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JTBC·<중앙일보>·한국정치학회가 공동 주최한 4월 25일 토론회. 동성애 이슈는 외교·안보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튀어나왔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군대에서 동성애가 심하다. 동성애는 국방 전력을 약화시키는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홍준표 후보의 이 질문은 현재 보수 개신교가 주목하고 있는 군형법 92조의 6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군형법 92조의 6은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라 하더라도 군인 신분이면 영내·외를 불문하고 처벌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이성애와 비교할 때 차별 소지가 있다. 인천지방법원 이연진 판사는 이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동성애가 국방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 세계 최강의 국방력을 자랑하는 미군도 2011년을 기점으로 성소수자 군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미국 육군을 통솔한 에릭 패닝(Eric Fanning) 육군장관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다. 주한 미8군 부사령관에 부임한 태미 스미스(Tammy Smith) 준장 또한 여성 동성애자로는 최초로 장군 자리까지 올랐다.

4월 25일 열린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JTBC 화면 갈무리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한국에서는 대선 후보에게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이미 동성애자로 존재하는 사람을 찬반 투표하자는 얘기다. 성소수자 이슈는 찬반이 아니라 차별금지법으로 연결되는 '차별' 문제로 다뤄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조장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똑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얼마나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는지, 고용과 서비스에 있어서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주요 골자로 한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주체'로 대우받을 수 있느냐 문제다.

보수 개신교 영향력
눈치 보는 후보들

보수 개신교는 집요하게 차별금지법을 동성애에 대한 찬반 프레임으로 몰고 갔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한국 사회가 동성애로 무너지고 한국교회가 존폐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정치인들에게 사상 검증하듯 동성애 찬반을 물었다.

결국 정치인이 두려워하는 건 보수 개신교인의 '표'다. 보수 개신교 표를 무시하고 갈 수 없는 후보는 과거 취했던 자세를 바꾸면서까지 개신교인들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문재인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처음 발의했던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였고, 안철수 후보는 2012년 대선 후보 출마 때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다.

후보들이 이렇게 보수 개신교 눈치를 보는 것은, 보수 개신교가 호감도나 구호뿐만 아니라 실제로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와 이슬람을 막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기독자유당과 기독당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각각 62만 6,853표, 12만 9,978표를 득표했다. 두 당 득표율을 합산하면 유효 투표수 3.17%를 차지한다.

차별금지법도 보수 개신교의 반대 운동으로 매번 제정이 무산됐다. 2007년, 2012년, 2013년 세 차례 있었던 제정 시도는 보수 개신교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폐기 수순을 밟았다.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보수 개신교계는 선거 때마다 '동성애 옹호·조장 후보 낙선 운동'에 돌입했다.

보수 개신교 반대로 무산된 법안은 차별금지법이 전부가 아니다.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보수 개신교 반대에 부딪혔다. 개신교는 "사학법 개정은 공산화의 일환"이라는 말까지 하며 전면 반대 운동을 펼쳤다. 사학법 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긴 했지만, 개신교의 지속된 극렬한 반대에 결국 실효성 없는 방향으로 재개정됐다. 2016년, 정부가 익산에 할랄 식품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개신교는 "할랄 통해 IS가 들어온다"며 반대 운동을 벌였다. 결국 할랄 식품 단지 조성은 없던 일이 됐다.

보수 개신교가 이처럼 정치권에 실력을 행사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올해 4월 포항시 김상민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인권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이내 지역 개신교계 반대에 부딪혀 법안 자체를 폐기했다.

김상민 시의원이 발의한 '포항시 인권 기본 조례(안)'을 살펴보면 '성적 지향' 혹은 '성별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없다. 이 조례안에 명시한 '인권 약자' 기준에는 '동성애' 혹은 '성소수자'라는 단어조차 없지만, 개신교는 '인권'이라는 단어가 차후에 어떻게 적용될지 모른다며 반대 운동에 돌입했다.

개신교계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개신교계 단체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은 홈페이지에 "긴급 4/6일(목)까지 '경상북도 포항시 인권(동성애) 기본 조례(안)' 제정을 반드시 막아 주세요!"라는 글을 올리고, 포항 시의회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해 달라고 공지했다. 이 단체 대표는 부산대학교 물리학과 길원평 교수다. 글이 올라온 뒤 팩스로 접수된 반대 의견만 4,500건 가까이 된다.

한쪽에서 교인들이 움직이면 다른 한쪽에서는 목사들이 움직인다. 포항시기독교교회연합회(임상진 회장)와 포항성시화운동본부(박석진 대표본부장)을 비롯한 포항 지역 목회자들은 4월 6일 포항 시의회를 방문해 인권 조례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법안을 발의한 김상민 의원 지역구 목사들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김상민 의원은 <뉴스앤조이>와 통화에서 "이렇게 반대 의견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인권조례안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발의한 것인데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 반대 의견이 이렇게 많이 들어왔으니 의회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입법을 추진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국방 전문가 1,000명으로 구성된 '천군만마국방안보특보단' 출범 행사가 4월 26일 열렸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 활동가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포커스뉴스

전라북도도 비슷한 경우다. 전라북도는 '전라북도 도민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시행 규칙'을 4월 5일까지 입법예고해 놓은 상황이었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은 3월 29일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조례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하는 방향으로 적용될 위험이 매우 높다. 실질적인 차별금지법으로 서구에서와 같이 동성애에 관한 표현의자유 등이 제약된다"라고까지 명시했다.

이 글은 또 한 차례 보수 개신교인들이 주로 모이는 카카오톡 방으로 퍼져 나갔다. 카카오톡 방에 올라온 '지령'에는 전라북도 인권센터 담당자에 항의 전화를 걸어 어떻게 반대 논리를 펴야 하는지까지 적혀 있다. 결국 전라북도도 시행 규칙을 철회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사안이지만 '동성애 조장 법안'이라는 조직적 항의에 꼬리를 내린 것이다.

보수 개신교인들의 조직적인 실력 행사는 여러 차례 정치권을 무릎 꿇렸다. 홍준표 후보는 이런 보수 개신교인 성향을 알고 문재인 후보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문 후보는 홍 후보의 질문에 걸려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많은 인권 단체와 시민이 문 후보의 성소수자 차별 발언에 분노하며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그러면 반대로 보수 개신교인들 표는 얻었을까. 이것도 확답할 수 없다. 정작 보수 개신교인이 모인 채팅방에는, 문 후보의 과거 행적을 들추며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한다는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하는 내용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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