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순천중앙교회는 올해로 110주년을 맞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순천중앙교회는 전남 순천시 매곡동에서 '어머니 교회'라고 불린다. 올해 110주년을 맞은 순천중앙교회는 1907년 순천읍교회로 출발했다. 긴 역사만큼이나 특이한 점이 있다. 선교사가 아닌 당시 교인들이 뜻을 모아 자발적으로 교회를 세웠다. 초대 담임 프레스턴(변요한) 선교사,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이기풍 목사, 독립운동가 박용희 목사 등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러나 현재 순천중앙교회는 지역에 있는 다른 교회보다 규모가 크고 오래된 걸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이 없다. 오히려 2년 전에는 담임목사와 교인 간 갈등으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어머니 교회'를 자부해 온 순천중앙교회는 변화를 도모했다. 지난해 4월 국내에 몇 안 되는 '해방신학자'를 담임으로 청빙했다.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교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한 홍인식 목사(61)를 세웠다.

해방신학자가 지방 큰 교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 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부임 1주년을 앞둔 홍 목사를 만나기 위해 3월 22일 전남 순천중앙교회를 찾았다. 검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예배당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교회 앞마당에는 봄을 알리는 듯 목련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기자를 처음 맞이한 이는 순천중앙교회 교역자들이었다. 교역자들은 양복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있었다. 오상열 목사는 "세월호 참사가 부활절과 맞물려 있으니 교역자들이라도 달고 다니는 게 어떻겠느냐고 담임목사님이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시간에 맞춰 홍인식 목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회장실로 이동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홍 목사 상의에도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었다. 이날은 마침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시도하는 날이었다. 자연스럽게 세월호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세월호, 정치 아닌 생명 문제
교역자들 먼저 노란 배지 차야"

순천중앙교회는 해방신학자 홍인식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한국교회는 세월호를 부담스러워한다. 노란 배지를 착용한 교인을 징계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정치적'이라며 세월호를 언급조차 못 하게 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방 교회에서 교역자가 배지를 달고 다녀도 괜찮을까. 홍 목사에게 물었다.

"배지를 차고 안 차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것은 정치 문제가 아닌 생명의 문제 즉 기독교 가치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만큼 생명의 귀중함을 나타내 주는 사건은 없다. 교역자들 먼저 배지를 차고 다니면서 '우리는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

거부반응을 보이는 교인은 없었다. 오히려 함께하자 말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홍 목사는 지난해 성탄절 예배를 마치고 혼자 팽목항을 찾았다. 이 이야기를 교인들에게 전하니 "왜 우리는 데려가지 않느냐. 다음에는 같이 가자"는 말이 돌아왔다. 순천중앙교회는 4월 16일 부활절 예배를 마친 뒤 팽목항 내지 세월호가 거치될 목포신항으로 이동해 세월호 가족과 예배할 예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지 11일 만에 바닷속에 있던 세월호가 물 위로 형체를 드러냈다. 홍 목사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박근혜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통령이든 목사든 사람을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끝'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며 유가족들이 청운동까지 간 적 있지 않은가. 그때 박 대통령은 경찰을 동원해 길을 막고, 만나 주지 않았다. 대통령이든 목사든 지도자가 사람을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끝이다. 아무리 좋은 업적을 세워도 안 된다. 유가족들이 그렇게 울부짖었는데도 모른 체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방신학 전공 이유로 '퇴짜'
홍 목사 "좌파 신학 하면 안 되나
해방신학은 가난한 자 위한 신학"

홍인식 목사가 어렸을 때 홍 목사 가족은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 부모님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민을 결정했다. 홍 목사는 파라과이·아르헨티나·쿠바 등 남미 지역에서 살았다. 한국에서 목회한 경험은 얼마 되지 않는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홍 목사 스스로 한국에서 목회하는 데 뜻을 두지 않았고, 한국교회는 해방신학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을 위해 목회해 달라"며 청빙을 요청해 놓고, 홍 목사 이력서에 적힌 '해방신학'을 보고 등 돌린 교회가 한둘이 아니다. 다른 신학은 몰라도 해방신학은 유독 한국교회와 거리가 멀다. 특히 해방신학을 좌파 신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이에 대해 홍 목사는 "왜 좌파가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방신학은 좌파 신학이 맞다. 소홀히 여겨지고 배제됐다. 왜 좌파는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좌파는 정말 악인가. 그렇다면 우파는 선인가. 이런 질문 없이 좌파 신학은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논리에 맞지 않다. 좌파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게 나쁜가? 유물론적인가? 무신론적인가? 절대 아니다. 특별히 해방신학의 시각은 가난한 자에 집중한다. 해방신학이 말하는 가난한 자는 오늘날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사회 모든 부문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교회 특히 대형 교회 지도자들은 가난한 자 편에 서지 못했다. 그러니까 세월호 가족들에게 '천국 갔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망언이나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신학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사회학을 기반으로, 현장을 기반으로 한 신학을 형성해야 한다."

