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이 아니다. 기억하고 약속하는 날이다. 하늘의 별이 된 희생자들과 참사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 적폐를 '기억'하고, 사고 원인을 규명해 대한민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들겠다며 '약속'하는 날이다. 매년 4월 16일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추모식이 아닌 '기억식'이 열리는 이유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기억하고 약속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기독교인들은 이날 부활절 연합 예배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고백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몸과 한 뜻이 됨을 믿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미수습자, 생존자, 그리고 그 가족들과 연대하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몫을 기억하며 하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겠습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는 2015년부터 매년 봄 세월호 가족들과 부활절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월호 참사와 부활절을 따로 기억할 수 없다. 연합 예배는 안산 합동 분향소 옆 야외 공연장에서 열렸다. 기독교인 2,0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저마다 옷이나 가방, 핸드폰에 노란 리본을 붙이고 있었다.

기독교인 2,000명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안산 합동 분향소를 찾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강단 앞에는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리는 작은 십자가들이 놓였 있었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참석자들은 '우리는 기억하리라'를 부르며 예배를 시작했다. 찬양 사역자 이지음 씨는 "한국교회가 부활절마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함께 부활을 생각했으면 해서 이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기억하리라 / 그 죽음이 바랬던 생명의 나라 / 그 나라를 꿈꾸는 생명이 되어 평화를 위해 정의의 씨앗을 심네 / 죽음을 넘어 살아날 벗들이 꿈꾸던 나라 / 기억을 넘어 다시 함께 부활의 노래 부르리

대표 기도는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 양 할머니 이세자 장로가 맡았다. 이 장로는 진실과 정의가 올바로 세워질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고난받는 이웃과 함께 부활을 살고자 모인 여러분. 우리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예수, 죽음을 가로질러 부활의 소망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제 우리, 애통하는 이웃과 함께 웁시다. 정의 위에 꽃피는 평화를 기도합시다. 진실과 정의가 올바로 세워질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슬픔을 붙들고 함께 싸웁시다."

홍보연 목사는 멸시당하고 소외당하는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 부활의 삶이라고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기독교인에게 부활은 기쁨·생명·소망이다. 부활절이 되면 죽음의 권세를 이긴 예수를 기뻐한다. 하지만 3년 전 부활절을 앞두고 일어난 세월호 참사 앞에서 교회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예수는 살아났지만 많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 모순에 직면한 기독교인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이날 설교를 전한 홍보연 목사(맑은샘교회) 역시 그랬다.

"목사인 저는 그날 어떻게 부활을 설교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 참담한 상황과 부활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하면서 고백했던 부활 신앙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으니 뭐 어쩌라고. 사람들은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데.' 이런 마음만 있었습니다. 분노와 혼란, 상실과 좌절뿐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참 많이 헤맸습니다."

이날 설교 본문은 마태복음 28장이었다. 두 여인이 예수의 무덤 앞에서 천사에게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듣는 장면이다. 천사는 말한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홍보연 목사는 갈릴리가 멸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이방인의 땅, 어둠의 땅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함께하는 삶이 부활의 삶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아픈 사람을 고치시고 배고픈 사람을 먹이셨으며, 외로운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갈릴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지지고 볶으며 일상을 사는 곳, 이런저런 삶을 이어 나가는 터전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은 다시 삶을 이어 나가라는 부르심입니다. 그곳이 비록 멸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이방인의 땅, 어둠의 땅일지라도 말입니다.

세월호 가족들의 지난 3년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부활의 삶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단원고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이지연 씨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 그저 내 아이들 잘되는 것만 신경 쓰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열심히 보람 있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훈이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분의 위로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무언가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내 가족들만 챙기며 살았구나' 자각했다고 합니다.

이지연 씨는 아들을 잃는 상실과 고통 속에서 또 다른 아픔을 당한 이의 위로로 비로소 자신을 벗어나는 경험을 합니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눈을 뜨게 되고 연대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방인의 땅, 어둠과 죽음의 땅인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예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소외된 이들 멸시받는 이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닌 죽음을 겪는 이들,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함으로써 죽음의 땅이 부활의 땅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이 됩니다 그렇게 예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됩니다."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한 416시민합창단. 뉴스앤조이 경소영
성찬식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분병·분잔위원으로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라 아빠 김응대 씨(사진 왼쪽)가 성찬을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특별히 기독교인 500명이 416시민합창단 이름으로 예배에 참석했다. 부활절연합예배준비위원회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416시민합창단을 모집했다. 원래는 300명을 모집하려 했지만 신청자가 많아 인원수를 늘렸다. 합창단은 설교가 끝나고 봉헌 시간에 '그가 다스리는 그의 나라에서'라는 노래를 불렀다.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500명이 자아내는 화성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예배 마지막 순서는 성찬식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나와 참석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었다. 아라 아빠 김응대 씨, 영만 엄마 이미경 씨, 호연 엄마 유희순 씨, 창현 아빠 이남석 씨, 요한 아빠 임온유 씨, 순영 엄마 정순덕 씨, 은정 아빠 조문기 씨, 지현 언니 남서현 씨, 동혁이 동생 김예원 양이 분병·분잔위원으로 참여했다.

빵과 포도주를 마시며 기독교인은 예수의 부활을 기억했다. 세월호 희생자, 미수습자, 생존자, 그리고 그 가족들과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한 이들, 길 위에서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 노동자,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국가 폭력과 혐오와 차별로 고통받는 벗들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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