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 2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는 도심에서 살다가 여생을 보내기 위해 온 외지인이 많다. 이 한적한 마을에 발달장애인 공동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큰나무캠프힐(캠프힐). 목회자가 운영하고 있는 공동체다.

캠프힐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논밭 사이 작은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지났더니 꼬불꼬불 울퉁불퉁 오르막길이 나왔다. 자동차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굉음을 냈다. 꽤 깊숙이 들어가자 단독주택이 늘어선 마을이 나왔다. 얼마 안 돼 내비게이션이 도착을 알렸다. 문연상 목사(52)가 식구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기자를 맞았다.

캠프힐에는 문연상 목사 부부와 발달장애인 6명(19~24세)이 모여 산다. 캠프힐 시작 전, 문 목사는 특수교육 센터와 대안 학교를 각각 10여 년 운영했다. 그때부터 알고 지낸 이들과 캠프힐을 꾸렸다. 발달장애인 6명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박상일 씨(24)는 3살 때 특수교육 센터에서 문 목사를 만났다.

문 목사는 대안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사회에서 자립하는 것을 돕고 싶었다. 무엇이 필요할지 고심한 끝에, 한국에는 없지만 영국, 아일랜드, 독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애인 공동체 '캠프힐'을 떠올렸다.

문연상 목사(뒷줄 가운데)는 특수교육 센터, 대안 학교를 거친 이들을 위해 큰나무캠프힐을 설립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농사로 자급자족
가족 공동체 지향
존재 이해하고 존중

캠프힐은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어울리며 자립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래서 지역사회와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았다. 캠프힐 바로 옆에는 지역 주민이 살고 있는 단독주택 세대가 줄지어 있다.

캠프힐 구성원들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한다. 문 목사는 3년 전 캠프힐 인근 1,800평 규모 농장을 장기 임대했다.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밭을 가꾸고, 밀·고추·마늘·양파 등을 심었다. 문 목사는 농사가 발달장애인에게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도시에서는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어요. 대다수 실내에서 하는 단순 반복 작업이죠. 정서에도 좋지 않아요. 반면, 농사는 좋은 점이 많아요. 수레를 끌거나 밭을 가는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요. 여러 일을 하며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어요. 선택 폭이 훨씬 넓은 거죠. 농사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만 안 부리면,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어요."

직접 재배한 밀로 빵을 만들기도 한다. 빵은 캠프힐 구성원의 주식이다. 매일 전날 구운 빵과 샐러드, 주스로 아침을 해결한다. 캠프힐 옆 부지에는 카페, 베이커리로 사용할 건물이 한창 공사 중이다. 마을에 거주하는 220여 가구가 타깃 고객이 될 것이다. 최근에 문 목사는 빵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민들에게 시식을 권하고 있다. 올리브 브레드, 감자 치아바타는 마을 주민에게 인기 메뉴라고 한다.

캠프힐 뒤쪽에는 1,800평 규모 농장이 있다. 농장은 발달장애인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캠프힐에서 만든 감자 치아바타. 마을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얼핏 보면, 발달장애인이 한곳에서 같이 지낸다는 점에서 캠프힐은 일반 장애인 공동 거주 시설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시설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묻자 문 목사가 답했다.

"시설은 구성원을 관리자와 대상자로 구분해요. '그룹 홈'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겉으로 볼 때 그룹 홈 형태지만, 발달장애인을 관리·통제 대상으로 보지 않아요. 가족으로 여겨요. 부모님들도 함께 와서 살 수 있는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어요.

'슈타이너 교육관'을 수용하고 있거든요. 교육철학자 슈타이너는, 사람을 교육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해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죠. 장애인을 대할 때는 한 명 한 명을 특별하게 대해야 해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들의 겉모습 이면에 있는 존재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거죠."

문연상 목사는 '함께 산다'는 말을 반복했다. 캠프힐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시간표나 프로그램이 없다. 발달장애인 중 일부는 아침에 늦잠을 자기도 하고, 다들 농사지으러 간 상황에서 심부름 핑계로 쉼터에 와 농땡이를 부리기도 한다. 울타리나 담도 없다. 마을 주민이 밭에서 농사하다 물 한잔 마시러 들르기도 한다. 문 목사는 "기존 마을에 발달장애인들이 들어와 어울려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준비 끝에 시작
독립 필요성 알지만
결심 못 하는 부모들

캠프힐은 문을 여는 것을 준비하는 데만 5년이 들었다. 본래 지난해 봄에 문을 열 계획이었다. 부지를 결정하고 인원을 모으는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졌다.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장애인 부모 동의를 얻는 일이었다.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되면 독립해서 잘 살아가길 원해요.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죠. 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면 갈 수 있는 곳이 적어지거든요. 성인 장애인을 위한 기관이 많지 않아요. 한 기관을 오래 이용할 수도 없어요. 형평성 때문에 이용 기간이 정해져 있거든요. 결국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가정 아니면 시설로 좁혀지는 거죠.