"세습은 영적 '근친상간'
망해도 세습하면 안 돼"

홍인식 목사는 세습 절차를 밟고 있는 명성교회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최근 변칙 세습 과정을 밟고 있는 명성교회 이야기가 나왔다. 홍 목사는, 세습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게 아니라 김삼환 원로목사 개인을 위한 일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삼환 목사가 왜 아들에게 세습하려고 하는가. 교회를 안정감 있고 평화롭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안정은 교회가 추구하는 최고 가치인데, 이게 하나님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선 주자 안희정 지사 말대로 '선의'를 가지고 그 일을 한다고 치자. 그럼에도 하나님나라 신학 관점에서 보면, 설령 교회가 깨지고 불안정해져도 세습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김삼환 목사는 한국교회나 이 사회 공동체보다 (교회) 사유화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고 있다. 자기들의 번영이 곧 하나님나라라고 생각한다."

실제 명성교회 청빙위원회는 교회 안정과 김삼환 목사의 사역을 이어 가기 위해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했다고 밝혔다. 합병 세습을 결의하던 당일, 명성교회 몇몇 교인은 "남의 교회 일에 왜 관심을 두느냐"며 구별 지었다. 홍 목사는 교회를 공적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 세상 빛과 소금의 역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가. 철저히 공적 개념이다. 그래서 교회가 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공동체가 원하는 걸 해야 한다. 사회 평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사회가 과연 교회 세습을 원할까. 아니라면 교회가 망할지라도 과감히 선택해야 한다.

워렌 버핏은 '미국 사회가 아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자기 재능으로 돈을 벌었으면서 그 공을 미국 사회에 돌린 것이다. 워렌 버핏이 만일 아프리카에 태어났어도 이렇게 됐을까? 아니다. 김삼환 목사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한국교회라는 토양이 있었기에 오늘날처럼 된 것이다. 남의 교회에 간섭 말라는 건 너무 유아적인 생각이다.

교회에 누가 오든지 간에 예수님 마음으로 하면 된다. 김삼환 목사가 훌륭한 일을 해 왔다 해도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발전이 없고 멸망의 길이기 때문이다. 세습은 영적 근친상간이다. 당장 사역을 유지할지 몰라도 먼 미래를 보면 발전성이 없다."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홍 목사는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락교회 후원을 받아 파라과이·아르헨티나 선교사로 파송된 바 있다. 만일 명성교회에서 후원을 받았다면 이렇게까지 비판할 수 있었을까. 그대로 질문을 던졌다. 홍 목사는 "영락교회라고 비판 안 한 건 아니다. 그동안 정부에 무비판적으로 대응해 온 점을 지적해 왔다. 후원과 상관없이 잘못된 건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식 목사는 한국교회가 욕먹는 이유 중 하나를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없어서"라고 봤다. 그는 교회의 시각 변화를 주문했다. 낮은 위치에서 성서를 읽고 사회문제를 봐야 한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전면전을 펼치는 동성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교회는 그렇게 하면 할수록 (사회에서) 멀어진다. '동성애는 죄악이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생명 인권 차원에서 그 사람들이 억압받거나 차별당하거나 죄악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과연 오늘날 사회를 문란하게 하는 게 동성애일까? 가정을 깨뜨리는 건 이성의 불륜이 압도적이지 않은가. 동성끼리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내 가치관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본다. 동성애=죄악이라는 시대적 한계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인권이라는 전 인류적 공유 가치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때 '고지론' 신봉 
대형 교회 담임, 훌륭한 학자 꿈꿔
구티에레스 <해방신학> 읽고 전향
가난 만드는 사회구조 문제 직시

가난한 현장이 아닌 지방의 큰 교회로 부임한 홍 목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홍 목사는 타당한 비판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사회 선교를 하는 목회자를 돕고, 교회 체질도 바꿔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순천중앙교회

해방신학을 공부하기 전 홍인식 목사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대형 교회 강단에 서고, 학자로 이름을 떨치는 것을 꿈꿨다. 꿈을 이룬 다음 매스컴과의 인터뷰도 준비해 뒀다. 누군가가 "어떻게 이런 업적을 쌓았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모두 주님의 은혜입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려 했다. 높은 사람이 돼서 주님을 전도하면 더 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홍 목사는 "'고지론'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의도와 달리 한 가지 문제점도 있었다. 홍 목사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 공부를 못하거나 능력이 없는 이들을 '비리비리'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가난을 극복하는 길은 결국 '크게' 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 온 홍 목사는 허름한 가톨릭 한 책방에서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을 읽고 전향했다.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블랙홀 같은 현실에서 못 벗어나게 만드는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하고 줄곧 그곳에서 활동해 온 홍 목사는 2008년 서울 강남에 있는 현대교회에 부임했다. 해방신학자가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강남에서 목회한다는 소식에 적잖은 사람이 우려를 표했다. 당시 홍 목사는 이곳에서 4년간 시무하다가 스스로 나왔다.

