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중에 신의 아들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21세기에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에게 던진다면 대개는 부정적으로 대답할 것이다." (3쪽)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첫 문장부터 도전적으로 보이는 이 책은 한국 고대사 학자 김기흥 교수(건국대 사학과)가 2016년 12월 출간한 <역사적 예수>(창비)다. 그는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40년 동안 한국 고대사를 연구했으며, 고대사와 설화 연구를 주제로 저서를 남겼다. 비신학자인 그가 '역사적 예수'를 주제로 책을 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자는 서문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기독교를 신앙하고 있다고 밝힌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성경을 읽어 20여 회를 완독했으며, 7년 동안 200여 권의 예수 관련 서적을 읽었다고 한다. 역사적 예수 전문가 마커스 보그나 존 도미닉 크로산 같은 해외 유수 신학자들이 낸 연구서가 많은데, 일반 기독교인 사학자가 이 분야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인류 문명사에 대한 관심에서 수행한 한 위대한 선각자의 시체에 대한 역사학적 탐구이다. 동시에 20세기 후반 이래 가속화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너무 빠르게 성장하여 비대해지고 노후화한 한국 기독교가 현대 사회에서 봉착한 딜레마에 대한 역사적 고민과, 40여 년 인문학을 공부해 온 학자로서 필자의 신앙적 정체성에 대한 점검의 산물이기도 하다." (7쪽)

저자는 신학적 인식에 기반한 신학자들의 연구와 달리, 사학자로서 역사학적 방법론으로 예수의 역사성에 접근했다고 밝힌다. "사실성에 근거해, 인과관계에 의해 설명 가능한 새로운 이해 체계"를 세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 예수의 구도 과정, 하나님 아들로의 거듭남, 그리고 그가 이루어 간 하나님나라의 의미와 그의 정체성 등을 합리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했다고 말한다.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됐다. △예수 이해의 역사적 배경 △예수의 역사 자료로서의 신약성경 △예수의 가계와 출생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남 △예수의 인식과 가르침 △예수 부활 사건 △예수의 칭호 △인간 예수는 누구인가. 각 장에서 신구약 중간기, 구약성서, 복음서 자료를 기초로 한 당대 상황을 살펴보고, 그 맥락에서 예수가 나온 배경과 신약성경 집필 의도, 예수의 자의식과 부활 사건 등을 되돌아본다. 350여 쪽 분량의 서술은 마지막 8장 '인간 예수는 누구인가'에서 50쪽으로 정리된다. 각 장에서 살펴본 예수의 모습과 행적, 배경을 압축적으로 한눈에 돌아볼 수 있다.

<역사적 예수> / 김기흥 지음 / 창비 펴냄 / 532쪽 / 3만 원

저자는 예수의 행적을 소개하는 '블랙박스'인 성경을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는 아람어와 헬라어로 쓰이고 독일어,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신앙하는 것은 학문적 접근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4복음서가 굉장히 난해한 자료라고 말한다. "신앙고백인 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의 역사적 삶을 연구하는 일은, 그 자료들의 실상으로 보면 연구자들에게 고초와 좌절을 불러일으키는 악조건임이 분명하다"(63쪽).

책 곳곳에 있는 변형, 윤색, 재구성 같은 단어가 눈에 띈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 못 하는 교인이 많은 게 한국교회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성경이 당시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 적은 책은 아니라고 한다. "추종자들은 부활했다는 예수를 자신들의 식견에 따라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변형하기 시작했다. 만물에 대한 인식은 인식 주체에게 느껴진 일종의 인상일 수밖에 없다"(247쪽)와 같은 표현이 곳곳에 있다.

"(성경 곳곳에) 실명이 제시되는 등 확실한 근거가 있음을 말하는 듯하지만, 구체적 언급이 반드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님은 역사 자료를 취급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일이다"(297쪽)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복음서 내용에 근거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고도로 숙련된 연구자들이 다양한 방법론을 구사하며 조심스럽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49쪽)고 말한다.

