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동권이라는 말을 쓰는 거지? 신체가 불편하면 이동에 제약이 따르는 건 세상 이치인 거다. 그걸 무시하고 나도 니들처럼 맘대로 이동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건가? 도대체 누구한테 해 달라는 거야? 단순히 보면 신체 건강한 니들이 돈 좀 걷어서 해 달라는 거잖아? 결국 부탁하는 거 아냐? 부탁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니? 일본에선 장애인 시위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래. 왜인지 알아? 도움받는 걸 당연시하지 않거든 단지 고마운 거지…."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014년 '장애인의날' 시위를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장애인 인권 운동 단체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 이동권'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가 2001년부터 주장해 온 권리다. 이날 시위는 경찰이 최루액을 이용해 휠체어 탄 장애인들을 진압하면서 끝났다.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날이 되면 정부는 대대적으로 행사를 연다. 유명 연예인을 초청하고, 장애인 중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을 뽑아 훈장도 수여한다. 행사만 보면 정부가 장애인을 똑같은 국민 일원으로, 같은 시민으로 대우하는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사람들 불편하게 왜 휠체어 끌고 나왔느냐"고 핀잔주는 시민의 말이 한국 사회 현실을 보여 준다. 혼자서 전혀 몸을 가눌 수 없는데도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해, 집에서 난 화재로 목숨을 잃은 고 송국현 씨 같은 경우도 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짓눌린 어깨, 이를 이기지 못해 붕괴하는 가족의 현실은 또 어떤가.

서울 대학로 노들장애야학에서 박경석 대표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장애인 인권 운동에 30년 가까이 앞장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공동대표를 4월 24일 대학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났다.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에 앞장서면서 다른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는 이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는 이유 등을 들었다.

휠체어 끌고 나오면
욕하는 시민들
"권리 얻는 것도
동의 구해야 하나"

박경석 대표는 24세가 되던 1983년 행글라이더 사고로 장애를 입었다. 좌절하고 있던 그를 밖으로 이끈 것은 장애인 인권 운동이었다. 박 대표는 노들장애인야학을 시작하며 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들장애인야학은 혼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에게 검정고시를 볼 수 있는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 비장애인이 배우는 교과과정과 함께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교육도 한다.

장애인 인권 운동은 2001년에 전환점을 맞았다. 2001년 이전에는 노동 현장에서 장애인 평등 고용, 고용할당제 등을 주로 요구했다면, 2001년 이후에는 중증 장애인의 탈시설·이동권 중심으로 장애인 인권 운동이 전개됐다. 박 대표와 전장연은 매해 명절이면 전국 버스 터미널에서 동시다발 시위를 연다. 중증 장애인이 표를 살 수는 있지만 버스를 탈 수 없는 현실을 알리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장애인 인권 운동 단체들이 휠체어를 이끌고 길거리로 나와 이동권 시위라도 하면, 갈 길 바쁜 사람들 발목 잡는다고 혀를 차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만히 있으면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꼭 거리로 나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박경석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조금 더 보여 주고 동감을 얻는 방식에는 허구성이 있다. 굉장히 허구적이다. 그들의 공감을 얻어서 뭘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혼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해 집구석에 수십 년 처박혀 있는데, 그런 장애 문제를 말할 때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하고 감정에 호소하고 동정을 유발하는 방식을 유지하면 결국 얻는 게 뭘까.

이런 방식은 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 문제를 희석한다. 사람들이 지하철 타다 떨어져 죽는다. 중증 장애인 중에는 평생 5번도 외출하지 못한 사람이 70.5%다. 아무리 비장애인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치더라도, 그들의 동의를 받아야만 운동이 힘을 얻는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제도 없어져야

비장애인의 동정을 받는 방법으로는 한국 사회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게 박경석 대표 생각이다.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장애인과 그 가족이 짊어진 짐은 가혹하다. 스스로 돈 벌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을 둔 부모는 자녀 수발과 가정을 꾸리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천륜도 거스르는 장애'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평생 자녀 수발을 들던 부모가 현실을 비관해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는 일이 최근에만 두 차례나 일어났다.

서울 광화문광장 지하에는 장애인 12명의 영정이 놓여 있다. 활동 보조인이 있었으면 없었을 죽음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 사회는 국가가 '복지' 개념으로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개인에게 전가한다.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며느리·사위까지 소득을 조사한다. 장애인 부양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거다. 물론 장애인 가족 중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다. 한국에서는 가족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떠넘기는데, 이 부양의무제 때문에 오히려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다."

