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일 서울 성수동 작은 카페에서 모이는 나무공동체(여정훈 전도사, 왼쪽)는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 양 할머니 이세자 장로를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세월호 3주기를 한 주 앞둔 4월 9일, 10명 남짓 모이는 나무공동체(여정훈 전도사)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초청해 고난주일 예배 설교자로 세웠다.

나무공동체는 서울 성수동 한 카페에 자리 잡은 작은 공동체다. 대한성공회 소속으로 지금은 청년 10여 명이 주일 오후에 모여 함께 예배한다. 원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었지만 한 달 전 성수동으로 이사했다. 조금 더 많은 청년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다. 주일이면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등 경계 없이 어우러져 예배하고 함께 식사하며 교제를 나눈다.

이날 예배에는 대한성공회 남양주교회 교인 20여 명도 참석했다. 성수동으로 이사 오기 전 남양주에서 함께 교제하던 교인들이 특별 찬양을 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온다는 소식에 멀리 인천에서 온 교인도 있었다. 예배 시작과 함께 성지(聖枝) 가지 축복식이 열렸다. 종려나무 가지를 바닥에 깔고 '호산나'를 외친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예배 참석자들은 나뭇가지를 하나씩 받았다.

2017년 고난주일을 맞은 나무공동체가 초대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은, 온 가족이 교회와 연이 있었던 고 유예은 양 할머니 이세자 장로다. 예은 양 가족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에 몸담았다. 할아버지·할머니는 은퇴한 장로 부부, 엄마 박은희 씨는 전도사다. 이세자 장로는 며칠 전까지 목포에 있었다. 손녀가 탔던 배를 직접 보고 왔다. 안산에서 성수동까지 먼 길을 와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대한성공회 남양주교회 교인 20여 명도 참석해 이세자 장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세자 장로는 2014년 4월 16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손녀딸 예은이가 다니는 학교가 단원고등학교인 줄도 몰랐다. 동료 교인들과 교도소 선교를 위해 길을 나섰다가 버스 안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다. '안산' 학교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집에 전화했다. 남편에게 수화기 너머로 그 배에 예은이가 타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후 이세자 장로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정부가 어떻게 희생자 가족을 다루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줬는지 똑똑히 새기게 됐다. 자녀들의 반대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찍었던 그였다. 세상 일에 눈감고, 내 가족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했던 지난 날을 후회했다.

"저는 50년 동안 감리회 한 교회만 섬겼어요. 그런데 사고 난 뒤 보니까 내가 한 게 신앙생활이라 할 것도 없더라고요. 신앙생활이 그저 내 중심으로, 내 새끼, 그냥 내 것만 생각하고 편리하게 살아온 거예요.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나를 보고 뭐라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이 '나는 도무지 너를 모르겠다'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이제 고난주간 시작인데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십자가를 묵상하잖아요. 우리를 위해서, 죄인 된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해 피눈물을 다 흘리고 가셨는데요.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억눌리고 억울하고 아프고 병들고 이런 사람 위해서 오셨는데, 저는 신앙생활 하면서 그런 신앙생활해 본 적이 없어요. 누가 아프다고 해도 나만 안 아프면 되고, 억울해도 나만 안 억울하면 되는 거지.

사실 저는 신문도 잘 안 봤어요. 5·18도 있었고 큰 사건도 많았는데 사회 일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나만 편안하게 잘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 생각하고, 낼 수 있는 헌금 열심히 내고, 새벽기도 하루라도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죠. 그게 순종이다 싶어 그렇게 생활했어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세자 장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세자 장로는 엄마를 닮아 살갑고 명랑했던 예은이가 곁을 떠난 뒤에야 깨우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고, 귀는 있으나 듣지 못하는 할머니를, 예은이가 가면서 일깨워 줬다고 이 장로는 확신했다. 이제 사회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지닌 이 장로는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석한다. 매주 주일 오후 안산 분향소 기독교예배실에서 열리는 예배에도 참석한다. 그는 먼저 떠난 아이들을 보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 노인들이 잘못 살았어요. 늙은이들이 잘못 산 대가예요. 사회 문제에 책임지지 않고 우리들만 밥 먹고 살기 위해 살았죠. 돈만 모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나라가 망가진 건데. 아직도 멀었지만 이제 저는 조금 알게 됐어요."

세월호 참사 뒤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이세자 장로는 기독교인들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저도 때로 통곡을 하고 울어요. 우리 아들(예은 아빠)은 잘 안 우는데, 한번 울었다 하면 살이 흔들리는 울음을 울어요. 집이 흔들려요. 그런데 엄마(예은 엄마)는 내장이 녹아서 나오는 울음을 울어요. 예은이 쌍둥이 언니는 옆에서 들으면 팔뚝 하나를 뽑아 가는 것처럼 울어요. 언니가 울기 시작하면 우리가 울음을 그쳐야 해요. 팔다리가 잘린 것처럼 우니까요.

그걸 보면서 '우리가 함께 울어도 서로의 울음이 다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같이 울어 주고 행동으로 보여 주는 거예요. 큰 교회에서는 기도해 준다고 말은 하는데, 사실 기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기도는 기본이지만 직접 와서 옆에 앉아 주고, 세월호 리본 달아 주고, 배지로 표시해 주고. 사람들이 뭔가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있다면 그건 아니라고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많은 것을 경험했고 할머니로서 아이들한테 사랑한다고도 말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온 것 후회합니다. 여러분 집에 돌아가시면 가족들 많이 안아 주시고 사랑한다고 해 주세요."

 

참석자들은 미수습자 9명이 온전히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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