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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에게 '하나님 뜻' 말하는 기독교, 다른 방식 찾아야

[인터뷰]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 저자 윤호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7.05.21  15: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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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암은 더 이상 극소수 사람만 걸리는 특이한 병이 아니다. 암에 대한 정보는 넘쳐 나고 어떻게 암을 고쳤는지 알려 주는 암 환자 생존기 또한 서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연식으로 치유에 성공한 사람, 암과 싸워 '이긴' 의사들 이야기도 있다.

암 환자였던 윤호와 그의 아내 주은이 쓴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아토포스)는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암 환자 생존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암에서 치유됐다는 간증기도 아니다. 암을 낯설게 바라보고 자신의 상황을 깊게 사유한 남자 윤호와 암에 걸린 그를 사랑하기로 용기를 내고 결혼을 결심한 여자 주은의 이야기다.

저자 윤호를 5월 16일 서울 홍대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에게서 암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암 환자를 소비하는 방식, '암은 극복할 수 있다'라는 서사의 문제점, 아픈 사람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의 폭력성 등을 들었다.

'암 환자'라는 말과 함께
세상에서 추방된 윤호

윤호는 27살이 되던 2007년 암 진단을 받았다. 대장암 3기. 그에게 "당신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 의사들은 "환자분은 암입니다"는 말로 암 선고를 내린다. 암이 곧 환자 자신이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실감이 잘 안 났어요. 암 판정을 받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배가 아플 수 있구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갑자기 아프고 그랬는데요. 오히려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안심이 되더라고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픈지 알게 됐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의 원인을 찾았으니까요."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암 환자 생존기가 아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에 암 진단을 받은 윤호. 그는 그때 "세상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암 환자'가 된다는 것은 사회에서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윤호는 그때의 감정을 "나는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명명한 '질병의 나라'로 추방되었다. 나는 건강의 나라, 즉 일상의 세계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모두 포기하고 즉각 떠나야 했다"(35쪽)고 썼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한국에서 암 환자는 비정상인으로 취급받았다. 윤호는 지금 돌이켜 보면, 자신의 경우가 꽤 운이 좋았던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수술받기도 힘든 상황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암이라는 사실을 안 것도 그렇고 관점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로 투병을 이겨 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를 규정하는 모든 사회적인 지표는 정지됐다.

"그냥 추방당한 것과 똑같았어요. 내가 이 사회에서 설 자리가 전혀 없었고, 다시 진입하기도 힘들었죠. 암 걸렸던 사실을 가린 이력서를 내고, 정상인 시늉을 해서 간신히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었어요. 한국의 경쟁적인 사회구조에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죠."

"하나님이 크게 쓰시려고"
"암은 이겨 낼 수 있다"
사람들 반응이 불편한 이유

사회에서 추방됐다고 느낀 윤호는 사람들 반응에 또 한 번 절망했다. 목사 아들이자 사역자의 길을 걷고 있던 윤호에게 사람들은 "하나님이 크게 쓰시려고 지금 연단하시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그러시는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측은하게 보는 것은 물론, 목사 아들이 중한 병에 걸린 것을 목사 가족에게 영적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그때 종교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배제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 직접 목격했다.

"나보다 더 믿음이 좋은 사람들도 암에 스러지는 것을 봤어요. 그런 것만 봐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알 수 있었죠. 쉽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종교가 뭘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에도 저는 기독교를 벗어날 수 없없고 신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더라고요. 이런 고민을 하다가 기존 말하기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하나님 뜻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과 관계된 무엇인가를 찾는 시도를 해야 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게 교회 아닐까요."

윤호와 주은은 공포와 불안을 떨치고 함께하기로 했고,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과 함께 암 환자가 많이 듣는 말은 "암은 이겨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윤호는 이 말도 불편하다고 했다. 질병을 이겨 내는 것이 꼭 개인 의지에 달린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고 믿고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면 면역 체계가 암을 이겨 낼 수 있고 암 생존율도 상승한다는, 미신에 가까운 주장이 마치 과학적으로 검증된 법칙처럼 부과된다. 뒤집어 보면 만약 호랑이굴에서 살아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 그 책임은 오로지 긍정적 태도로 상황을 돌파하지 못한 개개인에 있다는 뜻이다. 철저히 그리고 처절히 각자도생이다." (198쪽)

암을 이겨 낸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암 생존자'가 있다. 윤호는 이 단어에는 사회가 만들어 내는 영웅같은 이미지가 포함됐다고 했다. 그는 암 생존자 대신 '암 생활자'라는 표현을 썼다. 윤호도 '암 생활자'다. 암 치료를 끝낸 뒤, 몸에 더 이상 암세포는 없지만 언제 재발할지 모를 불안감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완치라고 말하는데 완치는 엄밀히 말해 있을 수 없어요.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 관해(寬解)만 가능하죠. 치료 마치고 1년이 지나면 '완치됐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건 좀 무리인 것 같고요. 완치라고 얘기해 놓고 5년 지나서 재발하는 분도 많잖아요.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암을 이겨 낸 사람도,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암은 우리 곁에 불쑥 다가온 존재가 됐다. "가족 중에 한 다리만 건너면 암 환자가 있을 정도"라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에서는 여전히 '암 환자'라는 낙인찍기가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지난 겨울과 봄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뉴스를 보며 '암 걸리겠네'라는 표현을 많이 했어요. 답답한 상황을 보면서 에둘러 표현하는 건데요. 그 표현이 암 환자에 대한 또 다른 '낙인'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암은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한다'는 낙인 효과가 있죠. 그렇게 해서 암이 걸리는 게 아닌데…수전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말하면서 질병이 은유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거든요. 지금은 너무 쉽게 거친 비유로 쓰이는 게 안타깝죠."

이 책은 윤호의 암 투병기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 청년들에게 바치는 '사랑 예찬가'이기도 하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윤호가 쓴 이야기와 주은이 쓴 이야기가 한 챕터씩 교차된다. 꼭 둘이 나누는 대화를 읽는 느낌이다. 이 책은 윤호의 암 투병기이기도 하지만, 삼포도 모자라 칠포세대라 불리는 지금 이 시대 청년들에게 바치는 '사랑 예찬가'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은이 아픈 윤호를 만나 끌림을 경험한 뒤, 윤호와 사귀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뇌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은의 대답을 기다리던 윤호에게 전해진 편지 한 장. 주은이 쓴 편지는 "Life is an adventure or nothing, 윤호야 우리 모험을 해보자!"는 문장으로 끝난다. 주은이 용기를 내었고 두 사람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랑의 서사를 이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 요인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조건 '할 수 있어'라는 태도로 말하지는 않는다. 사랑이 모든 것의 정답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구조 속에 살면서 구조에 매몰되지 않을 힘을 키울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리고 사랑의 모험을 통해 우리는 타자 앞에서, 세계 안에서 주체로서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모색할 수 있다. 사랑을 포기하는 편이 더 나은 조건에 처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의 모험에 뛰어들 자격이 있으며, 그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늘을 딛고 도약함에 있어 사랑보다 더 좋은 발판은 없으니." (21쪽)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호와 주은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랑을 피워 냈다. 책 제목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가 내포하는 의미도 그렇다.

"제가 보던 책 <과정과 실재>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사랑은 지배하지 않으며, 또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사랑은 도덕에 대해 별로 주의하지 않는 편이다. 사랑은 미래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직접적 현재에서 그 보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제목은, 사랑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그래서 패배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았어요. 생겨날 수 없는 조건, 불가능한 조건에서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 자체가 패배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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