부양의무제와 더불어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친다. 박 대표는 장애인을 의학적 손실에 따라 줄 세우고 일괄적으로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현행법이 오히려 장애인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했다. 신체장애나 시각 장애 상관없이 1등급이면 무료 감면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장애인을 지원한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 개개인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장애인의 욕구를 급수로는 보지 못한다. 개인별로 판단해야 한다. 등급별로 복지를 책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애인 개인의 필요도를 조사해 거기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다. 이 방법은 예산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기존 방식과 쥐꼬리만 한 예산 유지하면서 그걸로 나눠 주려 하니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저항하는 거다."

장애인이 이렇게 요구하는 것을 언짢게 보는 시선도 있다.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진보 장애인 운동 단체들이 '장애인의날'을 '장애차별철폐의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마련해 준 판에서 하루 잘 놀고 끝내는 게 아니라, 하루 열심히 잘 싸우고 364일을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바람이 담겨 있다.

올해 4월 20일에도 장애인과 활동가들은 거리로 나섰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막고 바닥에 낙서도 하고, 다음 날 오전에는 서대문 사거리를 막고 1시간 투쟁했다. 투쟁 뒤에는 항상 법 집행이 따라온다. 박경석 대표는 벌써 도로교통법·집시법 위반,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수차례 벌금형에 처했다. 그런데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한국 사회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장애인 차별 인식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하자고 아무리 외쳐도 이 사회는 기본적으로 무관심하다.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의 삶에 대해서는 무감각·무관심한데, 그 층이 상당히 두껍다. 이 문제를 합리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 조명하려 해도, 왜곡되고 잘못 비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아무리 싸워도 장애 문제를 시혜와 동정 혹은 나태함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우리는 우리의 투쟁이 자본주의사회가 흘러가고 있는 속도에 파열음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싸운다. 이런 투쟁이 지금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는 사회에 한 목소리라도 들려주는 과정이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 돌멩이 던지기'라고 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전장연을 설립하고 싸운 지 10년. 바위에 계란 치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힘든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희망' 때문이다. 싸우는 만큼 변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싸우는 것이다. 싸우지 않았다면 중증 장애인이 집 혹은 시설에서 현실에 좌절하며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현실을 비참하다고 느끼는 순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싸우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경석 대표는 현장에 자주 나간다. 올해 3월 대구희망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박경석 대표. 뉴스앤조이 현선

차별 사유 넣어 개별법 제정?
"성소수자 고립하려는 말장난"

전장연은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다른 사회적 약자와도 마다하지 않고 연대한다. 최근에는 성소수자 진영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4월 22일 '이상한 연대 문화제'가 열렸다. 전장연과 성소수자 인권 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14년 전 세상을 떠난 고 육우당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장애인은 장애인 문제에나 신경 쓰라고 말할 법도 하다. 게다가 이미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개별법으로 제정돼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인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대신 장애인차별금지법처럼 '개별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한다. 박경석 대표는 어떤 생각일까.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정확하게 무엇을 반대하고 있는지 얘기해야 한다. 결국 성소수자 문제인데, 또 한 그룹을 고립시키고 싶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 같다.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정도 독자적인 차별금지법이 필요할 때가 있고 포괄적으로 해야 할 때가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진행하다 막혔다. 차별금지법이 막히고 난 뒤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도 제대로 만들자고 해서 노무현 정권 말년에 통과시켰다. 혐오 발언으로 성소수자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기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전장연도 올해 3월 출범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이름을 올렸다. 박경석 대표에게 연대에 힘쓰는 이유를 물었다.

"나의 문제를 그들에게 알리는 것도 있지만, 그들의 문제가 나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모든 사람의 권리, 삶과 연결된다. 노동자, 소수자처럼 힘없는 사람과 관련해, 이것이 나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연대한다는 당위적이고 기본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은 보수 개신교의 반대로 처음 발의한 지 10년 동안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보수 개신교의 표를 의식한 대선 후보들도 명확한 대답은 회피한 채 "동성애는 찬성하지 않지만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이중적인 말을 반복하고 있다. '차별 철폐'를 외치는 활동가 입장에서 보수 개신교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예수님이 '빛과 소금이 돼라'고 말씀하지 않았나.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하고 있나 스스로 살펴야 하는데… 어떤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4월 20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장애차별철폐의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 뉴스앤조이 현선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