"현대교회는 에큐메니컬한 교회로 알려졌다. 나는 상당히 진보적인 교회, 이를테면 기장의 향린교회로 생각하고 갔다. 가난한 현장에서 목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지원·교육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교회가 나뉘어 있었다. 진보적인 분들이 따로 교회를 개척한 걸 나중에 알았다.

현대교회에 부임한 뒤 현장에서 목회하는 이들과 교제하며 공부를 많이 했다. '목회는 안 하고 돌아다니기만 한다'고 교인들이 비판했다. 나름 의무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교인들은 다른 걸 원했다.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그리고 멕시코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연고 없는 지방 교회 부임
담임목사 예산 올리지 않고
사회 선교 단체 후원
교회 찾지 않던 30~40대 증가
교인들, 비평학적 성서 접근

<해방신학>을 접하기 전 홍 목사는 '고지론'을 신봉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목회하지 않을 때 홍인식 목사의 월평균 수입은 150만 원 정도였다. 교회와 지인들에게 후원받은 금액이었다. 절반은 저축하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했다. 현대교회 사임 이후 4년 정도 멕시코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에 들어왔다. 번역을 하며 지낼 생각이었는데, 마침 지인 소개로 순천중앙교회에 청빙 원서를 제출했다. 기대도 없이 원서를 냈는데 낙점됐다.

홍 목사는 "면담할 때 거침없이 말해서 안 될 줄 알았다. 상당히 놀랐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홍 목사는 전남 지역 신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교회는 물론 노회에 친분 있는 인사도 없었다.

해방신학자가 지방의 큰 교회에 부임을 한다고 하니 곱지 않은 시선이 뒤따랐다. 가난한 현장으로 가지 않고, 잘 갖춰진 교회에서 떵떵거리려 한다는 비판이 들렸다. 홍 목사는 선교 현장 목회자들과 고민을 나눴다.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소신대로 목회를 해 보라는 격려를 받았다.

홍 목사는 부임 이후 담임목사 예산을 올리는 대신 사회 선교 단체들을 지원해 달라고 교회에 요청했다. 담임목사 '월급'(홍 목사는 사례비를 월급이라고 표현했다. - 기자 주) 올리는 대신 교역자들 월급을 올려 달라고 했다. 심방 시 1만 원이 넘는 식사는 대접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교회 창립 110주년을 맞아 인근 광양시에 사회 선교사를 파송, 다문화 가정과 이주 노동자를 돕기로 했다. 홍 목사는 "제법 큰 교회에 왔으니 교회 체질을 변화시키고 싶다. 사회 선교 단체를 돕고, 사회 아픔을 치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밖에서 볼 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작은 일부터 변화를 주었다. 보통 담임목사가 바뀌면 부교역자도 교체되는데, 홍 목사는 기존에 있던 부교역자들을 끌어안았다. 올해 2월 12일 있었던 위임식은 대형 현수막과 꽃 장식 없이 검소하게 진행했다. 상찬으로 이어지는 격려사 대신 교인들 목소리로 식순을 채웠다. 일명 '목소리 없는 사람의 목소리 듣기' 프로그램을 통해, 교인들에게 청지기(담임목사)에게 바라는 이야기를 하게 했다. 서리집사로 은퇴한 80대 할아버지, 최근에 등록한 교인, 여자 청년 등 4명이 돌아가며 발표했다. 돈도 안 들이고, 교인이 주가 되는 위임식에 교인들은 감격스러워했다.

부임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교회는 크게 두 가지 변화를 겪었다. 교회를 찾지 않던 30~40대가 부쩍 늘어났다. 성서 무오설에 사로잡혀 있던 교인은 이제는 말씀을 읽을 때 역사적 배경과 맥락 등을 먼저 고려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이 왜 다른지, 사복음서가 왜 차이를 보이는지 고민한다. 홍 목사는 "교인들이 성경을 보며 '이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지금까지 배운 것에서 탈해야 한다. 탈학습을 해야 복음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홍인식 목사와의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마지막 질문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개선해야 할 지점에 대해 물었다. 홍 목사는 교리에서 벗어나고 신학은 사회학·인문학 등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했다.

"개신교가 500주년을 맞았다. 1517년 종교개혁은 어떻게 보면 교회 제도에서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개신교는 니케아신조라든지 교리를 가톨릭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종교개혁 500주년은 교리로부터의 개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한국교회는 서양철학을 기반으로 한 신학에 머물러 있는데, 해방신학처럼 사회학·인문학과 대화를 나누는 신학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