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에 빠진 엄마를 생각하면 무기력하다. 분명 엄마는 가까이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같이 대화를 해도 다른 곳에 있는 느낌이다. 얼마 전, 신경숙 작가가 쓴 <엄마를 부탁해>(창비)를 읽고 펑펑 울었다. 소설을 읽는데 엄마가 생각났다. 가슴 깊은 곳에서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엄마는 이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버린 것 같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신천지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면 어떤가"라는 물음에, B는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B는 2014년, 60대 엄마가 신천지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가 "너도 한번 가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한 센터가 신천지였던 것이다.

자신을 속인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껴 함께 살던 집을 나왔다.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은 가족끼리 이단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았다. 생각처럼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엄마는 여전히 신천지에 출석 중이다. 가끔 B에게 같이 가 보면 어떻겠느냐고 문자를 남긴다. 4월 2일, B와 통화한 내용을 정리했다.

B는 4년 전 엄마가 신천지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뉴스앤조이 현선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엄마가 신천지에 빠졌다는 것을 언제 알았나.

나는 모태신앙이고, 엄마는 권사였다. 아빠도 교회에 다녔고. 가족 구성원 중 내가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았다. 엄마는 2014년 가을, 우울증이 있는 나에게 센터를 다녀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무료로 성경 공부하는 곳이 있는데 한번 배워 보라고. 이곳을 다니면 외국인들과 교류할 수 있고 엄청난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종교 단체인지는 몰랐고 좋은 기회를 주는 센터 정도로 여겼다. 그때 엄마를 믿고 두 달 정도 다녔다. 내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빠져나올 때까지도, 센터는 '신천지'라고 밝히지 않았다.

그곳이 신천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엄마와 크게 다퉜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싸운 적은 처음이었다. 배신감이 컸다. 엄마가 나를 속였다는 게 상처였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교리를 믿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해하겠다고 했다. 대신 엄마도 나한테 신천지 가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신천지 사람을 집으로 불렀다. 엄마는 신천지가 진짜라고 믿었고, 가족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내가 싫다는 데도, 신천지 사람이 막무가내로 와서 나를 설득했다. 그게 더 화났다. 그때 엄마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졌구나 싶었다.

- 신천지 센터는 어땠나.

센터에 가니까 모르는 사람 한 명을 나에게 붙여 줬다. 새로 온 사람을 옆에서 챙겨 주는 사람으로, 그들은 '잎사귀'라고 불린다. 정말 잘 대해 준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거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그런데 신천지 사람들과는 함께 있는 게 즐거웠다. 잎사귀가 친절하게 대하고 연락도 자주 하니까 마음 문이 열렸다. 내가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거나 의존적인 성격이었다면, 이것 때문이라도 신천지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을 거 같다. 너무 잘해 주니까.

관계는 좋았지만 성경 공부하면서는 의아했던 게 몇 있었다. 이들은 나에게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말을 반복했다. 요한계시록을 얘기하면서, 세상이 혼란을 겪고 선지자가 오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도 선지자가 오는 시기를 잘 맞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선지자가 누군지는 말해 주지 않고 숨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영어 단어를 가르치듯 단어를 짜 맞춰 교리를 가르쳤다. 듣고 있으면 '말이 되는 구나' 싶을 정도였다.

또 한 가지, 그들은 성경에 대한 궁금증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지 말라고 했다. 인터넷이 곧 선악과라고 했다. 검색하면, 나쁜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와 성경 공부를 방해한다고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자기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신천지 실체를 미리 알지 못하도록 차단한 것 같다.

- 엄마가 신천지에 빠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추정해 보자면, 심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우리 가족은 화목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속력도 부족하고 같이 외식한 적도 없다. 엄마는 가족들과 8년 정도 떨어져 살면서 생계를 책임졌다. 아빠보다 더 많이 일할 때도 있고. 그런데 아빠는 엄마를 공감하거나 이해해 주지 못했다. 오히려 폭언을 쏟아 냈다. 가족 중 엄마가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엄마는 홀로 그 시간을 견뎠다.

- 엄마가 신천지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어떻게 대처했나.

일주일 뒤 가족들에게 바로 이야기했다. 2015년까지 다른 가족들은 신천지가 뭔지도 몰랐다. 다들 충격을 많이 받았다. 다른 형제는 엄마가 이단을 믿는다는 사실에 실망했고, 아빠는 '바보 같은 걸 왜 믿냐'고 쏘아붙였다.

인터넷에서 신천지에 대해 알아보면서 심각성을 인지했고 엄마를 제외한 가족들이 상담도 받았다. 상담사는 엄마가 가정에서 심정적으로 어려웠으니까 지금이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잘 보듬어 주고 감싸 안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게 제일 중요한데 어렵다.

B는 엄마를 신천지에서 빼내려면,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쉽지 않다. 뉴스앤조이 현선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엄마와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엄마가 가끔 메시지로 나에게 근황을 묻는다. 나는 단답으로만 답한다. 엄마는 가족 중에서 가장 온화하고 마음이 여렸다. 그래서 엄마에게 제일 많이 의지하고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나를 신천지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생각? 이제는 의지하는 것도 없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회의감에 빠졌고, 반포기 상태까지 온 거 같다.

엄마를 대하는 나를 보면 혼란스럽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거리감을 두게 된다. 물론 엄마를 그대로 놓아두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다. 몇 주 전에 '이단 대처법'을 배우는 강의에 참석했다. 엄마를 버리려고 하는 건 아닌데….

- 이 사건을 겪고 나서 가족들은 어떻게 변했나.

서로 믿음이 더 적어졌다. 우리 가족은 원래 문제가 많던 가정이다. 그게 신천지 때문에 확실하게 드러났다. 아빠에 대한 원망도 커졌다. '아빠가 엄마에게 상처를 주지만 않았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가 더 서먹해졌다. 아빠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오히려 관계는 더 멀어지게 됐다.

신천지 문제를 겪으면서, '왜'라는 질문이 생겼다. 남들은 가족 여행도 가고 다들 친하게 지내는 거 같은데, 우리 집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되짚어 본다. 난 잘못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고민한다. 교주라는 사람은 남들의 행복을 빨아먹으면서 자기 뱃속 불리는 게 중요한 걸까 싶기도 하고. 이런 생각만 하면 무기력해진다. '당장 엄마를 강제로 설득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지만, 그것 역시 엄마에게 세뇌가 될 거 같다. 억지로 엄마를 바꿔서 빠져나오게 한들, 신천지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가 받게 될 상처도 두렵다.

- 4년간 신천지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기독교인과 교회에 말해 주고 싶은 게 있나.

사람들이 이단의 위험성을 잘 모른다. 이상한 사람들이 믿는 것쯤으로만 여긴다. 교회는 이단을 이야기할 때, 이단은 나쁜 사람들이니 교리 믿지 말고 절대 가지도 말라고 경계한다. 그런데 이게 왜 믿으면 안 되는지 실제적인 이야기는 해 주지 않는다. 이단 교주는 어떤 이득을 보는지, 피해자는 어떤 피해를 보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게 아쉽다. 실제적인 예방책은 없는 거 같다.

엄마가 신천지에 빠지고 4년이 지났다. 여러 생각이 든다. 그동안 교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게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설교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처럼 엄마가 신천지에 빠졌을까 묻게 된다. 물론 화목한 분위기에서도 신천지를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엄마는 교리보다는 심리적으로 혹해서 빠졌다. 가정이 엄마를 잘 케어했다면 기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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