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현선 기자] 세월호 현장마다 유가족 곁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유가족은 타인의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하지만 그 사람 카메라는 거부하지 않는다. 타인 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가족 눈을 바라보듯 렌즈를 바라본다.

그는 세월호참사기록위원회 사진기록단 이상임 사진가(60)다. 한 유가족은 그를 '대모'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상임 사진가는 쑥스러워 고개를 떨구고 웃는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여러 번 손사래를 치며 "나를 왜 인터뷰해. 세월호 가족들이 이렇게 많은데"라고 말했다. 다음은 4월 8일 목포신항에서 이상임 사진가와 대화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4월 8일 목포신항에서 이상임 사진가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 사진은 언제부터 찍었나.

나는 몇 년 전까지 사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내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고 귀촌 일기를 쓰고 싶었는데 어느 날 딸이 캐논450d와 렌즈를 줬다. 그걸로 2011년 6월 문화센터에서 사진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진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2012년 우연히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아카데미(NGPA)에서 수강하게 됐다. 그때 사진계에서 명성이 높은 김홍희, 성남훈, 이기명 작가들에게 사진을 배웠다.

- 세월호 가족들 촬영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2014년도 6월 진도에서부터 찍기 시작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참사 초기에 워낙 많은 기자의 왜곡된 보도로 신물이나 카메라만 봐도 부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정신없는 상황이라 가족들은 사건의 흐름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족들이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진가 이기명 선생님이 이 일들을 기록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2014년 6월 '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가 생겼다. 그 안에 사진·영상·작가·구술기록단이 생겼고 그때 이기명 선생님이 사진기록단 단장이셨다. 사진기록단에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이기명 선생님이 진도에는 나더러 가라더라. 광화문이나 안산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데, 진도는 당시 실종자 가족이 머무르던 곳이라 부담스러웠다. "체육관에 머물며 찍으면 된다"는 말에 2박 3일 일정으로 처음 갔다. 진도체육관 모퉁이에서 가족과 같이 머물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한 게 이렇게 긴 시간이 될 줄은 몰랐다.

단원고 졸업식 다음 날, 마음이 아픈 부모들이 한겨울 추위에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연탄 나눔 봉사를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상임 사진가의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이상임

-현장에 있으며 어땠나.

진도로 내려간 지 며칠 후 단원고 2반 윤민지가 나왔다. '다 나오는구나, 모두 곧 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결국 모두 돌아오지 못했지만, 미수습자 가족들도 11월 19일 체육관에서 철수했다. 나는 11월 20일에 나왔다. 6개월 동안 거기서 먹고 자고 바지선도 다녀오며 진도체육관에서 세월호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민지가 나왔을 때 유가족들이 민지 부모님에게 허락받고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아이가 나와서 울고 있는 부모에게, 내가 이런 사진을 찍겠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 계속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다 일단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들에게 "이건 중요한 기록이다. 일단 찍게 해 달라. 쓰고 안 쓰고는 추후에 가족들이 결정하라"고 말했다. 이후 시청 광장에서 세월호 전시가 있었는데, 거기 그 사진이 있더라. 너무 놀랐다.

그때는 그런 사진이 필요한 시기였다. 가슴 아픈 시간들을 알리는, 아이가 운구되는, 자원봉사자들이 울고 있는 사진들이 중요하게 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사진이니까. 내가 찍은 사진이 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난 언제든지 제공한다. 내가 찍는 사진은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사진이 아니니까 가족들도 내 카메라는 덜 부담스러워한다. 사진 찍기 싫어하는 분들도 내 카메라 앞에서는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은 기념으로 그분들께 드린다.

2015년 4월 2일, 세월호 유가족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지와 인양을 촉구하는 삭발식을 진행했다. 사진 제공 이상임

반면, 못 찍을 때도 많다. 기자들은 계속 극적인 순간들을 노리고 우는 모습도 찍고 하지만, 세월호 가족들과 같이 먹고 자는 나는 카메라를 들지 못하고 같이 끌어안고 울 때도 있다.

진도체육관에서 사진 찍을 때는, 다시는 (세월호 가족들을) 안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켜보는 게 너무 아팠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더라. 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마음이 갔다. 광화문·안산을 자주 오가며 자연스럽게 유가족들과 관계가 쌓여 광화문 집회, 안산 집회, 간담회 등을 함께 다니게 됐다. 그렇게 3주기까지 오게 됐다.

- 찍은 사진은 어떻게 쓰이나.

