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난민이라고 피부색 다른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단된 한반도는 또 다른 '난민'을 만든다. 북한 체제를 견디지 못한 주민들은 중국 혹은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넘어온다. 북한 이탈 주민은 제3국에 체류하는 동안 원하지 않아도 난민으로 살아야 한다. 여느 난민과 다른 점이라면 발각 즉시 본국으로 송환된다는 점이다. 불안한 생활을 이어 가던 이들이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기분은 어땠을까.

강혜정 씨(가명)는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 숨죽여 지냈던 중국에서의 5년, 하루하루 피 말리며 이동해 도착한 태국에서의 시간들이 있었다. 태국 국제 감옥에서 범죄자들과 한방을 쓰며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직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만을 그렸다.

북한 이탈 주민 혜정 씨 이야기를 듣기 위해 종로구 계동 한국알트루사에 모인 회원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여성 단체 한국알트루사 계동 본부에 모인 사람들이 숨죽이고 강혜정 씨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알트루사는 올해부터 매월 한 차례씩 한국에 살고 있는 난민 여성을 초청해 이야기 듣는 시간을 갖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는 난민을 더 많이 만나고, 그들의 삶을 나누자는 취지에서다. 지난달에는 콩고에서 온 그레이스 이야기를 들었고, 4월 25일에는 분단이 초래한 난민 강혜정 씨를 초청했다.

강혜정 씨는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 이야기하는 게 처음이라 전날 밤잠도 설쳤다고 했다.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북한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오랜 해외 생활 뒤 한국에 와서 말이 통하는 사람들, 같은 민족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는 혜정 씨. 2시간 넘도록 혜정 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참석자들은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환한 웃음으로 혜정 씨 이야기에 화답했다. 한국에 온 지 이제 6년, 여전히 한국 사회에 적응 중이라는 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중국에서 5년
나는 숨죽여 사는
난민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몰래 숨어서 외국 TV 프로그램을 보며 한국을 동경했다. 북한은 목을 조르는 곳 같았다. 한국 영화를 보고 난 뒤 몰래 탈북 의사를 내비쳤을 때 부모는 두려워했다. 그때만 해도 탈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발각되면 온 집안 식구가 소리 없이 사라지던 때였다. 투병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강혜정 씨는 탈북을 결심했다.

먼저 중국으로 갔다. 중국에는 어머니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5년 동안 가족 테두리 안에만 머물렀다. 잘못했다가 혜정 씨 존재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바로 북한으로 송환돼야 했다. 과거 어머니의 약을 중국에서 몰래 들여오다 붙들린 적 있는 강 씨는 당시 '노동단련대'로 불리는 곳에 갔다. 단련대는 우리가 익히 들은 것처럼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다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 씨는 자꾸 움츠러들었다.

어디에 있든지 '북한'이라는 두 글자는 혜정 씨를 괴롭혔다. 영화 '태양 아래' 한 장면. 사진 출처 THE픽쳐스

"5년 동안 외부 생활은 전부 차단하고 숨죽여 살았어요. 자다가도 밤에 불빛만 오면 뛰쳐나가 눈밭을 달려 숨었죠.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저를 완전히 없애고 살았죠."

혜정 씨에게는 신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증명서도 없었다. 분단된 조국은 강 씨를 또 다른 '난민'으로 만들었다. 한국으로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강 씨는 중국 체류 5년째 되는 해에 태국 국경까지 목숨을 건 여행을 시작했다. 북한을 떠나온 여성 4명과 함께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남들은 여행 가서 즐겁게 타는 보트를 혜정 씨는 목숨을 걸고 탔다. 험난한 산길을 걷다 생사를 달리했다는 사람들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하나님을 믿게 된 혜정 씨는 매 순간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린 덕분에 한국까지 무사히 오는 길이 열렸다고 믿는다. 그만큼 한국으로 오는 과정은 험난했다. 밤낮으로 기도했다. 함께 떠난 4명은 하나님의 '하'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붙잡고 기도했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고락을 같이했다.

