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 책을 펴낸 은수미 전 의원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정치인 은수미가 <은수미의 희망 마중>(윤출판)을 출간했다. 지난해 2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두 번째 주자로 나선 은수미 전 의원(민주당)은 10시간 넘게 발언해 이목을 끌었다. "사람은 밥만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말은 많은 사람 사이에 회자됐다.

여세를 몰아 20대 총선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낙선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전국을 다니며 20~30대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듣고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펴낸 <은수미의 희망 마중>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애환이 묻어 있다.

이 책은 정치를 잘 모르는 세대를 위해 쉽게 풀어 쓴 '정치학 입문서'다. 복잡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닌 은수미 개인이 걸어온 인생을 소개하며, 젊은 세대가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 등을 제시한다. '내가 말이야', '왕년에는 날렸지' 같은 꼰대스러운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은수미 전 의원은 현역 의원 못지않게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라디오 방송과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전국을 돌며 강의한다. 얼마 전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캠프'에서 SNS 특보로 활동했다. "국회의원 시절만큼 바쁘게 지낸다", "월화수목금금금을 산다"는 은수미 전 의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노란 배지 달았더니 '빨갱이'라고
"가난한 시민과 함께하겠다"

하늘이 미세먼지로 뒤덮인 4월 4일, 성남 중원구 광명로로 향했다. 노동·사회학을 전공한 은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3번을 받고 국회에 입성했다. 원래 4년 임기만 채우고 몸담고 있던 정책 연구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정치에 뜻이 없었는데,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 생각이 바뀌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펼쳐 보겠노라 다짐했다. 나고 자란 서울 신림에서 출마하고 싶었지만, 당은 연고도 없는 성남 중원에 은 전 의원을 보내 경선을 치르게 했다.

힘겹게 경선을 통과했지만, 성남 중원은 이방인을 받아 주지 않았다. 세월호 노란 배지를 차고 유세하는 그에게 '빨갱이'라고 삿대질을 하고, '친노', '철새', '이혼녀', '외지인'이라고 비난했다. 뒤돌아설 법도 한데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꿋꿋이 버티는 이유가 있다. 가난한 소시민이 사는 동네를 이대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주택들, 비좁은 도로,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량들만 봐도 대충 감이 왔다. 은 전 의원이 쓰는 사무실은 주택가에 있다. 낡은 건물 3층에 있는데 간판조차 없다. 1층은 식당이, 2층은 기도원이 쓰고 있다.

'박근혜 하야' 스티커가 붙어 있는 현관을 두드렸다. 안에서 후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은 전 의원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1년 만에 만나는 그의 모습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단발에 캐주얼한 옷차림도 그대로였다.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로 이동했다. 책장에는 각종 책과 보고서가 빼곡했다. 커피를 준비하던 은 전 의원에게 근황을 묻자 "원내에 있든 원외에 있든 휴일이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현역도 아닌데 뭐 그리 바쁠까 싶었다.

"원외에 있으니까 지역 일정 챙기고, 라디오 방송 출연하고 강의하고 지낸다. 늦은 밤에도 메시지 올 때가 많은데 일일이 챙긴다. 원내에 있을 때는 보좌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 한다. 상당히 힘들다. 보통 낙선하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앓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시간도 없었다.(웃음)"

바쁜 와중에도 본인 이름을 딴 책을 출간했다. 전당대회를 치르고 난 지난해 12월, 폐렴과 독감에 걸렸다. 병치레에도 집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4년간 국회에서 정치 생활을 하며 얻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사람들은 정치를 이야기하지만, 정치를 잘 모른다. 특히 청년 세대는 취업과 먹고사는 문제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에 관심을 두면 '진지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 책을 낸 셈이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전국을 돌며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은 전 의원은, 자신이 정치를 하며 뒤늦게 알게 된 진짜 정치 이야기를 미래 세대에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정치'라는 단어가 입에서 떠날 줄 몰랐다.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은 전 의원은 정치가 변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치가 변하면 많은 부문에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해진다.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세상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는다. 다만 틈새와 여지가 생길 뿐이다. 바로 그때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72쪽)

서울 신림에서 자란 은 전 의원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어렸을 때부터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친구, 점심을 못 먹는 친구를 보며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생겼다.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사노맹 사건으로 6년간 투옥됐다.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뤘지만, IMF와 함께 경제적 불평등을 맞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정치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87년 이후를 만들어 낸 것도 민주화 세대이지만 2000년대 이후 아웃소싱을 함께 만든 것도 민주화 세대이다. 이 같은 깨달음 앞에 선 순간 평범한 시민으로 살자던 결심이 흔들렸다. 할 만큼 하지 못했으며 충분히 하지 않았으며 해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갈지 모르지만 나 자신은 세상을 제치고 잘살기 어려웠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157쪽)

돌아갈 자리 없는 자 위해 정치 선택
"'세월호 참사', 국민적 위로 필요"

세월호 참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애당초 비례대표 국회의원 4년 임기만 채우고 정책 연구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몸이 부서지는 듯한 경험"을 했다. 고통에 울부짖는 유가족을 보며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돌아갈 자리가 없다면 넌 어떻게 하겠니.' 그 뒤로 돌아갈 자리가 없는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사실 세월호 참사를 겪지 않았더라면 그로 인해 죽고 싶을 정도의 극심한 무력감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재선에 도전하는 일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 인권과 존엄의 가치를 묻는 것을 넘어 시대와 역사 앞에 스스로를 세우려 했던 그간의 변화가 내 삶을 바꾸었다." (162쪽)