내가 찍은 사진은 416기억저장소 그리고 세월호 가족에게 다 넘겼다. 저작권은 나에게 있지만 가족들이 다 쓰고 있다. 다른 곳에 사진을 보낼 때는 가족 의사를 물어보고 준다. 세월호에 대해 더 잘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 가족들은 좋아한다. 지금도 포스터, 전시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미수습자 2학년 6반 영인·현철 엄마가 팽목항에서 풍등을 날리며 아이들이 돌아오길 기도했다. 사진 제공 이상임

- 3주기가 다가오는데 옆에서 이 상황들을 지켜보는 심정은.

3년 전 4월 16일과 똑같다. 목포신항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해수부 직원들이 인원을 세며 통제한다. 그런데 현장에 들어가면 이미 많은 사람이 있다. 유가족만 통제당한다. 예전 박근혜가 현장에 왔을 때와 동일하다. 지금도 유가족들이 항구 밖에서 노숙하는 게 답답하다. 국민들이 도와줘서 세월호가 여기까지 왔지만, 해수부가 일을 처리하는 과정들을 보면 정말 답답하다. 오히려 유가족이 더 전문적이다. 세월호는 점점 부식하고 있다. 빠른 진행이 중요한데 옆에서 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게 답답하다.

유가족들이 웃으면 질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유가족들은 늘 울어야 하는가. 가족들은 정말 사소한 것 가지고 웃는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웃는 것을 보면 죽지 않고, 미치지 않고, 견뎌 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있을 때 저 사람들이 그 고요 속에서 무슨 시간을 보내는지 생각만 해도 안쓰럽다. 보지 않는 공간에서 느끼는 아픔이 정말 크다. 예전에 진도에서 한 미수습자 가족이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뒷산에 올라 아이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엄마들 콧물, 눈물 범벅이 된 사진이 많다. 엄마들은 그런 심정이다. 기절하고 죽을 것처럼 운다. 하지만 현장에서 조금 웃었다고 뭐라고 하는 건 정말 비인간적인 짓이다. 너무 왜곡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변하지 않는 416이다.

- 본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 마음이 어떤가.

아프다. 아프고 아프다. 울컥해질 때가 많다. 원래 잘 우는데, 부모들과 함께하면서 더 울보가 됐다. 아빠들이 "왜 울어" 하면서 놀리곤 한다. 찍으면서 많이 운다. 우는 사진보다 눈물을 참고 있는 모습들, 웃고 있는데 눈이 슬픈 사진들이 더 슬프다.

2014년 10월 진도 팽목항에서 미수습자 가족이 바다를 보며 울고 있다. 사진 제공 이상임
미수습자 남현철 군 엄마가 "조금 더 높은 곳에 리본을 달면 아들을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며 팽목항 성당 십자가에 리본을 달고 있다. 사진 제공 이상임

나는 현장에 안 맞는 사람이다. 아픈 순간도 찍어야 하는데 난 그걸 잘 못한다. 내 카메라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말을 가족들에게 할 때가 있다. 내가 울고 있을 때 누가 날 찍으면 나도 싫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나도 예쁘고 잘 나왔으면 하는데. 이런 사진을 찍겠다고 다짐해 온 사람이 아닌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인생이 바뀌었다.

-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은 무엇인가.

엄마들 졸업 사진을 찍어 줬다. 아이 교복을 입고 아이 영정을 들고 기억 교실 이전 전, 책상에서 졸업 사진을 찍었다. 엄마들이 막 울면서 "울지 마~ 좀 웃겨 봐"라고 서로 농담도 하고 "울면 아이가 슬플 것 같아" 하며 서로 웃으며 찍었다. 입을 다물고 웃기는 했는데 눈이 너무 슬펐다. 그런 사진이 너무 슬프다.

요즘 아이들은 꼭 점프샷을 찍는다며 엄마들도 점프샷을 찍었다.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다 재현하고 싶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촬영 순간만큼은 아이들처럼 해맑게 웃는 엄마들. 이상임 사진가는 미수습자들도 어서 가족 품으로 돌아오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 세월호 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조금만 덜 아팠으면 하고 소망한다. 사진 제공 이상임
엄마들은 "아이들이 졸업식 날 단체 사진 찍을 것"이라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별이 된 아이들이 그곳에서는 무섭고 아픈 기억을 잊고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사진 제공 이상임

- 현장에서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사진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진을 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며 현장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세월호 가족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카메라를 폭력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함께 머물며 일상을 촬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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