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유영 기자] 부교역자, 편의점 아르바이트, 슈퍼마켓 주인, 담임목사. 김수열 목사(도토리교회)가 6년 동안 지나온 길이다. 김 목사는 다년간 경험으로 목회와 교회, 일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그는 부교역자 시절 갓 태어난 아들을 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바쁜 목회로 얻은 건 대상포진이었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2012년, 전임 사역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김 목사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부교역자로 지내면서 교회 사역이 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교인들 신앙을 성장시킨다는 명목으로 계속 프로그램을 돌려야 했고, 교인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집회를 준비해야 했다. 성과 우선으로 사역하니, 교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 과정은 외곽으로 밀려났다.

몸이 아파 부교역자로 지내지 못했던 2013년, 편의점 점주가 연속해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생겼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자살로 내몰렸을까 고민했다. 아파서 잠도 잘 수 없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이 보였다. 술 마시고 난장 치는 사람, 흔히 말하는 '진상' 손님이 허다했다. 김 목사는 점원들이 꺼리는 손님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고통이 일상이 된 사람도 많았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중직 목회자로 살았던 김수열 목사. 뉴스앤조이 유영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반년을 지내면서 목회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목회자들은 어느새 교인과 예배를 '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김 목사는 고민 끝에 슈퍼마켓과 함께 '이웃교회'를 시작했다. 목표는 소박했다. '동네에서 누구 아빠, 슈퍼 사장으로 불리면서 주민과 교제하는 목회자가 된다.'

3년에 걸친 도전은 2015년 11월 끝났다. 슈퍼마켓을 접으며 그가 내린 결론은, 고된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한국에서 목회와 일을 병행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7일 내내 일해 건강도 다시 악화됐다. 쉼이 필요했다. 가족과 지낼 시간도 필요했다.

쉼은 길지 않았다. 2016년 도토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3~4년 일반 노동자로 살다가 다시 전임 목회자가 된 것이다. 노동과 목회를 병행하며 '교회와 일', '목회자의 노동과 이중직', '교회와 사회'를 고민한 젊은 목회자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5월 11일, 서울 목동에 있는 예배당에서 그를 만났다.

"슈퍼마켓 같은 교회
되었으면 좋겠다"

-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목회자로서 느낀 점이 있었는가.

동네 사람들을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아는 사이는 아니어도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 슈퍼마켓을 통해 주민들 필요를 채울 수도 있었고, 이야기 나눌 곳 없는 사람들의 말벗이 되어 주기도 했다.

밤이면 삶에 지친 이들이 술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을 찾았다. 동네에서 동전을 구걸해 술을 사러 오는 아저씨가 있었다. 구걸해서까지 술을 마시느냐고 물었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렸고, 월급은 빚 갚는 데 나간다고 했다. 부끄러울 것도 없는 삶이라 구걸하고, 술로 괴로움을 잊는다고 했다. 내가 부끄러웠다. 한 사람 인생을 듣지 않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건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목회자가 슈퍼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안 주민들은 교회에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고 나를 찾았다. 장로·집사가 슈퍼를 찾아와 신앙 상담을 청했다. 이해할 수 없는 교회의 비상식적 행동이나 성경에 나오는 궁금한 내용을 묻는 사람도 많았다. 교회 목사에게 물어보라고 했는데,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의심하는 이상한 교인으로 몰릴 것 같다는 것이다.

내게 슈퍼마켓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슈퍼마켓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목회'를 경험했다. 사람과 관계하면서 서로 알아가고,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슈퍼마켓이 교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담임하는 교회가 저녁 무렵의 슈퍼 같은 곳이 되기를 바라며 목회하고 있다.

- 이중직 목회자로 살면서 바라본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나.

'성도를 늘려야 한다.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프로그램으로 교인들 신앙을 깊게 해야 한다.' 많은 목회자가 이런 생각으로 '일 중심' 목회를 하는 게 보였다. 성과를 내야 하는 일에 매몰된 교회 모습에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중심으로 교회가 돌아가면 권위주의로 빠지기 쉽다는 사실도 볼 수 있었다. 오로지 성과를 많이 내기 위해서 일하면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받는 사람으로 나뉜다.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 명령권자, 카리스마 지도자 지시에 따라야 하는 부교역자와 교인은 일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누군가 명령하고 누군가는 명령에 따라 일하는 구조로 교회가 돌아가면 안 된다. 잘못된 사회구조를 교회가 답습하는 꼴이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목회했던 이웃교회에서는 목사 중심 교회를 탈피하려고 노력했다. 목사 권위와 의존도를 낮추려고 노력했다. 교회는 목사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곳이어야 하고, 목사는 예배를 일이 아닌 교제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물건만 파는 장소가 아닌 이웃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사진은 내용과 관계없음)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일에서 벗어난 교회'가 어떤 곳인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적은 수가 모였던 이웃교회에는 목사가 많이 방문했다. 그중 한 목회자가 재미난 경험이었다며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내가 슈퍼마켓 일로 예배에 늦게 도착했을 때다. 11시 예배인데, 설교자가 30분 정도 늦었다. 교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목회자도 늦게 도착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예배는 12시 반이 넘어서 시작했다.

