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늦을 뻔했어요. 나오는데 갑자기 상사가 야근할 수 있냐고 물어봐서요.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는데, 종종 그래요. 아마 인터뷰 없었으면 야근했을 거예요. 왜 항상 그렇게 퇴근할 때 돼서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지 이해가 안 돼요."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배채희 씨(가명)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회사 이야기부터 꺼냈다. 직장 상사를 뒤로하고 왔다는 배 씨.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배 씨는 5년 차 직장인이다.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이후 줄곧 IT 회사에서만 일했다.

배 씨가 근무하는 회사는 IT 업계에서 제법 탄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 복지도 나쁘지 않다. 점심, 저녁 식대 제공은 기본이고, 한 달에 한 번 전 직원이 쉰다. 당일 휴가비도 나온다. 복지비 100만 원도 지급한다. 이 돈으로 책을 사거나 영어 학원을 다니거나 헬스를 해도 된다.

배 씨 지인들은 모두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며 부러워한다. 그도 자신이 바라던 회사에 취업해서 좋았다. 처음 "출근하라"는 인사팀 전화를 받았을 때 너무 좋아 밥을 먹다 소리를 질렀다. '꿈꾸던 회사에 들어가니 열심히 배워야겠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부풀었다.

배채희 씨는 5년 차 직장인이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입사 후 배채희 씨는 회사 동료에게 최선을 다했다. 관계를 중시 여기는 스타일이기도 했고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다. 회사 동료는 유독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배 씨는 그 인식을 더 공고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초콜릿을 선물하고, 강제가 아닌데도 회식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새벽 4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술자리에서는 게임도 도맡았다. "XX가 좋아하는 베스킨라빈스 써리원"을 외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 자체는 좋았지만, 동료와의 관계는 갈수록 부담이 됐다. 언제부터인가 직장 동료는 배 씨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만만한 사람' 취급했다. 팀원들 사이에서 적막했고 외로웠다.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눈뜨면 그 사람들 얼굴을 또 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어요. 하루는 직장 상사가 교통사고 나서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껴졌어요. 너무 외로워요. 저는 한 번도 하나님한테 회사 문제로 기도한 적 없어요. 월급 많이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고요. 그냥 하나님 섬기고, 주변 사람 도울 수 있는 곳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기독교인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 주고 싶지 않아서 뭐든 열심히 했어요. 동료들에게 잘해 주고 일부러 웃기도 하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저를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어요. '도끼병'이냐고 하기도 하고…."

무시하는 말투는 약과였다. 최근 회사에서 '연애 XX'라는 말을 들었다. 남자 동료와 이야기를 하던 중 배 씨가 "연애 안 한지 오래됐다"고 하니, 연애 못 하게 생겼다면서 한 말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동료가 막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더 화가 난 건 동료의 태도였다. 그는 웃기기 위해 배 씨를 개그 코드로 사용했다. 사과는 없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약속이 있어 회식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니 직장 상사가 "처신이 올바르지 못하다. 늘 핑계는…"이라고 지적했다. 배 씨만 빠진 게 아닌데, 직장 상사는 유독 배 씨에게 문제가 있다는 듯 말했다. 그는 자기가 빠지면 술 게임을 진행할 사람이 없으니까 직장 상사가 이렇게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순간 '업무하러 회사 오는 건지, 다른 사람 뒤치다꺼리하러 오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막내라서 그런지 간식 메뉴는 늘 제가 정해요. 일단 동료들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어요. 일이 바빠서인지 대답하지는 않아요. 그럼 당연히 제가 알아서 시킬 수밖에 없잖아요.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면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려요. '아니 음식을 왜 이렇게 조금 시켰어', '나 이거 싫어하는데' 식으로 말이에요. 화가 나요. 미리 이야기하라고 할 땐 안 하더니. 그럴 때마다 울컥 눈물이 나요."

배 씨는 모태신앙이다. 몇 년째 청년부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주말도 쉼 없이 교회 봉사
교회 테두리에 갇힌 신앙
'헌신' 당연시하는 목사들

배채희 씨는 주말이면 교회에 나간다. 모태신앙이다. 주말 일정은 교회 사역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말에 교회로 출근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교회 소그룹 리더, 찬양팀, 부회장 등 안 해 본 게 없다. 최근 몇 년간 청년부 임원을 맡고 있다. 평일 저녁에 교회 회의가 잡히면, 직장 일을 부랴부랴 마치고 참석한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밤 11시가 넘어 집에 올 때도 있다. 5시간 자고 다시 출근해야 한다. 배 씨는 쉼 없이 '회사-교회'를 오가는 극한 생활이 일상에 타격을 준다고 말한다.

"하루는 목사님이 새벽 기도회에 나오라고 했어요. '리더가 먼저 참석해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헌신해야 한다'고 했죠. 그날도 무리해서 새벽 기도 갔는데, 결국 직장에 지각했어요. 직장 다니면서 처음 지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잠귀가 예민한 편인데, 그날 맞춘 알람 10개 모두 듣지 못했어요. 화장도 못 하고 얼굴만 대충 씻고 출근했죠. 그때 무리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몸이 버티지 못하더라고요.

저도 주말에는 쉬고 싶어요. 제 시간 갖고 싶어요. 그게 안 될 때는 정말 그만하고 싶죠. 주말에도 교회만 가니, 주변에 온통 교회 사람들뿐이에요. 가족들도 '너는 주말에 교회만 가고 우리랑 왜 시간 보내지 않느냐' 말하기도 하고요. 속상한데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배채희 씨는 교회가 '무조건적인 헌신'을 강조할 때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배 씨는 "힘들다"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특히 열심히 교회 생활하는 것을 신앙의 전부처럼 말하는 목회자를 보면 숨통이 막힌다고 했다. 헌금 열심히 하고, 교회 봉사와 예배 출석 잘하는 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청년'의 표징이 될 때 고통스럽다. 신앙이 교회 테두리에 갇힌 느낌이다.

가끔 주일예배 말고 수요·절기 예배에 참석하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얼굴도장 찍으러 교회에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음 없이 몸뚱이만 온 것은 아닌지 찝찝하다. 그렇게 예배하고 집에 오면 마음이 허전하다.

"예수를 만났다고 해서 꼭 헌신하는 건 아니잖아요. 시간과 여건이 안 되면 못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설교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마음은 있는데 여건이 안 된다고 말하면 핑계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설교를 들으면 청년들 마음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이제 막 청년부 올라온 친구들에게는 통할지 몰라요. 그런데 이미 사회생활을 경험한 청년들에게는 한계가 있어요.

대부분 '주님께 맡기고 나아가라'고 설교하잖아요. 물론 맞는 말이죠. 그런데 청년들이 사는 현실에는 눈감은 채 그런 이야기만 하면 답답해요. 전에 그런 설교도 들었어요. '십일조 내면 하나님이 무조건 복 준다, 헌금 내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내고 싶은데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이 설교를 들으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월세 내고 홀로 삶을 꾸리는 청년들이 들으면 어떨까요. 헌금, 예배 출석을 믿음의 지표인 것처럼 말하는 게 싫어요."

"청년은 열정적으로 하나님 믿어야 한다"는 말이 불편하지만, 배 씨는 당분간 교회 사역을 계속할 생각이다. 20대 초반에 공동체에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지쳐서 그만하고 싶을 때도 이제 갓 청년부에 들어온 친구들을 보면 힘이 나요. 더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청년들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옆에서 본 목사님들은 열심히 하는 청년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만 일을 시켜요. 나중에는 독박 쓰는 느낌도 들어요. '당연히 해야지'라는 뉘앙스로 부탁하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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