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천국에서 요한이가 참사 원인 물을 거예요"

[인터뷰] 세월호 희생자 임요한 군 엄마 김금자 씨

박요셉 기자   기사승인 2017.04.14  22:52:07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ad42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3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요한 엄마 김금자 씨를 처음 봤다. 그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아들의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에게 대화를 청했다. 요한 군 얘기가 나오자, 김 씨 눈이 빨갛게 번졌다.

한 달 뒤 그를 다시 만났다. 고려대학교안산병원 장례식장이었다. 김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 쪽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묵례로 조의를 표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다시 김금자 씨를 만난 건 광화문광장에서였다. 작은 체구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피켓을 들고, 단식을 하고, 노숙을 했다. 지난 3년간, 김 씨는 투사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평범하게 사는 엄마 아빠들을 180도 바꿔 놓았다. 생전 처음 시위라는 것을 해 보고, 길바닥에서 농성도 벌였다.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도 제기했다.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내 자녀가 왜 참사를 당했는지 밝히기 위해서다.

김금자 씨는 4월 14일 기자와의 만난 자리에서 자기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 앞길만 보고 살았어요. 주변 일은 전혀 신경 안 썼죠. 피켓 드는 거요? 전혀 상상도 못 했죠."

김금자 씨가 4월 12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아들 요한이 가고 없으니
삶의 전부 잃은 것 같았다"

참사 직후, 김금자 씨는 모든 기력·의욕을 상실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장례를 치른 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김 씨는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하루에 18시간 가까이 잠만 잔 날도 있었다.

"아들 요한이가 가고 없으니 삶의 전부를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누워 있었어요. 온몸에 맥이 다 빠져 버리더라고요. 요한이가 있을 때는 몸이 힘들어도 '아이들 먹여 살려야 해' 하고 마음을 붙들고 했거든요. 근데 아들이 없으니 의욕이 모두 없어져 버린 거예요."

임요한 군은 착하고 순한 아들이었다. 부모님을 잘 따르고 대든 적도 한 번도 없다. 책임감도 강했다. 아빠는 개척교회 목사로 외부 집회 일정 때문에 집을 비울 때가 잦았다. 아들은 아빠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했다. 엄마와 여동생에게는 듬직한 아들이자 오빠였다.

"요한이는 항상 밝은 표정을 지었어요.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인품도 좋고.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근면하고 성실했어요. 봉사상·효행상 여러 번 받았어요. 공부 좀 열심히 하라는 말 외에 특별히 잔소리한 적도 없었어요."

요한 군은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해, 입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하나 잘 얘기하지 않은 속 깊은 아들이었다. 김 씨는 아들이 부모 때문에 자기 자신을 많이 희생한 거 같아 미안해했다.

"개척교회 형편이 쉽지 않잖아요. 자녀들이 힘들어요. 그래도 요한이는 한 번도 불평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엄마가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고, 말씀 보라고 하면 말씀 보고. (요한이가) 너무나 희생적인 삶을 산 거 같아요. 자기 삶이 없었어요. 항상 엄마, 아빠, 동생을 먼저 생각했어요."

요한 군은 참사 20일 후, 5월 5일 발견됐다. 김금자 씨는 이날 정오, 친정 식구들과 배를 타고 사고 해역을 찾았다. 참사 이후 처음이었다. 김 씨는 바다를 보며 말했다. "요한아, 미안하다. 엄마가 용기가 안 나 이제야 왔어. 이제 그만 나와, 요한아. 집에 가자." 거짓말처럼 그날 오후 요한 군은 엄마에게 안겼다.

김금자 씨는 하나님이 자신을 광장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어느 날 들린
하나님 음성

목사 아내 김금자 씨는 목회자 집안에서 자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전형적인 '보수 기독교인'이다. 지금은 외부 활동 때문에 줄었지만 예전에는 매일 서너 시간씩 기도했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꼭 기도원을 찾았다. 아무 기력도 없이 지냈던 시기에도, 기도는 빠뜨리지 않았다. 2014년 말 어느 날, 김 씨는 기도를 마치고 누워서 쉬던 중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음성을 들었어요. 애타는 목소리였어요. '금자야, 금자야, 금자야' 하고 세 번 저를 찾았어요. 저는 힘없이 대답했어요. 왜 이렇게 저를 부르냐고. 그러자, 하나님이 저를 타일렀어요. '왜 그렇게 누워만 있느냐.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아. 정신 차리고 일어나 어떻게든 살아야지.'"

그때부터였다. 김금자 씨는 "주님을 붙잡고" 일어났다고 했다. 2015년 봄부터 세월호 가족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광화문광장에 나가 피켓을 들었다. 간담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세월호 선체 인양,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지난해에는 가족협의회 2학년 4반 대표를 맡았다.

참사 전까지 거리에서 피켓을 드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 시내에서 1인 시위를 하거나 장기 농성을 하는 사람을 본 적 있었다. 그럴 때면 저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나와 있는 건지, 정부는 왜 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 생각만 하고 지나쳤다. 그뿐이었다. 더 신경 쓰지 않았다.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기에도 벅찬 삶이었다.

"참사 이후 그런 기도를 많이 했어요. 왜 우리 아이들이 희생되었는지, '그만 좀 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매일 하나님에게 물었어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리고 얼마 안 돼 요한이가 꿈에 나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 천국에서 만나면 물어볼 거예요. 내가 왜 사고를 당했는지요.'

아이들이 희생됐잖아요.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 때문에 참사가 일어났는지, 왜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밝혀야 하는 거죠. 그래야 다시 참사가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요. 다 같이 잘 살고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복된 나라를 이루는 첫 단추가 바로 진상 규명인 거예요."

임온유 목사가 아들 임요한 군에게 쓴 편지. 사진 제공 김금자

제대로 된 신앙인이라면
다른 견해에 질문했어야

진상 규명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도 있었다. 몇몇 대형 교회 목사는 유가족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보상금을 노린다며 폄훼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잘못된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김 씨는 제대로 된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먼저 기도했어야 했다고 했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물어야 하잖아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안이 있다면 왜 다른지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유가족들을 찾아가 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지, 우리의 생각을 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그런 과정을 전혀 밟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제대로 믿었다면, 노크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 저는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무엇이 옳으냐'고 물을 수는 있어야죠."

4월 11일 세월호는 목포신항 부두에 육상 거치됐다. 김금자 씨는 뉴스로 인양 과정을 지켜봤다며, 모든 일이 하나님 은혜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진상 규명을 원하시니, 모든 일을 뜻대로 이루시는 것 같아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을 때도 하나님께서 돕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어요. 세월호도 거치됐고. 하나님 은혜죠. 너무 감사하고요. 진상 규명이 반드시 이뤄질 거라고 봐요."

ad47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동영상 기사

default_news_bottom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