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평화를 지킨다던 사드는 소성리의 평화를 망가뜨렸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이곳은 7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로, 주민 대다수가 70~80대인 고령 마을이다. 이석주 이장(64)은 마을에서 '청년'으로 통한다. 마을에는 혼자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다. 39가구가 1인 가구다.

두두두두두두. 5월 12일 아침, 하늘에서 커다란 기계음이 울렸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미군 헬기가 물자를 싣고 사드 부지로 날아가는 소리였다. "저, 저 시끄럽게 뭐하는 짓이야." 마을회관 앞에서 도금년 씨(84)가 짜증을 냈다. 미군 헬기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고 소성리 하늘을 휘저었다. 전날 밤 10시께, 한 주민은 참다 못해 미군 헬기를 향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소성리 할머니·할아버지들은 헬기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늘을 날면 모두 비행기인 줄 안다. 이채구 씨(84)는 비행기가 밤낮으로 마을 위를 지나다니는 게 불안하다고 했다. "시끄럽기도 하고, 비행기가 뭘 저렇게 싣고 다니는 건지, 불안해 죽겠어."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헬기 소리를 처음 듣고 지진이 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옆에 있던 박철주 상황실장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박 실장은 "국방부에 민원을 냈다. 주민들이 헬기 소음 때문에 고통을 호소한다고 알렸다. 담당자가 '다른 방향은 산세가 높아 마을 위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채구 씨는 매일 마을회관 앞에 나온다. 조용했던 마을이 사드 때문에 시끄러워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침이 되면 소성리 할머니들은 보행기에 의지해 마을회관으로 모인다. 예전에는 매일 떼기(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채구 씨는 소성리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50년 역사의 성주 참외가 유명하지만 이채구 씨가 어렸을 때는 주민 대다수가 나락(벼) 농사를 지었다. 이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벼 농사를 짓고 있다. 주말에는 도시에 있는 아들들이 농사를 도우러 온다. 이 씨는 소성리에서 아들 셋을 키우고, 손녀 셋을 봤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박 씨(72)는 집안이 1592년 소성리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다. 조상들은 일본군을 피해 산골 마을로 피난 왔다고 박 씨가 말했다. 그는 이 씨처럼 오랫동안 나락 농사를 지었다. 박 씨를 만난 곳은 마을 입구였다. 그는 새벽부터 논에 나가 잡초를 뽑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드 때문에 촌 동네가 난리야. 한때 소성리는 피난골로 불렸어. 시골이니까, 군대 가기 싫은 총각들이 여기 와서 숨어 살았지. 자녀들은 동네가 시끄러우니깐 이제 그만 나와 살라고 해. 이 나이에 나가면 뭐하고 살겠어. 주민들 대다수가 산 만큼 산 사람들이야. 우리가 우리 좋다고 사드 반대하나, 후손들 위해 반대하는 거지. 조상들이 물려준 소성리, 그대로 전해 주고 싶은 거지."

이석주 이장(사진 오른쪽)은 올해 5년째 소성리 이장을 맡고 있다. 사실 지난해 임기가 종료됐는데, 주민들이 사드 문제로 앞에 나서 줄 '청년'이 필요하다며 연임을 요청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소성리 할머니들이 박철주 상황실장(사진 오른쪽)에게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도금년 씨는 지난해부터 가슴에 파란 배지를 달기 시작했다. 파란 배지는 사드 반대를 의미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소성리 주민들은 새로운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석주 이장은 "지난 정부는 사드 배치를 몰아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드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한다고 밝혔다. 새 정부는 우리들 의견을 수용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옆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강희성 씨(71)도 "대통령이 후보 때 말한 게 있지 않나. 절차를 지킨다고 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 기대가 된다"고 했다.

낙관만 있는 건 아니다. 박 씨는 "이미 장비 일부를 갖다 놓았으니 어렵지 않을까 싶다. 사드 배치를 아예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대통령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미국이 압력을 가하면 힘들지 않겠나"고 말했다.

소성리 주민들은 오랫동안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지지자였다.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이들은 완전히 돌아섰다. 강희성 씨는 부산 출신이다. 7년 전 소성리로 이사 왔다. 산 좋고 물 좋은 동네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평생 보수 정당만 지지해 왔다. 지금은 아니다.

"배신감을 느꼈다. 사드 배치한다고 결정할 때 주민들 의견 한번 물어본 적 있나. 더 이상 지지할 마음이 없다."

도금년 씨도 지난 정부가 밉다고 했다.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싫다. 성주군민이 촛불 든 지 1년이 되어 간다. 그런데 와서 인사 한번 해 봤나, 위문 한번 해 봤나. 지도자가 맞는지 모르겠다. 국민을 위로할 줄 알아야지.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 뽑아 줄 마음 없다."

대선 이후 성주군은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 군민 51%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뽑았기 때문이다. 홍준표 후보는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개표 결과를 보고 성주군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성주군민을 비판했다.

이석주 이장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성주군민 대다수는 고령층이다. 젊을 때부터 박정희 정권을 신봉해 왔다. 총선이나 대선 때 새누리당이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다. 지난 대선에서 85%가 박근혜 후보를 뽑지 않았나. 조직력도 막강하다.

대선을 앞두고 군민들 사이에 '문재인은 빨갱이다', '아버지가 이북 출신이다'는 가짜 뉴스가 퍼졌다. 문재인 후보를 싫어하는 군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안철수 후보 지지자가 많았는데, 나중에는 홍준표 후보로 기울더라. 그래도 대선 결과는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콘크리트 지지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현재 소성리 사람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밖으로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군 당국과 싸우고, 안으로는 사드를 찬성하는 군민들과 싸운다. 정부가 지난해 7월 성주군청 인근 공군 성산포대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발표했을 때는 성주군 관과 민이 연합해 반대했다. 이후 정부가 부지를 소성리 인근 롯데 골프장으로 변경하자, 일부 관변 단체가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석주 이장은 성주군 내 반대 여론이 전보다 약화됐다고 말했다.

사드는 소성리의 일상을 바꿨다. 시민들은 24시간 교대하며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사드 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난 어버이날은 성주군민이 사드 반대 집회를 연 지 3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는 이날 저녁 성주군청 앞 주차장에서 300회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소성리 할머니·할아버지들도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원래 매년 어버이날에는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마을 축제가 열린다. 주민들이 음식을 나누고 윷놀이 같은 전통 놀이를 즐긴다. 하지만 지난해 사드 배치로 마을이 시끄러워지면서 모든 행사가 취소됐다.

도금년 씨는 사드 문제가 불거지면서 마을 안에 축제 소리가 끊겼다고 말했다.

"매년 정월 대보름, 설날, 어버이날에는 축제를 열었는데 일절 끊겼다. 매일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서 하는 떼기(화투) 치기도 이제 안 한다. 언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긴장하는 거다.

우리도 국민이다. 힘없다고 소수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할머니 한 분은 가슴에 한이 쌓여 죽겠다고 말한다. 정부와 국민들이 소성리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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