"세월호 참사 이후 정의로운 길이 무엇인지 고민만 하지 말고 '옳다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라'는 생각이 커졌고 정치 활동도 그런 마음으로 해 나갔다. 지원을 요청해 오는 비정규직과 노동 현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응했을 뿐만 아니라 당 내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4년으로 끝내자던 나의 정치를 재선 도전으로 바꾼 것도 세월호 참사이다. 설령 실패해도,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내가 먼저 그만두지는 말자. 실패의 기록이라도 남기자. 그러면 이 한계를 넘어서는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186쪽)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은 물론이고, 국민적 차원의 추모가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은 전 의원은 "세월호 가족들은 '단순 교통사고다', '시체 팔이 한다'는 식의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공격당하고 입은 상처가 어마 무시하다. 국민적 차원의 추모와 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넘어가지 말고 이번에 세워질 정권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정치를 한다는 은 전 의원 말이 형식적이거나 가식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19대 의원 당시, 은 전 의원은 거리의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이후 많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죽음을 거두어 달라고 공개 호소했다. 이제 이 호소는 지금 어딘가에서 홀로 자괴감에 빠져 죽음을 떠올리는 청년들에게 향한다.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다. 인생도 승부도 끝나지 않았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할 터이니 제발 살아 달라. 이유 없이라도 살아 달라. 당신의 삶은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살아갈 힘이 생겼을 때 당신만큼 지친 사람에게 그렇게 격려해 달라. 그렇게 서로 껴안고 살아가자." (167쪽)

강의를 다니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하나는 "정치가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이다. 은 전 의원은 "지금 이 세대가 6·10 항쟁보다 더한 '촛불 혁명'을 해 놓고도 세상이 바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무너뜨린 '적폐 세력'을 끌어내렸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는 변화가 없다. 일자리가 늘어난 것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은 전 의원도 이 지적에 동의한다.

그는 "과거만 해도 가난은 대물림되지 않을 수 있었고, 부와 빈곤 사이에 뚜렷한 경계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불안한 삶, 불안한 직장, 불안한 미래를 살아간다. 대한민국 사회는 정규직이라 불리는 정착민의 삶에서 비정규직, 하청, 파견, 알바로 불리는 유목민의 삶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현실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은 전 의원은 "독서 모임이라도 좋으니 뭐든 네트워크를 만들자. 일상의 정치를 복원하자"고 주문했다.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으면 벽은 무너지고 시대는 바뀐다. 희망 대신 절망부터 알아 버린 청년 세대가 민주화 세대보다 더 어려울 수는 있지만 세대를 넘어 우리가 함께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긴다. 이겨야 미래가 온다." (106쪽)

당장 정치권이 해결해야 문제들도 있다. 은 전 의원은, 국민이 불공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며 기본적인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했다. 단계적으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는 것을 포함 비정규직 노조 활성화, 1일 8시간 근무, 1주 최대 52시간 근무, 고용 인력 확대, 특수 고용 노동자 고용보험·산재보험 의무화 등을 주장했다.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 공공 부문 일자리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예산 1%(4조)를 우선적으로 청년들에게 깔고 가면서 기본 소득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밥만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다"는 발언으로 인지도가 뛰어올랐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독방서 살기 위해 몸부림,
사람은 언젠가 약자 되기 마련
그래서 정치 필요해"

은 전 의원은 사노맹 사건으로 6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 달, 별을 볼 수 없는 1.5평 독방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혼자 노래를 부르고, 푸세식 변기에서 올라오는 구더기를 보며 밥을 삼키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러나 냉난방이 안 되는 독방에서 사람 몸은 견디지 못했다.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은 전 의원은 그때 한 가지 깨달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 무너진다.' 반성문을 쓰고 전향하라는 유혹도 끊이지 않았지만, 타협은 하지 않았다.

은수미 전 의원은 감옥을 나올 때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다른 제목의 기도를 올린다. '떠나야 할 때를 알게 하소서', '어거지(억지)를 부리지 않게 하소서', '지혜를 주소서'. 은 전 의원은 모태신앙이다. 성공회 신자다. 지금은 성당에 잘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 간절히 기도한다.

"6·10 항쟁 이후 노태우가 집권했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절망스러웠겠는가. 나라는 분신 정국으로 치달았다. 20여 명이 분신했다. 연대 굴다리에서 시민이 분신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이런 절망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神)이 어딨는데?',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은 뭐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더라. 발길질 하며 신앙을 밀어냈다.

당시 교회는 어땠는가. 기득권에 편승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를 지지하더라도 기득권 세력 편들면 판을 뒤집어엎으신 분이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놀랍다. 이건 쉽지 않다. 수많은 양들이 떨어지는 것 대신 자기가 절벽에 떨어졌다고 나는 항상 기억한다."

'돌아갈 자리'를 포기한 대가는 혹독하다. 국회의원 보수보다 많이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저버렸다. 그렇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도 겪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지난 1년간 부지런히 터를 닦아 온 성남 중원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강의를 들은 청년들의 피드백도 힘을 실어 준다. 은수미 전 의원은 "'자신감을 가지겠다', '너무 힘이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람들 속에서 힘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은수미의 정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고통스러운 질문의 시간을 보내면서 깨달았다. 정치는 권력 배분도 조율의 기술도 아닌 '약자 곁에 선 매 순간의 결단'이라는 것을.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한 번 이상 약자가 된다.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약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온갖 이유로 약자가 된다. 실업, 질병, 산재, 사고, 사업 실패, 가족의 사망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때마다 존엄해야 하는 시민의 권리가 훼손된다. 그래서 정치가 필요하다." (187쪽)

은수미 전 의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정치 활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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