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퀴어'(queer)라는 단어는 원래 '이상한', '색다른', '기묘한'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한동안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다가, 이제는 성소수자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성소수자를 뜻하는 단어 LGBTQ에서 Q는 '퀘스쳐너리'(아직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거나 따로 성 정체성을 정하지 않은 사람 - 기자 주) 혹은 '퀴어'를 뜻한다.

토크 마당에서 발언을 맡은 세 명 다 여성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에도 <퀴어 성서 주석>(Queer Bible Commentary·QBC)이 번역 출간된다. 2006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QBC는, 성서를 기존의 해석 방법이 아닌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책을 펴낸 'SCM Press'는 "QBC는 전통적인 문제를 새롭고 획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접근 방법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QBC 한국어 번역 작업에는 27명이 참여했다. 목사, 신학자, 인문학자 등 다양한 사람이 참여했다. 번역은 이미 끝났고 마지막 감수 작업을 앞두고 있다. 감수가 끝나면 출판사 편집 과정을 거쳐 빠르면 올해 하반기에 책으로 만날 수 있다.

책 번역에 참여한 한신대 이영미 교수(구약학), 한나 여성주의 연구가, 이진실 문화 연구가(섬돌향린교회)가 모여 '투박하게 시작하는 한국 퀴어신학 운동'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이었던 5월 17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열린 토크 마당에 개신교인 50여 명이 참석해 낯설고 새로운 주제에 귀 기울였다.

고상균 목사(향린교회)가 토크 마당 사회를 맡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사회는 고상균 목사(향린교회)가 맡았다. 그는 '투박하게'라는 단어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고 목사는 "투박하다는 건 질서 정연하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투박한 삶의 자리에 있고, 그 자리에서 이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의 출항을 알리는 소중한 번역서가 올해 후반기 출간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간 이야기들을 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 페미니즘, 성평등이 한국 사회 이슈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에서 성평등이 차지하는 의미는 뭘까.

이영미 / 성평등이라는 큰 주제를 동성애라는 분야로 국한해 설명하겠다. 얼마 전 반동성애 운동 진영이 낸 책 여러 권을 받아서 쭉 훑어봤다.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았는데, 성 윤리가 '부계 혈통 가족'을 지키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가족을 지키는 것, 그것을 벗어나지 않아야만 성서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개신교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동성애 운동을 펼친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개신교 정체성은 "하나님이 세운 혼인 질서에 기초한 가족"을 유지하는 거다. 복음 전파, 영혼 구원이 개신교 정체성이 아니었다.

보수 개신교는 지금까지 한결같은 입장을 보였다. 부계가족을 유지하는 데 위협이 되는 성윤리는 개신교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죄하고 파괴하고 막아 왔다. 자신들이 세운 질서가 위협받을 때 성서를 들이대며, 싹부터 잘라야 우리가 가진 가족을 지키고 개신교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2014년 이후 반동성애 책이 조직적으로 출간됐는데, 한국 보수 개신교는 그들이 생각하는 '개신교 정체성'이 위협받을 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진실 / 교회에서 성평등이라는 단어는 1차적으로는 '양성평등'을 의미한다. 개신교에서 성평등과 성폭력, 성소수자 문제는 각각 다른 깊이와 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교회는 그동안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적 욕망을 금기해 왔다. 성서 속 텍스트는 부족국가의 번성을 우선시한 고대 사람들의 관념이 반영된 것인데, 이걸 그대로 교리로 받아들이는 게 옳은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나 여성주의 연구가는 교회 미래를 걱정하는 자리에 가면 언제나 발제자도 청중도 모두 남자였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나 / 교회에서 성평등을 확장하는 것은 교회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교회 미래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에 가면 발언자가 전부 남성인 경우가 많다.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다 남자다. 남성들로 가득한 교회를 걱정하는 자리에도 남성만 가득하다. 교회가 이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고 스스로 문제라고 인지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오늘처럼 토론자가 전부 여성인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자리는 그런 한국교회 맥락에서 보면 정상이 아닌, '퀴어'한 자리다.

