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꺼내어진, 누워 있는 세월호 보도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그림 배재희

생각만큼 그렇게 그로테스크하지는 않았습니다. 해수에 쓸리고 뭉개져 훼손될 대로 훼손된 철골을 생각했는데, 의외로 형체도 그대로였고 침몰 시 모습에 수심의 개펄만 덮어썼을 뿐입니다. 어제 세월호는 힘없이 누워버린 자세 그대로 힘없고 슬픈 유해로 낯을 드러냈습니다.

그 시절, 그러니까 수색 작업과 유가족들의 비탄으로 매일매일이 아비규환이던 3년 전 이맘때. 생방송 뉴스 한 꼭지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바다에서 건져진 핸드폰에서 찾아 낸, 고인이 된 소녀가 올린 최후의 기도. 너무도 씩씩하고 반듯했던 목소리.

"하나님. 우리 반 애들 잘 있겠죠. 선상의 아이들이 무척 걱정됩니다. 부디 한명도 빠짐없이 안전하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침몰의 순간에 소녀는 벗들을 걱정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 예수님의 이름이 읊어지는 가운데, 여객선은 짙은 수심(水深)에 넘어져, 다시 일어서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뉴스는 껐으나, 충격적인 그 화면과 목소리는 뇌리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뉴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저는 그날 정면으로 목격한 진실의 토막 풍경을 떠올립니다. 침몰의 순간, 많은 아이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가라앉았습니다. 예수님. 만유의 창조자이자, 만사의 설계자이신, 하나님의 현현이요, 외아들이시요, 거룩한 인격이신 분. 그 이름이 외쳐짐에도 제풀에 무너진 세월호의 중량은 다시 들어 올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꿈꾸었고, 기적에 매달렸으나, 침몰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중고등부 학생 7명을 잃은 안산의 내 친구네 교회 목사님은 몇 달간 설교를 중단하였습니다. 곡기(穀氣)를 끊으신 거였지요.

어쩌면 오늘 남도의 바다에서 꺼내어진 육중한 저 구조물은 우리 삶의 진면목 한 켠을 꺼내어 보여 주는 듯합니다. 생각보다 끔찍하게 부서져 버려서 우리를 경악시키지도 않고, 자신감으로 그 많은 화물을 과적하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지도 않은.

드물지만 또 꽤나 빈번한 이 세계와 인생의 비극들을 찬찬히 무심하고 심드렁하게 보여 주는 듯한. 그저 세월호는 가엽고 하찮게 나뒹구는 인생의 슬픔을 고스란히 음각해 놓은 비석 같습니다. 저는 그 슬픔이 더 괴롭습니다. 삼위 하나님. 당신은 저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십니까. 저는 무척 서럽습니다.

엔도 슈사쿠 소설 <침묵>의 한 문장이 마음에 부유합니다. "주여. 인생은 이리도 슬픈데, 저 바다가 너무 파랗습니다."

세월호가 누워 있던 내 고향 남도의 앞바다는 요 몇일 푸르스름함에 우유를 섞은 듯 멀건 옥빛입니다. 누가 봐도 어여쁜 빛깔. 그러나 나는 그 어여쁨이 더 서러워 울음이 잦아들질 않습니다.

배재희 / 현직 특수교사이며 남양주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온생명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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