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2040년까지 탈핵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는 '2060년 완전 탈핵'을 주장했다. 그러나 두 사람보다 더 빠른 시기에 탈핵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한국에 뿌리내린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19대 총선이 있던 2012년부터 "2030년까지 탈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였는데도 '탈핵'은 당시 한국 사회 중요한 의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2030 탈핵을 언급한 지 5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대선 후보들이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와 노후 핵발전소 폐쇄에 입을 모으고 있다.

흔히 '탈핵' 하면, 핵발전소 가동을 멈추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이야기한다.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여론을 형성하고 탈핵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탈핵을 둘러싼 고민을 담아 4월 19일 '대안 전력 시나리오 2030'을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탈핵, 탈석탄을 선언하며 지금까지 준비해 온 에너지전환 정책을 발표했다.

녹색당이 '2030 탈핵 로드맵'을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에너지 과소비 산업 줄이고
농업 늘리는 '에너지전환 정책'

'대안 전력 시나리오 2030'를 발표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한재각 소장과 권승원 연구원은 먼저 핵발전소 폐쇄 이유로, 원자력 발전의 불투명성을 언급했다. 고리 1호기를 폐쇄 결정하면서 정부가 이전에 세운 핵발전소 확대 정책에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진도 5.8 경주 지진과 삼척, 영덕에서 진행한 주민 투표 결과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쉽게 결정할 수 없게 됐다. 최근 법원이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에 위법 판단을 내려 핵발전소 정책을 다시 논의할 수밖에 없다.

한재각 소장과 권승원 연구원은 탈핵을 준비하면서 산업구조·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핵발전소 폐쇄만 언급하는 기존 시각과 다른 점이다. 두 연구원은 핵발전소를 폐쇄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율이 높은 업종인 철강, 석유, 화학 산업 비율은 줄이고 농업 비율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철강, 석유, 화학 산업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결국 철강, 석유, 화학 산업 때문에 GDP가 오른다고 말하고, 이 산업들을 뒷받침하는 데 값싼 전기가 필요하다고 정당화하기 쉽다. 이 때문에 산업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산업, 사회 변화 없이 에너지전환 정책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한국 경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화학공업 비율을 줄이는 시나리오가 가능할까. 두 연구원 주장이 터무니없지는 않다. 지난해 에너지경제원구원(에경원)이 발표한 2040년 산업별 부가가치 전망을 보면, 부가 가치 증가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서비스'다. 반면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인 조선, 철강, 석유, 화학은 큰 폭으로 감소하리라 예측했다. 중국 등 산업에 뛰어든 후발국과 경쟁이 심화해 한국 사회는 산업구조를 재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한재각 소장은 외국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유럽에서 조선 산업이 휘청거릴 때, 정부가 조선 산업에 투자하는 비용을 풍력 산업으로 전환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조선업에 투자하는 돈 1조씩을 풍력 개발에 넣으면 재생에너지 개발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타당한 지적이다"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지난해 농림식품부에서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게 귀촌 교육 지원금을 줬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아주 드문 케이스지만 이런 방식으로도 귀촌·귀농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녹색당은 탈핵을 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제공 녹색당

2030 완전 탈핵 
2050 완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비율 증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신규 핵발전소를 모두 백지화할 것 △운영 중인 25개 핵발전소 중 노후 원전부터 순차적으로 폐쇄할 것 △중수로 핵발전소인 월성 1·2·3호기부터 우선 폐쇄할 것 △2020년까지 여론 수렴을 거쳐 본격적인 탈핵 로드맵을 가정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녹색당이 준비한 탈핵 로드맵에는, 2017년 고리 1호기 폐쇄를 시작으로 2029년에는 한울 6호기, 신월성 1호기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한다고 나와 있다. 석탄발전소 역시 2017년 영동 1호기 폐쇄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10기를 우선 폐쇄하고, 2050년까지 현재 운영 중인 59기 전부를 폐쇄하자고 말했다.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가 빠진 자리는 LNG(액화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가 대체한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완전 탈핵이 진행된 2030년에는 LNG(42.1%), 재생에너지(30.4%) 석탄(21.5%) 순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것이라고 했다. 2015년 에너지 발전 비중을 살펴보면, 석탄 39.3%, 핵발전소 31.2%, LNG 19.1%, 재생에너지 3.5%다. 녹색당이 발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향후 LNG와 재생에너지가 대폭 증가하게 된다. 그중 재생에너지에서 태양광 비중은 21.5%로 가장 높고 풍력은 6.2%를 차지한다.

"이 시나리오대로 가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2040년부터 대폭 감소한다. 2017년부터 2030년까지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또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를 대체하는 에너지원 중 LNG 역할이 과도하게 커지는 경향이 있다. 과도기적인 LNG 역할을 어디까지 둘지 논의해야 한다."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국민연대 박혜령 대외협력국장은 2030년 탈핵 계획도 너무 멀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탈핵 투쟁 현장 불안 급증
"2030년도 너무 늦다"

토론자로 나온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국민연대 박혜령 대외협력국장은 2030년까지 탈핵하는 것도 너무 늦다고 했다. 그는 "지방에서 탈핵 운동하는 사람들은 조급하다. 한국 상황이 2012년과는 완전 다른 상황이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논리적으로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030년이 과연 빠른 것인지 묻게 된다"고 했다.

박혜령 사무국장은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전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탈핵이라고 하면 핵발전소를 에너지 차원에서만 다루는데, 이 사안이 사회구조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는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탈핵천주교연대 양기석 집행위원장은 산업구조 변화를 언급한 것에 반가움을 표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양 위원장은 산업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농업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누가 귀농할 것인가 의문이 생긴다고 했다.

양 집행위원장은 "도시에 사는 시민에게 농업에 투신하라고 하면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도시 생활의 편리성을 버리거나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녹색당이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활동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지역 운동을 전개해 가야 한다. 실제적인 사례가 더 많이 늘어나야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대안 전력 시나리오 2030'을 준비한 녹색당은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반영해 탈핵 로드맵을 완성할 예정이다. 이후 19대 대통령이 선출되면 로드맵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2030 탈핵 로드맵' 보고회에 참석한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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