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난민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오해하기 전에 직접 물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난민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TV, 인터넷보다 먼저 저에게, 난민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답을 찾기 바랍니다." (수단에서 온 아담)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에서 난민은 여전히 생소하다. '난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어떤 사람은 '위험한 이슬람 국적자'를 떠올린다. 어쩔 수 없는 모국 상황 때문에 박해를 피해 한국에 도착한 사람들, 한국은 그중 극소수만 '합법적' 난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난민들에게 이야기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국 알트루사(박영희 회장)는 5월 20일, 창립 34주년 기념 난민 초청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현재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난민 두 명과 난민 지위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이 참석했다.

"왜 왔느냐" 물음에
'공부'라 답하면 OK
'난민'이라 하면 차별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는 어렵다. 한국이 처음 난민 신청을 받은 1994년부터 2015년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한 난민은 580명에 불과하다. 신청자 수는 1만 5,250명. 해마다 신청자는 늘어나지만 정부는 계속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기약 없이 난민 지위 인정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일을 구할 수도 없고, 생활을 이어 갈 수도 없다. 거기에 '못 사는 나라 사람이 돈 벌러 왔다'는 한국 사회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H(맨 오른쪽)는 난민 비자를 신청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에티오피아에서 온 H는 난민 비자를 신청해 놓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한국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정치적·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조국을 떠났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고 했다. H는 "아프리카 출신이라고 하면 서류를 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자동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왔으면서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신청자의 조국이 어떤 상황인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난민을 잘 인정해 주지 않는 한국 문화는 난민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불러온다. 한국에서 '난민'이라고 하면 '이주 노동자'와도 다르게 대하는 경우가 있다. 수단에서 온 아담은 10년 전 한국을 찾았지만 자신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해 본 적이 드물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공장에서 친절한 사업주를 만나 별다른 문제 없이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난민'이라고 밝히면서 대우가 달라졌다.

"어느날 사업주가 '왜 한국에 왔어?'라고 물어봤어요. '난민'이라고 대답했는데 듣는 사업주 표정이 조금 이상해요. 다음 날 해고됐어요. '난민은 위험한 사람이잖아' 이러면서요. 한국 사람들은 난민을 테러 일으키는 사람, 위험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아담은 일하던 공장에서 '난민'이라 말했다가 다음 날 해고된 경험을 털어놓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왜 한국에 왔느냐?"는 질문에 "돈 벌러 왔다" 혹은 "공부하러 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참석자들은 한국 사람들이 때로 너무 무례할 정도로 신상을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을 보며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H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몇 살이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왜 한국에 왔느냐, 무슨 일 하느냐, 언제 돌아갈 거냐고 묻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내가 아는 다른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공통으로 겪는 문화 충격입니다. 왜 한국에 왔느냐는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때로는 대답하기 싫을 때도 있어요. 공부하러 왔다고 하면 잘해 주지만, 난민이라고 하면 반응이 다릅니다."

콩고에서 온 도르카스도 여기에 맞장구쳤다. 그는 "좋은 의미로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우리 가족도 그런 질문 너무 많이 받아서 때로는 관광객이라고 하거나 학생이라고 답해요. '난민'이라고 하면 대부분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죠. 감정을 다치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라고 답했다.

도르카스는 "왜 한국에 왔느냐"고 물어보면 관광 혹은 공부하기 위해 왔다고 답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도르카스는 독재가 지속 중인 콩고에서 간호사로 활동하다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콩고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살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전공과 관련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콩고에서 대학 교육을 마치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안고 일하는 주체적인 여성이었는데,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면서는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가 사랑하는 한국
안전하게 살고 싶어

여자 혼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유스라에게 한국 생활은 녹록치 않다. 유스라는 경찰이었던 남편, 삼 남매와 함께 이라크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기독교인 친구를 도와준 게 문제가 돼 이라크를 떠나 호주로 갔고, 남은 유스라와 삼 남매도 이라크를 떠나야 했다.

유스라는 삼 남매와 함께 한국에 살고 있다. 호주에 있는 남편이 생활비를 보내 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호주에서 입국 거절당한 유스라는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할 것 같은 나라 한국의 문을 두드렸다. 이제 한국 정착 3년째,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친구들도 잘 사귀고 있다고 유스라는 전했다. 다만 자신이 한국어,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일을 구할 수 없고, 호주에 있는 남편이 보내 주고 있는 생활비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했다.

"이라크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해 줄 수 있었고, 무엇이든 사 줄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듭니다."

다행히 삼 남매는 빠르게 한국에서 삶에 적응했다. 친구를 데리고 오면 유스라 씨가 아랍어, 이라크 문화, 역사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유스라 씨는 아이들이 한국을 사랑하고 좋아한다며, 난민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과 이해를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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