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마충렬 씨는 1년 6개월 전 푸드 트럭 '마쿤 카페'를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안녕하세요." 빨간 푸드 트럭 앞을 지나가는 한 학생이 큰 목소리로 인사한다. 트럭 안쪽에서 주인 마충렬 씨(32)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안녕"이라고 답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학생이 충렬 씨에게 인사한다. 그도 아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인사는 하는데 음식을 사 먹지는 않는다. 이를 의아하게 여기는 기자에게 충렬 씨는 말간 웃음을 보였다.

"여기 앞에 중·고등학교가 하나씩 있는데, 거기 다니는 애들이에요. 가끔 와서 음료랑 토스트 먹는 친구들인데, 얼굴을 아니까 지나가면서 저렇게 인사하더라고요."

마충렬 씨는 지난해 9월부터 부천시 오정대공원 안에서 푸드 트럭을 운영 중이다. 이름하여 '마쿤푸드트럭'. 자신의 별명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푸드 트럭 경력은 1년 6개월, 이곳에 자리 잡은 지는 8개월째다.

충렬 씨가 판매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음료와 토스트. 커피는 물론 학생들이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스프라이트도 있다. 배가 출출한 손님에게는 딸기잼과 초콜릿잼을 펴 바른 토스트를 판다.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나 인근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주 고객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1평 남짓한 공간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빵을 바삭하게 구울 건지 묻고, 햄과 치즈를 꺼낸다. 식빵 한 면에는 잼을 싹싹 발라 건넨다. "잘 가, 다음에 또 와"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는 "힘내"라고 격려한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돌아간다.

충렬 씨에게 푸드 트럭은 여러 경험을 주었다. 세상을 알게 됐고, 세상에 사는 기독교인을 이해하게 됐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전직 전도사, 푸드 트럭 뛰어들다
결혼 앞두고 생계 해결하려 시작
마이너스 치는 날도 수두룩

아이들에게 토스트 파는 아저씨, 충렬 씨는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전도사로 불렸다.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를 입학한 20살부터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28살까지 교회에서 사역했다. 주로 학생부를 맡았다. 20세 때는 월 10만 원을 받고 경기도 부천에서 강원도까지 사역하러 갔다.

여느 신학생과 같이 평범하게 사역해 온 마충렬 씨. 서른 살, 군대에서 전역할 쯤부터 현실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결혼을 준비하는 충렬 씨에게 생계가 현실로 다가왔다. 70~100만 원 받는 파트 전도사로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그가 전도사 말고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가장 저렴하게 창업할 수 있는 푸드 트럭에 도전했다. 충렬 씨는 창업 강의를 듣고, 은행에서 청년 창업을 위한 대출도 받아 호기롭게 시작했다.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준비했지만, 터가 좋은 곳만 잡으면 금세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니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일단 장사할 자리를 찾는 것부터가 고비였다. 합법적으로 판매하려면 지자체에서 허가한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정보가 부족했다. 그게 아니면 불법 노점을 해야 하는데, 목 좋은 곳은 이미 다른 상인들이 꽉 잡고 있었다.

"1년 반 정도 했지만, 실제로 돈 벌기 시작한 건 6개월도 채 안 됐어요. 자괴감이 깊었죠. 일단 자리 선점부터가 어려웠어요. 장사는 해야 하니까 한번은 불법 노점을 하고 있는데, 누가 민원을 넣었는지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쫓겨났죠. 어떤 아저씨는 홍대에서 불법 노점 하다가 벌금만 700만 원을 받았대요. 그 이야기 듣고 겁먹어서 다시는 쫓겨난 그 지역에서는 안 해요. 지금처럼 꾸준히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으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정말 서바이벌이에요. 오정대공원 오기 전까지는 행사 있는 곳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근데 간다고 해서 수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에요."

충렬 씨 말대로, 교회 밖에서 경험한 사회는 서바이벌이었다. 행사가 있는 곳이면 푸드 트럭을 몰았다. 전국 곳곳을 다녔다. 그러나 행사가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간다고 수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는 지방에서 경주마 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먹을거리를 잔뜩 준비해 내려갔다. 실제로 가 보니, 할아버지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푸드 트럭으로 장사하는 날보다 집 안에 있는 날도 많았다. 마이너스 칠 때가 수두룩했다.