- 척박한 한국교회 상황에서 퀴어신학 운동이 가능할까.

이영미 / QBC는 미국에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소수자들이 성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쓴 책이다. 그만큼 인적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미국은 퀴어신학 운동이 활성화, 정착화하고 있다. 한국은 좀 더 우리 상황에 접목된 운동이 필요하다. 퀴어라는 주제에 대해 개신교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도록 여론화하고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진실 / 퀴어신학 운동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QBC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 너무 반가웠다. 보수적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야 할 당위성, 필요성을 느꼈다.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은 시혜적이었다. 개신교인들은 '동성애는 죄다. 하지만 나도 죄인이니까 언젠가는 동성애자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시혜적인 시각을 지녔다. 이를 정면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성소수자를 정죄하지 않아도 되는 신학적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이를 좀 더 알리면 좋겠다.

한나 / 책을 번역하면서 퀴어신학을 알았고, 공부하면서 감명과 은혜를 받았다. 이 책을 읽은 개신교인은 동성애자를 '시혜적' 시각으로 보지 않고, 같은 신앙인으로서 영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성애자뿐 아니라 이성애자 개신교인도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비(非)퀴어 개신교인이 이 책 안에서 자유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영미 교수는 이제는 침묵의 벽장에서 나와 성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영미 / QBC는 기존 성서학 해석 논리를 비집고 들어가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동성애를 정죄하는 주류 신학 진영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 개신교인들은 주로 "너희들이 중심에 있고 우리가 주변부에 있는데 우리를 중심에 끼워 달라"는 쪽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예 중심이라는 게 없다고 말한다. 대신 '중심'이라고 외치면서 이득을 보는 집단이 누군지를 보여 준다.

- 한국적 퀴어신학 운동이 이제 막 시작이다.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 조언해 달라.

한나 / 예수와 하나님나라를 끊임없이 낯설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낯설게 보기의 시작이다. 그리고 교회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의 안전을 보장해 주면 좋겠다. 이 행사 포스터가 공개되고 나서 "포스터에 나온 한나가 네가 맞느냐"는 확인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이런 행사에 나가게 되면 주변에서 직장 혹은 소속을 밝히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왜 그런지 알게 됐다. 나는 목회자나 신학생이 아니어서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또 하나는 퀴어신학이 단순히 색다른 시각을 전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퀴어'들의 심금을 울려서, 그들을 회심하게 하는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 교회 떠난 퀴어를 교회로 끌어오는 것, 퀴어신학이 그 정도 비전은 갖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영미 / 운동도 중요하지만 당사자와 연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 세 흑인 여성은 용기를 내서 행동하고, 백인 남성 소장은 유색인종만 사용하는 화장실을 부순다. 흑인 여성의 삶이 있고 그 삶이 현실에서 하나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는 건 타자의 연대였다. 그동안 이 문제에 목소리 내지 않던 사람들도 퀴어신학 운동에 참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연대한다는 것은 침묵의 벽장에서 나오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직장에 다니는 입장에서 구설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동안 침묵했다. 그런 단순한 귀찮음 때문에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다면, 이제는 그 벽장에서 나와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행동하지 않는 이론은 얼마나 공허한가.

이진실 문화연구가는 새로 출간될 <퀴어 성서 주석>이 보수 개신교인들을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진실 문화연구가는 새로 출간될 <퀴어 성서 주석>이 보수 개신교인들을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진실 / 이 책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성소수자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 개신교인 친구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하나님이 뭐라고, 종교가 대체 뭐라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종교를 붙들고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개신교를 버리면 되는데, 끝까지 교회에 나가려는 친구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의문을 계속 곱씹으면서 내 모습까지 돌아보게 됐다. 나는 아이를 낳고 보니 삶에 불안과 공포, 허무함이 차올랐다. 언제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뭐라도 붙들고 싶었고 종교를 붙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퀴어신학은 결국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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