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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정치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대선행동 사순절 칼럼] 예레미야가 요청한 '평화를 위한 기도'

김근주   기사승인 2017.04.03  13: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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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정의평화대선행동(대선행동·상임공동대표 박득훈·김경호·성명옥·남재영)은 19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민주적 정권 교체 운동을 펴는 기독교계 시민단체입니다.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담은 의제를 발굴하고, 성서적 민주 시민 교육에 앞장서며 공정 선거 감시 운동을 병행할 예정입니다. 대선행동은 2월 27일부터 4월 3일까지 매주 <뉴스앤조이>에 칼럼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예레미야 29장은 주전 597년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이들에게 보낸 예레미야의 편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그들이 살고 있는 성읍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명한다(렘 29:7). 한 성읍의 평화를 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바벨론 성읍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지만,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에는 바벨론에 대한 멸망 선포도 있다(렘 50-51장). 그리고 그러한 멸망 선포의 근거는 교만으로 대표되는 바벨론의 죄악이었다. 그렇다면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그저 바벨론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구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바벨론이 교만하다면, 평화는커녕 패망과 재앙이 닥쳐올 것이고 유대 사람들의 평화 역시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평화를 구하였으나 그 길과 행위가 바르지 않았기에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살아가는 곳의 평화를 빈다는 것은 그곳 가운데 평화에 합당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에 합당한 일로 예레미야 7:3-7에서는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웃들 사이에 행하는 정의'이다. 예레미야 22:3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에스겔 45:9-10에서는 통치자들을 향해 정의를 행할 것을 명령한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 가난한 자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않는 삶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준행해야 하는 핵심적인 사항이면서 모든 이스라엘이 그들의 일상 가운데 실천해야 하는 사항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성읍의 평화를 비는 것은 단순한 중보 기도가 아니다. 그것은 그 성읍 가운데 정의와 공의가 임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정의를 행할 것인가. 먼저 정의의 근본이 재판이라는 점에서 정의에는 구조적 차원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재판이라는 틀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억울하고 가난한 자는 누구일까. 당장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을 것이며,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 비정규직·파견직이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 계층임으로 인해, 혹은 동남아 출신 노동자라는 이유 때문에 삶이 힘겹고 버거운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청년들이 있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파견직 노동자들의 권익이 보장될 수 있는, 그리고 가난해도 기본적인 삶이 보장될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선거를 통해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뜻을 표현하고 반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틀이 선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거는 정의를 일상에 행하는 신앙적인 실천이다.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하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평화가 임하도록 애쓰는 실질적인 실천이다.

투표의 기준은 무엇일까. 앞에서 살펴보았던 모든 성경 구절들은 통치자들이 해야 할 일로, 억울하고 가난한 이들을 회복하고 돕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어떤 후보나 정당이 비정규직 문제에 오랜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지, 어떤 이들이 세월호 진상 규명에 적극적인지, 어떤 정당이 백혈병 피해자들의 고통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는지,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바벨론에서 곧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거짓 희망을 부추겼고, 그로 인해 바벨론에서의 삶을 덧없고 오래가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참예언자인 예레미야는 바벨론에서의 세월이 70년이라 선언한다(렘 29:10). 70년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따라 그때가 충만하게 차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당장 떠나올 사람처럼 살아갈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오래 머물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성읍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상황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공의의 열매가 평화일진대(사 32:17), 성읍의 평안을 위한 포로 된 이들의 기도는 그 땅의 정치적인 현실에 대한 관심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김근주 / 기독연구원느헤미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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