캠프힐은 성인이 된 이들이 함께 살며 자립하도록 돕고 있어요. 하지만 부모들은 불안해해요. 내 자녀가 혼자 가서 잘 살 수 있을지, 다른 장애인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하는 거죠. 두 마음이 상충하는 거예요. 결국 이런 갈등이 최종 결정 시기에 입주를 거부하게 만들기도 해요."

한창 공사 중인 캠프힐 주거동. 한 동에 25평으로, 2~3명씩 살 계획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 건물은 카페, 베이커리로 쓸 계획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문연상 목사는 대안 학교 '큰나무학교'를 운영하면서 캠프힐을 준비했다. 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인은 20여 명이었다. 그중 6명만 캠프힐에 입주하기로 결정했다. 두 가정은 자녀를 따라 캠프힐 옆에 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다른 부모들도 준비가 되는 대로 캠프힐이 있는 도장리로 이사할 계획이다.

문 목사가 말했다. "뜻이 맞고, 마음 맞는 이들이 모여 살면 그게 마을이고 공동체인 거죠. 캠프힐을 크게 확장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함께 살기에는 적은 수가 더 낫거든요. 도장리 주민 대다수가 장애인 공동체에 부정적이지 않아, 주민 몇 분 설득하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들어올 수 있었어요."

'상담' 꿈꿨던 전도사
장애인 사역에 눈떠

문연상 목사는 처음부터 장애인 사역을 꿈꾸지 않았다. 그가 장애인 사역을 시작한 건 1994년 신대원 2학년 때다.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장애인부를 맡았다. 발달·지체장애인이 한곳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문 목사는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어요. 사역이 너무 즐거워 누구보다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장애인부 교인은 일주일 한 번 예배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갔다. 문 목사는 평일에도 이들에게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상담을 전문으로 공부하려 했던 문 목사는 특수교육으로 진로를 바꿨다. 1996년에는 발달장애인 아동을 위한 특수교육 센터를 열었다.

"유아 때 장애 진단을 받으면 언어, 감각, 인지 등 여러 치료를 받아야 해요.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특수교육 센터가 많지 않았어요. 오늘날과 달리 정부가 지원금을 주지도 않았어요. 부모가 매달 치료비로 약 200만 원을 부담해야 했죠. 뜻이 맞는 장애인 사역자와 함께 시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특수교육 센터를 만들었어요."

문연상 목사가 빵 재료에 대해 묻자, 박상일 씨(24)가 일어서서 대답하고 있다. 박 씨는 3세 때 특수교육 센터에서 문 목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문 목사는 2005년, 특수교육 센터를 사임하고 대안 학교 큰나무학교를 설립했다. 특수교육 센터에서 만난 친구들이 학령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문 목사는 이들에게 일반 학교 교육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친구들이 성인이 되면서 캠프힐을 만들었다.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갈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제가 강화도 시골 마을에서 빵 굽고 있을 줄 20년 전에 상상이나 해 봤겠어요. 누구는 왜 그렇게 사냐고 걱정하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즐겁고 재밌어요. 이 일이 잘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꺼내면 친구들 눈이 초롱초롱해져요. 자기들이 방금 전 만지작거리던 반죽이 맛있는 음식으로 변한 게 신기한 거죠. 이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겠다는 마음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던 것 같아요."

문연상 목사는 한국교회 장애인 사역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는 여러 교회에서 장애인부를 맡으면서 교회가 구색을 갖추기 위해 장애인 부서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장애인부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돕는 거점이 되어야 해요. 장애인이 자신들의 강점과 역량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해요. 통합을 지향하며 함께 예배하고 모임을 가져야 해요. 그렇지 않고 본당과 멀리 떨어져 있어 교인들 눈에도 잘 안 띄는 곳에 장애인부 예배를 만들어 몰아넣고 그 안에서만 활동하라고 하면, 이건 집단 소외를 낳을 수 있어요."

그렇다면 꼭 캠프힐처럼 공동체를 해야 할까. 문 목사는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에 맞는 사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재정, 인력, 지역 상황이 모두 다르니 장애인 사역 스펙트럼이 넓을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대형 교회가 현실에 맞게 할 수 있는 건 주간 보호소라고 생각해요. 지역사회 안에 성인 발달장애인이 낮에 지낼 만한 곳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교회는 낮에 빈 공간이 많으니, 이들을 위해 개방하는 거죠."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거나, 장애인 사역으로 고민하는 목회자를 위해 조언 한마디해 달라고 부탁했다. 문 목사가 말했다.

"장애인 사역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해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만약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킨다는 마음으로 이들에게 접근한다면, 금방 지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어요. 그때는 그냥 같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돼요. 제가 공동체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목회자들이 장애인 세계를 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이들 곁을 지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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