억눌렸던 중국 생활
한국서도 크게 변한 것 없어

오랜 기다림 끝에 혜정 씨는 2011년 한국에 도착했다. 6개월간 새터민 적응 교육을 마친 뒤 한국 사회에 편입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는 즐거움도 잠시, 혜정 씨는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노래하는 것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의 혜정 씨는 중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며 살았다. 큰 소리 내는 것을 자제했다. 신분을 밝히는 것은 물론 말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에게 태어난 곳, 가족, 말투, 성격 등은 누가 바꾸려야 억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자유로운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혜정 씨가 한국에 오기까지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 많고, 그가 살면서 만난 사람 10명 중 9명은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10% 때문에 혜정 씨는 또 자신을 속여야 했다.

북한에 사는 동안 혜정 씨에게 국가 지도자를 욕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영화 '태양 아래' 한 장면. 사진 제공 THE픽쳐스

혜정 씨에게 '북한'은 평생 그를 괴롭힌 말이었다.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야 했고, 중국에서는 북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한 뒤에도 북한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했다. 우선 그가 말할 때 주위 사람들은 그의 억양을 의아해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교육받을 때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법부터 사람 사귀는 법까지 배웁니다. 물론 억양도 오해 안 받으려면 노력해야 한다고 들었죠. 그런데 억양은 노력한다고 해서 단번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억양 문제는 지금도 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요. 가끔씩 중국에서 오셨냐, 조선족이냐고 물어요. 조선족이냐고 물으시면 조선족을 굉장히 안 좋게 평가하는 말을 동시에 하세요. 한국 사회 좋은 분이 많지만 가끔 그렇게 편견을 갖고 말씀하시는 분들 만나면 안타깝고 속상하죠."

혜정 씨는 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자신이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한민족이라고 찾아왔는데 분단 70년 간극은 작지 않았다. 문화도 다르고 못 알아듣는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 경우가 반복되다 보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화를 내는 것보다 속으로 삭히기 바빴다.

속으로 삭히기만 하던 혜정 씨는 친하게 지내던 동네 주민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믿고 한 말이었는데 친구는 혜정 씨를 속된 말로 '얕잡아 봤다'.

"모든 초점이 제가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데 맞춰졌어요. 어떤 행동을 해도 '북한은 이런 거 없지?'라고 말하거나 '북한에서 왔으니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겠다'라거나. 생각해 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사실 큰 상처가 됐죠. 그래서 그때 생각했어요. 북한 출신이라고 말해 봐야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드니까 북한에서 왔다고 밝히면 안 되겠구나 했죠."

한국에 와서도 답답함을 느끼던 혜정 씨는 한국알트루사를 만나 속이 좀 트였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가만히 강의를 듣던 문은희 소장(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이 말을 꺼냈다.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꺼내는 혜정 씨를 위로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에서 온 새터민만 교육하는 현실 때문에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새터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들을 이상하게 본다는 뜻이었다.

"왜 우리는 하나도 교육받을 게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새터민만 우리에게 적응하라고 할까요. 교육에 문제가 있는 거죠. 어떤 사람은 '아니 우리가 왜 그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해요,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적응해야지'라고 하는데, 이건 자세의 문제예요. 우리가 왜 바뀔 게 없어요. 마치 우리가 뭔가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새터민은 외부 시각으로 우리를 보기 때문에 우리 문제점을 보는 게 다를 거거든요. 그렇게 서로 협력하는 건데. 우리는 마치 아무것도 고칠 게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해요. 완벽하다고 하면서 대통령은 왜 탄핵해야 했나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거든요."

답답한 한국 생활을 계속하던 혜정 씨는 한국알트루사를 만나 속이 좀 트였다고 말한다. 이날 참석자들은 혜정 씨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울고 웃었다. 혜정 씨가 자꾸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자신이 감정 표현에 서툴고 아이를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얘기하면, 참석자들은 한국 사는 사람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그를 위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살아온 환경, 처한 상황은 달라도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자기 이야기'가 된다는 데 공감하며 마쳤다. 참석자들은 같은 듯 다른 문화를 더 열심히 배우겠다고, 혜정 씨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인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다 배워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더 잘 알게 되잖아요. 혼자서 속 끓이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 와서 힘을 많이 얻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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