사실 성경을 읽다 보면 여러 곳에서 진술이 엇갈리는 듯해 혼란스럽다. 저자가 6장에서 다루는 '예수 부활 사건'의 경우, 복음서에는 공통적으로 '빈 무덤'이라는 요소 외에는 모두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난 장소도 복음서는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부활 사건 같은 경우, 저자는 예수가 당시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던 상황을 먼저 돌아본다. 그 후 부활이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지, 왜 부활해야만 했는지 생각하게 한다. 문장들은 "~했을 것이다"로 이어진다. 죽은 후 무덤은 누가 열었는지, 빈 무덤의 목격자가 왜 서로 다른지, 신흥종교 교주로 몰려 죽은 예수의 시체가 과연 온전하게 장사될 수 있었을지 추측하며 과거에 접근한다.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네 복음서의 행간에서, 당시 초대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을 읽어 내는 작업이다.

그 결과, 저자가 내린 결론은 "부활 사건의 경험은 현장에서 일어난 일회적 사건의 순간적 목도에 기초한 것"이다. 저자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많은 제자와 추종자들이 비교적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마음의 감동이나 꿈, 환시와 환청 등의) 여러 방식을 통해 경험하고 공감한, 다시 살아났다고 여겨진 예수와의 만남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며 사건으로 인정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나아가 이 현상이 곧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새로운 종교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부활은 마땅히 역사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활을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에서 그가 역사적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작,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난 그리스도.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성경 분석으로 예수의 행적을 되돌아본다. 그가 한국교회와 교인들에게 하는 말은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 단 1쪽 분량이다. 현재로 다시 올라와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결국 지금 우리에게 예수가 어떤 의미이고, 성경과 기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 듯하다. 기록된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는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지속할 것인가. 저자는 이제 그런 방식은 설득력이 없어졌다고 본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 지난' 신학이다.

"2,000년 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내세운 고대적인 대속 논리나 빈 무덤의 부활 등 비합리적이고 설화적인 내용, 일방적이고 편협한 교리와 신학 등은 이제 설득력이 거의 없어졌다고도 보인다. 서구로부터 시작되어 한국에서도 심화되고 있는 현대 그리스도교의 위기는, 교회가 변질되어 기존 그리스도교 교리와 신조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 것도 있겠지만, 그 고대적 인식에 기초한 신학 자체가 현대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철 지난 것이 보다 근본적 원인일 것이다." (416쪽)

이것은 "사람들 중에 신의 아들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21세기에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에게 던진다면 대개는 부정적으로 대답할 것이다"라는 책 첫 문장과 대구를 이루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넌지시 내비친다.

"이같이 설득력을 잃은 고대·중세적 신학을 적당히 꾸며 재미있게 설파한다거나, 인간의 종교적 속성의 한 부분일 뿐인 신비 체험만을 강조한다거나, 늘 상당한 호응이 있기 마련인 기복과 긍정의 주술을 호기롭게 펼치거나, 자선이나 봉사 등 사회적·실천적 활용에만 과도하게 주력하거나, 심지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신자들을 겁박하여 낡은 신학에 굴복시켜 목장의 양처럼 만든다고 해도, 그 생명력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416~417쪽)

"답답한 시대에 종말적 이상을 앞당겨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못 박도록 내어 준 인간 예수의 정체와 가치를 아는 이들이, 기존의 것들에 안주하지 않고 자본의 위세에 억눌리고 정치·사회체제에서 소외되며 파괴되는 환경으로 위협받는 대다수 현대인들의 영육 간의 고통에 주목하여 희생까지 무릅쓰고 함께할 때, 비로소 희망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417쪽)

<역사적 예수>는 비신학자인 한 한국 기독교인이 사학자 관점에서 바라본 예수의 생애 기록이다. 이 책은, 부활절을 맞아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와 그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그의 부활이 예수 그 자신과 후대의 기독교인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상기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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