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아픈 사람들끼리 연대하면서 자라난다고 생각한다. 광화문·안산·팽목항·목포항 등에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곳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모였으면 좋겠다. 흩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416기억전시관 목요 문화제에서 양민철 목사가 말했다. 기억전시관은 단원고등학교 앞 낡고 허름한 상가 3층에 있다. 10평 남짓 작은 공간이다. 아래층에는 PC방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생전에 학교 수업을 마치면 이곳에 와 게임을 했다고 영석 아빠 오병환 씨는 말했다. 지금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신해 상가를 찾는다.

416기억전시관은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416 세월호 참사 기억 프로젝트 3.0' 일환으로 문화제와 전시회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목요 문화제가 4월 27일 열렸다. 416기억전시관 운영위원이자, 광화문광장에서 3년간 천막카페를 운영해 온 양민철 목사가 강연했다. 제목은 '함께하면 희망이 자랍니다'. 양 목사가 천막카페를 시작하면서 자원봉사자들과 나누었던 문구다.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416기억전시관에서 목요 문화제가 열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픔이 아픔을 위로한다

양민철 목사는 강연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함께 갑시다"로 인사를 나누라고 권했다. 전시관 바닥에 앉아 있던 세월호 가족, 시민 등 10여 명은 양옆에 있는 사람을 마주 보며 인사했다. "함께 갑시다."

양 목사는 광화문광장에서 보낸 3년을 사진으로 소개했다. 3년을 보내면서 양 목사는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아픔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인도에서 찾아온 신학자 한 무리가 있었다. '달릿'과 함께하는 신학자들이다. 달릿은 인도 신분 계급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은 인도 사회에서 가장 천하게 취급받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달릿 신학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을 만나 함께 예배했다. 양민철 목사는 홍보 포스터에 있는 문구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포스터에는 '아픔과 아픔의 연대'라고 적혀 있었다.

'아픔과 아픔의 연대'는 계속됐다. 지난해 말, 세월호 가족은 백남기 농민 빈소를 조문하고 유가족과 함께 거리로 나와 진상 규명을 외쳤다. 양민철 목사는, 아픔을 아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518 행사 전야제에서는 518 희생자 가족과 세월호 가족이 연대했다. 518 희생자 가족은 광주를 찾은 세월호 가족을 환영하고 한 사람씩 포옹하고 위로했다. 

"이 장면은 내게 너무 큰 감동을 주었다. 아픔을 아는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직접 품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아픔을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가족들은 백남기 어르신을 추모하며 유가족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양민철 목사는 자신에게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기에 3년간 천막카페를 섬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는 3살 많은 둘째 형이 있었다. 둘째 형은 양 목사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 청량리 한 병원에서 의사가 형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 쓰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양 목사는 말했다.

"형을 잃은 아픔이 오랫동안 내 안에 있었다. 1년 동안 꿈에서 형을 만났다. 형과 종일 골목에서 뛰놀다 형에게 '형, 이거 꿈 아니지' 물으면 꿈에서 깼다. 아픔이 있다는 건 큰 상처이기도 하지만, 이 아픔이 조금이라도 세월호 가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양민철 목사는 아픈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광화문광장에 많은 일이 있었다. 2014년 7월 14일에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2014년 8월 1일부터 9일간 '광화문 국민 휴가' 행사가 있었다. 2015년 4월 2일에는 세월호 가족 삭발식이 있었고, 2015년에는 세월호 참사 1주기 행사가 있었다. 천막카페 목요 문화제, 민중총궐기도 이어졌다.

양 목사는 1주기 때 열린 집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시민들이 세월호 가족과 함께 행진하고 농성을 벌였다. 경찰이 시민들을 연행하려 하자, 세월호 가족이 시민을 빙 둘러싸 경찰을 막았다. 양 목사는 그 모습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가 엄마·아빠를 지키려 했는데 도리어 그들이 우리를 지켜 줬다. 많은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위로를 얻었다고 전했다."

티베트 불교 3대 존자 샤카 티진이 광화문광장을 찾았던 당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 온 샤카 티진은 2015년 5월 6일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에게 분향했다. 이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한 양 목사는 한 대형 교회 목사에게 사진을 보냈다고 했다. "해외 종교 지도자도 이렇게 와서 분향하는데, 당신은 왜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이곳에 아직까지 오지 않느냐 물었다."

"광화문광장에 나가면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이들은 '가족들과 끝까지 가겠다'며 매일 결심한다고 한다"고 양 목사는 말했다.

목요 문화제 참석자들이 길가는밴드 노래를 듣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416기억전시관은 문화제와 아울러 전시회도 열고 있다. 전시회 '그날을 오늘처럼'은 4월 13일 개막했다. 만화인행동, 안산여성문학회, 캘리그래퍼 우미애 씨가 작품 30여 점을 출품했다. 3년 전 그때를 계속해서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시, 삽화, 캘리그래피에 담았다.

문화제는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목요일 저녁 '목요 문화제 기억 그리고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이 함께 노래를 듣거나 강연을 듣는다. 9월 7일까지 총 13회 열린다. 세 번째 목요 문화제는 5월 11일 열린다.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가 연사로 참석한다.

기억전시관 천장에는 등이 달려 있다. 각 등 안에는 희생자들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이 들어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416기억전시관에서 전시 중인 작품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붉은색 가방 / 서길심

택배가 왔다
너와 함께 샀던 빨간 캐리어 가방
주인 손길 닿기도 전에
작은 박스가 되어 돌아왔다
가방 속에 담긴 너의 이야기는
비가 온다는 아빠 말에 챙겨간 우산이
아직도 가지런히 접힌 채
펼쳐 보지도 못했구나
엄마는 젖은 옷을 빨고 있다
손으로 발로 주무른다
너는 지울수록 선명해져
빨래줄 가득 너머
마른 햇볕 아래서
홍조를 띠고 내게 웃어 보일 것만 같다

기도 / 김남순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잊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3년을 버티어 온 기억이
날개 달고도 도로 한가운데에서 차에 치일 수 밖에 없는
새의 마지막 맥박을 보면서
주저앉아 통곡을 한다
공중파를 타고 날아온 수많은 소식에서
이제는 너희의 안부를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대,
세상 어디에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것들만 도처에서 만나게 될 때
불현듯 드리는 기도
기도는 깊은 밤 홀로 지켜낸 가로등이 아침을 맞는 무기력처럼
세상 관심 밖 희망이 꺼져 갈 때 필요한 법

오늘 간절히 기억의 묘목 한 그루 심어 놓는다
너희, 다시 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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