마음이 괴로웠다. 스트레스로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차라리 공장에 들어가거나, 고기잡이배를 타야 할까 고민도 했다. 그만둘까 몇 번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군대에서 들은 비속어 '존버(존x 버틴다)정신'이 떠올랐다. 일단 1년만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운 좋게 오정대공원에서 장사할 수 있게 됐다. 날씨가 풀리고 꽃이 피자, 충렬 씨 푸드 트럭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마쿤 카페의 주 고객은 산책 나온 사람들과 학생들이었다. 충렬 씨를 만난 날도 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장사하면서 세상을 알게 됐다"
다시 교회에 돌아가 사역하고파
일하는 교인들 더 이해하게 돼

장사하면서 숨통이 꽉 막힐 때도 있지만, 충렬 씨에게 푸드 트럭은 큰 도움이 됐다. 일단 교회 밖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됐다. 그는 장사를 하기 전까지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교회에도 위계질서가 있다고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오는 압박과는 종류가 달랐다. 그래서일까. 전에는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기독교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에게 왜 기도해서 끊지 못하느냐고 질책하고 비난하기도 했다.

푸드 트럭을 하면서 세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하루는 저녁 장사를 마무리할 쯤, 한 중년 남성이 푸드 트럭을 찾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성은 하루 동안 자기가 회사에서 겪은 일을 푸념했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남성이 몇 분간 넋두리하다 충렬 씨에게 "청년도 힘내"라고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정도로 힘들구나. 교회에도 분명 저런 교인이 있을 텐데' 싶었다. 푸드 트럭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해 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교회에서는 흔히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설교해 왔고. 그런데 이제는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쉽게 정죄할 수 없겠더라고요. 술과 담배로 하루 고통을 잊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물론 저의 어려움을 어루만져 주신 예수님이 그분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평온해지시기를 바라지만, 그분들의 행위 자체가 잘못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목사들이 목회하기 전에 사회를 꼭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구체적으로 교인 삶을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장사하면서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도 만나지만, 무례한 사람도 많이 본다. 다짜고짜 반말을 한다거나 충렬 씨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진상 손님을 만나면, '저들 중 분명 기독교인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행실을 보이면 결국 '개독'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겠다 싶어 안타까움이 앞선다.

충렬 씨는 언젠가 다시 교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목회 현장으로 돌아가면 이웃 사랑을 이야기하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기성 교회에서 말하는 "전도하라, 말씀 봐라, 기도 하라"는 개인 중심 신앙만 강조하기보다, 건강하게 사회생활하는 기독교인을 길러 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도 구원·믿음·은혜 등 추상적인 종교 언어를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인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40대 남성이 아내 손에 이끌려 교회 왔는데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설교를 들으면 과연 마음에 와 닿을까 싶다. 그는 일반 직장 생활하는 교인의 삶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고민을 물었다. 충렬 씨는 "돈만 벌기 위해 푸드 트럭을 하는 게 아니였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돈만 버는 장사하고 싶지 않다
학생들 도움 주는 일 하고파

충렬 씨에게 푸드 트럭을 하면서 드는 고민을 물었다. 그는 "제가 돈만 벌려고 장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 생계 때문에 푸드 트럭에 뛰어들었지만, 돈 버는 것에만 급급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충렬 씨는 장사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를 꿈꿨다. 일정 수준의 수입이 생기면 근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후원하겠노라 마음먹었다. 이 역시 그가 생각하는 이웃 사랑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게 아니고, 필요를 채워 주고 자연스럽게 예수 이름이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생리대를 지원하거나, 급식비가 없는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날씨 좋을 때 바짝 벌어서, 학생들에게 후원을 시작하고 싶어요. 깔창 생리대 이야기 나올 때 마음이 굉장히 아팠어요.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가끔 선생님들이 점심시간에 산책하시는데, 그때 먼저 제안해 보려고 해요. 수입이 아직 안정기에 접어든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후원을 시도해 보려고요. 벌이가 나아지기를 기다리다 보면, 결국 후원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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