 합니다.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우호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죠."

신한열 수사는 화해가 필요한 사람들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신한열 수사는 떼제공동체가 난민을 받은 이후 눈에 띄는 장점이 또 한 가지 생겼다고 했다. 난민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칠 사람을 모집했는데 여기에 40명이 자원했다. 자원한 이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도 있지만, 그동안 떼제와 전혀 교류하지 않던 사람도 있었다. 교회와 담 쌓고 살던 사람들을 '난민'이라는 매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며, 환대가 또 다른 만남을 낳았다고 말했다.

화해와 일치가 필요한 한반도

분단 국가 한반도에도 그리스도인의 환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신한열 수사.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는 신 수사는 떼제공동체 수사들과 함께 북한을 여러 번 오갔다. 신 수사의 눈에 비친 한반도는 그 어느 곳보다 '화해와 일치'가 필요한 곳이다. 먹을 것이 필요한 북한 주민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동포에게 입을 옷을 가져다주는 것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일이었다.

신한열 수사의 꿈은 북한과 남한 양쪽 진영을 잇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두 팔을 양 옆으로 넓게 벌려 서로의 손을 잡으면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십자가 형상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쉽고 편할지 모른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는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한국교회는 상대를 인정하면 진리가 무너지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사랑을 포기한다는 건… 글쎄요. 어느 자식 하나 버릴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면 어떨까요. 그동안 받은 교육이 있고 사회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분단 이데올로기는 극복해야 한다고 봐요.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요.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굴복하고 오기만 기다리는 것이나, 정복해서 얻는 화해는 화해가 아니죠. 더 큰 상처, 새로운 상처를 만드는 일입니다. 힘들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용서와 사랑의 힘을 믿지 않는다면 화해는 힘들겠지요. 물론 너무 순진하게 이용만 당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분별력도 키워야겠지요. 그럼에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힘을 믿지 않는다면 점점 서로 마음의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꼭 북한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겁니다. 남한 안에서 혹은 교회 안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설득할 수 없는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선택해야죠. 상대방이 망하고 굴복하기만 기다리며 기도할 수는 없잖아요. 기도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우리가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면 변하는 건 상대가 아니라 우리가 되겠지요. 상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이 바뀌는 것, 그게 평화를 향한 시작이라고 봅니다."

떼제공동체에는 매해 전 세계 각지에서 청년 10만 명이 몰려든다. 지난해 9월 오후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 모습. 사진 제공 신한열

<함께 사는 기적>(신앙과지성사)에는 화해와 일치를 향한 신한열 수사의 수도 여정이 더 자세히 묘사돼 있다. 갈수록 신자 수가 감소하는 유럽 교회의 현실을 묘사하며 소수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도 설명한다. 교회는 비어 있지만 떼제공동체에는 매해 청년 10만 명이 넘게 모인다. 떼제의 어떤 매력이 젊은이를 그곳으로 이끄는 것일까.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떼제를 찾아오는 젊은이들은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품고 있었어요. 신앙의 원천은 결국 성경이지요. 이럴 때일수록 종교가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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