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되는 성경에는 현대 과학으로 규명되지 않는 사건이 많이 있다. 지금까지 논쟁 중인 주제 하나가 바로 '천지창조'다. 7일에 걸친 천지창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신학계 내에서 치열한 주제다.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할까, 하나의 비유로 봐야 할까, 신화로 읽어야 할까.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닌 구약학자 다섯 명의 주장이 담긴 <창조 기사 논쟁>(새물결플러스)도 지난해 출간됐다.

'과학과신학의대화(과신대)'가 구약시대 사람들의 창조 신앙 이해는 어떠했으며,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는 특강을 열었다. 페이스북 그룹으로 시작해 올해부터 오프라인으로 외연을 확대 중인 과신대 첫 번째 특강이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구약과 창조 신앙'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특강은 4월 15일 더처치교회에서 열렸다. 회원 50여 명이 참석했다.

김근주 교수는 창세기 1~2장을 보는 다양한 구약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고대인들은 창조 기사를 사실로 믿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우리 또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전달 수단' 생각하며 성경 읽어야"
"여자는 잠잠하라" 같은 구절,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돼
'창조 기사'도 마찬가지

김근주 교수는 성경에 '전달 수단(vehicle)'이 있다고 했다. 전달 수단이란 원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보조관념이다. 예를 들자면 시편 18편 "여호와는 나의 피할 바위"라는 구절에서는 '바위'가 전달 수단이다. 하나님이 문자 그대로 바위라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견고함, 든든함, 안정감을 은유로 나타낸다.

직관적인 전달 수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 모든 문장이 이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화적이거나 신화적인 '전달 수단'도 있다. 이런 부분은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우주관, 이데올로기가 투영돼 있기에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구약시대 끊임없이 나오는 전쟁 모티브가 여기에 해당한다. 가나안 정복 당시 모든 거주민을 죽이라는 명령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중세 십자군 학살이나 IS의 만행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전쟁 상대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은, 죄를 단절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의 여성관도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 봐야 한다. 고린도전서에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구절과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라는 구절이 있다.

바울의 말을 교회 규범으로 삼아, 오늘날 여성 교인 머리에 보자기를 두르게 하는 개신교회는 없다. 교회가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다. 그런데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구절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를 근거로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이 있다. 교회 내에는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김근주 교수는 "바울의 견해는 전달 수단이지 본질은 아니다"라고 했다.

창조 기사를 받아들이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구약학자들에 따라, 창세기 1~2장을 사실로 봐야 할지, 유비로 봐야 할지, 사실과 유비가 혼재된 것으로 봐야 할지 입장이 갈린다. 김근주 교수는, 분명한 것은 구약과 신약성경 곳곳에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창조 기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김근주 교수는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문화적·사회적·국제적 상황에 근거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경 이해를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고대인들이 받아들였다는 이유만으로 창세기 기록을 지구와 인간 나이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고대인들이 7일 창조를 믿었다고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고대인들의 문자적 이해는 우주관, 세계관을 보여 주는 '전달 수단'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 기록을 전부 비유나 신화로 치부하라는 뜻은 아니다. 김 교수는 "창세기에서 (역사성을 모두 부정하고) 의미만을 찾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창세기는 그 당시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들어간 현실을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허공 중에 떠다니는 게 아니라, 구체적 역사와 현실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 교수는 "본문을 다룰 때, 본문이 반영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과 사고방식, 전제가 되고 있는 틀 같은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본문의 메시지와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전달 수단'을 구분하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50여 명의 참석자는 강의를 주의 깊게 들었다. 강의 후, 30분간 수준 있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1시간 강의 후, 30분 동안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우종학 교수(서울대 물리천문학부)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성경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 같은 것이다. 기독교가 이를 불편해할 수 있는데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김 교수는 "과학의 발전은 설교자들이 끼어들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공부해서는 설교자들이 과학을 논하기 어렵다. 물론 불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다 하나님 말씀이 무시되는 시대가 오면 어쩌나, 교회가 망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를 닮아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라면, 과학적 발견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전달 수단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성경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끊을 게 없다'고 써 있다. 복음은 능력 있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쫄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과학의 도전'에 답하면서, "곧 인공지능이 설교할지 모르는 시대가 온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세습 교회 천지인 거 보면 차라리 인공지능 설교가 낫지 않을까 싶다"고도 말해 청중을 웃겼다.

한 교인은 "오늘 강의 내용을 교회에서 말하면, 너는 좀 이상한 거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실에 발 딛고 있는 교회를 바꾸려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질문했다.

김근주 교수는 결론적으로 "교회를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과신대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조직들이 일어나야 하고, 교인들 스스로도 틀을 깨는 독서 모임 같은 게 생겨나야 한다고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신대는 창조와 과학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5월 30일 두 번째 특강 시간에는 <아론의 송아지>(새물결플러스)를 쓴 임택규 씨가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창조론자들>을 읽는 지역 독서 모임도 진행 중이다. 4월 25일에는 명지대 정대경 교수를 강사로 불러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 자연계에서 신은 어떻게 행위하는가?' 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콜로키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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