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인양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올라온 세월호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이 참사 당시를 떠올리며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틀이면 올라올 것을 3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선체 일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73일 만이다. 사진 출처 해양수산부

저는 2015년 3월 28일 청와대 앞에서 다윤이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2014년 11월 11일 세월호 승객 수색이 공식 종결된 이후, 다윤이 부모님은 2015년 2월부터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피켓을 만들어 청와대 앞에서 들고 계셨습니다. 당시 수색 종료에 동의하면 금방 인양해 줄 것처럼 이야기하던 정부는 아무런 답이 없었지요. 다윤이 부모님은 바닷속 배 안에 딸을 버려두고 아무 대책이 없었던 터라, 이 나라와 시민을 향해 인양을 통해 아이를 찾아 달라고 7개월간 피켓을 드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기적적인 정부의 인양 발표가 있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인양을 위해 끈질기게 싸워 오셨습니다. 다윤이 부모님이 안산, 청운동, 홍대에서 피케팅하실 때, 은화 부모님은 세월호를 제대로 인양해야 한다고 전국에 호소하고 다니셨습니다. 림프 종양, 허리디스크, 고혈압, 당뇨 등 셀 수 없는 지병으로 이분들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버티며 하루하루 살아 내셨습니다. 정부는 그 기간에 선체인양TF를 구성하고 인양 업체를 선정했습니다. 당시 인양을 완료하기로 예정된 시점은 2016년 7월이었습니다.

2015년 7월, 피케팅을 하던 다윤이 부모님 모습. 뉴스앤조이 이은혜

어느 순간부터 다윤이 부모님과 은화 부모님이 팽목항에 계시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다윤이 부모님과 은화 부모님을 비롯해 여섯 명 정도가 인적이 드문 팽목항을 지켰습니다. 부모님들은 미안해하시면서도 팽목항에 자주 내려와 달라고 요청하셨지요. 이야기를 듣는 게 제가 할 일의 전부였지만,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누군가가 팽목항에 오는 것을 반기셨습니다.

여름 팽목항에 갈 때마다 다윤이 어머니와 은화 어머니는 날씨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양 작업을 위해서는 보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소조기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지요.

세월호 인양을 위한 첫 관문은 '선수 들기'였습니다. 원래 5월에 끝났어야 할 선수 들기는 8월이 다 되어서야 완료됐습니다. 미수습자 가족의 피 말리는 기다림 끝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가 처음으로 움직인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관문으로는 선미 굴착, 굴착 후 세월호 아래 생긴 공간에 선체를 들어 올리기 위해 리프팅빔을 넣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선미 작업은 예상보다 난항을 겪었습니다. 선미 아래 흙이 예상보다 단단했고 굴착을 할 때마다 조류에 의해 토사들이 쓸려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수 들기 이후 인양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리라 생각했던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었지요. 그러나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간담회를 열어 인양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상황을 알리면서 조속하고 유실 없는 인양을 위해 함께 힘을 보태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선미 굴착 작업과 리프팅빔 설치가 완료되기까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016년 성탄절, 세월호 아래 리프팅빔을 설치하는 작업이 끝났습니다. 비로소 인양 준비가 마무리된 것이지요. 그때 다윤이 어머니는 제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빔 설치 완료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팽목항을 지켰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는 오는 봄 본격적인 인양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팽목항에 갈 때마다 다윤이 어머니와 은화 어머니는 3월에 중국에서 잭킹바지선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특히 21일 전후에 오는 첫 소조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때 배가 올라와야 희망적이라며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소조기를 한 번 놓치면 또 보름을 기다려야 했던 지난날의 아픔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겠지요.

저는 선체 인양에 대해 문외한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가족들께 수없이 들어오면서 유실물 방지 장치, 잭킹바지선, 소조기, 리프팅빔 등의 용어를 알게 됐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가족들 말을 듣기만 했는데 인양 작업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됐지요. 가족들 마음속에서는 벌써 수백 번, 수천 번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한 번에 올라올 수 있느냐며 허무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박근혜가 탄핵되자마자 세월호 인양이 이뤄지니 분노하는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우리의 철저한 무관심이 이렇게 갑자기 배가 들어 올려졌다고 느끼게 하는 이유일 겁니다. 세월호는 갑자기, 쉽게 올라온 것이 아닙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오로지 아이를 찾겠다는 의지 하나로 싸워 온 결과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세월호가 올라오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월호는 아직 완전히 인양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부모의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앞으로 보름, 또는 그 이후 긴 시간 미수습자를 찾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얼마나 아파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저 배가 목포신항으로 들어오고 완전히 올라오기까지, 한 발짝씩 나아가는 상황에 마음을 보탤 뿐입니다.

주님, 세월호 속 아홉 명과 함께하소서.
바다 위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미수습자 가족들 곁에 함께하소서.

전이루 /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하나님의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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