개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희한한 교회가 있다고 해서 어떤가 보려고 방문한 목회자 눈에 이 모습이 신기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이었다고 페이스북에 글까지 적었다. 제시간에 시작되지 않는 예배, 목사가 없는데 아무렇지 않은 교인, 대화와 질문으로 이어지는 설교 등이 일로 예배를 준비했던 목회자 관점에서는 놀랍게 보인 것 같다. 어그러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 자연스럽고 즐거웠다고 한다.

"불안한 사회, 노동 환경
목회자도 공감해야"

- 이중직 목회자에서 전임 목회자가 되었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목회도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목회자가 스스로 노동자라고 말하며 사역하기 애매한 지점이 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앙 언어로 사역자로 규정하다 보면 노동자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노동자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교회에서 일하기도 애매하다. 무급도 아니고 유급 아닌가. 교인들이 내는 헌금에서 사례를 받으니 노동이 맞다고 본다.

목사들은 대부분 자기가 좋아해서 목회를 한다. 그러나 교인들은 대부분 일이 좋다기보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 좋아서 하는 일도 힘들지만, 생계를 위해 일하는 교인들 고통은 생각보다 더 크다고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느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슈퍼마켓에서 많은 손님과 교제했다. 손님들은 고단한 삶을 토로했다. 교인들과 이야기해도 다르지 않다. 고단하고 힘들게 산다. 교인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거리가 먼 목회자들이 잘 모를 뿐이다.

- 최근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가 안식 기간에 택시를 운전한다고 해서 이슈가 되었다.

이찬수 목사의 행동과 동기는 이해한다. 하지만 단순하게 노동하느냐 마느냐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은 항상 불안하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는 내일도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이 사회에서 주는 짐을 이겨 낼 수 있을지 불안하고 두렵다.

단순히 택시 운전한다고 택시 운전하는 분들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모두 알 수 없다. 이찬수 목사는 안식 기간이 끝나면 돌아갈 안정적인 장소가 있다.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노동으로 한 달을 살아 낼 돈을 벌 수 있을까', '내일도 계속 일할 수 있을까' 같이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경험하기 힘들다.

택시 운전 이전에 교회 노동 환경부터 바꿔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 안에도 불안에 떠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1년 임시직으로 일하는 부교역자들도 생각보다 많이 불안해한다. 담임목사도 경험해 보았을 문제일 테니 바꾸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 목사는 슈퍼마켓을 정리하고 담임 목회를 하고 있지만, 교인들 삶과 괴리되지 않으려고 고민하고 있다.

- 목회자가 교인들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을 느끼기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은 경험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용이 안정된 담임목사라면 불안함을 잘 모를 수 있다. 담임목사가 교인들이 느끼는 불안을 공감하려면, 교인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도록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무모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최근 교인들과 담임목사 사례비를 두고 고민하며 대화하고 있다. 목회자 사례를 국민 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수준, 하위 50~70% 사이에 맞추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가족 수에 따라 조금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대략 200만 원 조금 넘는 선으로, 일반적 가정에서 버는 금액이다.

사택 제공도 하지 말고, 사례비로 월세와 세금 등도 알아서 내도록 하자고 했다. 교인들도 월급에서 모두 생활하니, 목회자도 같은 조건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사례비를 올리거나 낮추는 것도 사회지표에 맞게 조절하면 된다.

-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왜 복잡하게 하려 하느냐고 교인들이 묻는다. 그래도 이렇게 정해 두면 어느 목회자가 오든 교인들이 살아가는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답한다. 어떤 목회자가 담임이 되어도 교인들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교인들에게 무작정 예배에 나와라, 교회에서 무엇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교인들에게 물어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함께하도록 대화할 수 있다. 그런 목회, 교회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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