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세월호가 3년 만에 떠올랐다. 세월호 가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다. 미수습자를 수습하고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인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산, 진도에 있던 세월호 가족들이 사고 해역 인근에서 인양 작업을 지켜봤다. 3월 23일 새벽, 녹슨 세월호 선체 일부가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감격과 원망, 슬픔과 그리움을 느꼈다.

같은 날,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임성빈 총장) 총학생회는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간담회를 마련했다. 사경회 선택 특강 시간에 '사회적 영성'이라는 주제로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 창현 엄마 최순화 씨를 강사로 초청했다.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 1층 강당에는 학부생 200여 명이 모였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는 시점이라, 학생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간담회는 사회자가 질문하면 유가족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손은실 교수(역사신학)가 사회를 봤다. 거의 울다시피 했던 시작 기도를 겨우 마친 손 교수는, 4월 16일 참사부터 지금까지 유가족들이 거쳐 온 몇몇 사건을 되짚으며 질문을 던졌다.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질문에 따라 지난 3년간의 기억과 감정을 담담하게 술회했다.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 봤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는 시점이라, 학생들은 간담회에 큰 관심을 보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정부·언론은
거짓을 말했다

- 2014년 4월 16일 참사 당시, 세월호 가족들은 국가 실종 사태를 처절하게 경험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순화 / 음… 2014년 4월 16일이 딱 오늘 같아요. 지금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니까요. 그날은 사고였죠.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모두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 낮이었고 우리나라는 조선 기술이 최고라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팽목항에 내려갔을 때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었어요. 학부모 가족들에게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제대로 알려 주는 공무원 하나 없었죠. 공영방송에서 '잠수사 500명, 육해공군 전력 투입'이라는 문구를 봤어요. 하지만 우리들이 자비로 마련한 배를 타고 사고 해역에 갔을 때,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걸 목격했어요. 정부와 언론이 거짓말을 했던 것이죠. 언론은 거짓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어요. 마땅히 구조해야 할 국가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어요.

- 지금 인양되는 과정을 보면서 한 서울대 법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어요. "박근혜가 탄핵되니 세월호가 올라온다. 이전에도 인양이 여러 번 가능했는데, 관료들이 대통령 눈치 보느라 미룬 것이다."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정부와 오랫동안 싸워 왔습니다. 그 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박은희 / 정부는 2014년 11월 미수습자 수습을 포기하고 인양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2015년 봄 갑자기 인양을 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보궐선거를 앞둘 때였죠.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인양 과정은 가족들에게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어요. 가족들이 사고 해역 인근 동거차도에서 숙식을 하며 지켜볼 정도였죠.

이번에 인양이 된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은 걱정했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하루빨리 인양이 이뤄져야 하는 것 맞지만 왜 하필 이 타이밍일까, 유가족들은 걱정했어요.

다행히 인양이 안정되게 이뤄지고 있어요. 잭킹바지선에 고정 작업이 끝나면 반잠수식 선박으로 옮겨져요. 이후 세월호 선체는 목포신항으로 이동할 거예요.

가족들이 2014년 전국을 돌며 서명을 받으러 다녔어요. 국민들 도움으로 특별법을 만들고 특조위를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시행령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없었어요. 조사 자료를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고요. 특히 해경이 보유하고 있는 참사 당시 기록은 중요한 자료예요. 특조위에 공개해야 하는데 해경은 안보를 이유로 보여 주지 않았죠.

특조위가 구성되고 나서 세 번의 청문회가 열렸어요. 청문회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마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것이죠. 보통 청문회는 국회에서 열리는데 세월호 청문회는 여당 반대로 다른 곳에서 열어야 했어요.

청문회에서 500명 잠수사 투입이 거짓이라는 게 드러났어요. 현장에 와서 구조 작업을 한 건 하루에 10명이 채 되지 않았어요. 처음에 바지선들이 들어와서 도우려 했지만 해경이 막았어요. 의혹이 너무 많아요. 왜 안개 속에서 유일하게 세월호가 출항했는지, 왜 국정원이 세월호를 관리했는지, 왜 조사받아야 할 선장이 해경 직원 집에서 묵었는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의문점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어요. 이를 밝히려면 정부가 자료를 제대로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체를 정밀 조사해야 합니다.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느낀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아이들의 기억 교실 보존 문제로 갈등이 있었죠. 지금은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박은희 / 작년에 단원고를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지역 주민 일부와 단원고 학부모 일부가 주도해서 교육 환경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저희에게 나가라고 했어요. 저희들도 학생들에게 미안했어요.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학교가 되길 원하고, 아이들이 어느 학교 학생보다 교육을 잘 받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길 바랐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참사가 완전히 해결되고, 참사로 사회가 변화될 때까지는 현장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빈 자리를 통해 그 사람의 존재를 느끼듯이, 빈 교실을 통해 아이들의 존재를 느끼고, 교실이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땅에 어른들이 빈 교실을 보고 부끄러워하길 바랐습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반성하기를 바랐고요.

지금은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교실을 복원해 놓았어요. 현장을 남겨서 이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이 보다 나은 교육을 누리길 원했어요. 단원고 인근에 416안전시민공원 설치를 구상하고 있어요. 공원이 조성되면 기억 교실도 그곳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 탄핵이 인용됐을 때, 현장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봤어요. 이번 선고에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아요.

최순화 / 결과적으로 8대 0의 결과가 나왔어요. 국민이 승리를 이룬 건 저희 세월호 가족이 앞장서서 싸웠기 때문이라고 믿어요.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선고문을 읽을 때, 처음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와 불안했는데, 나중에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언이 저희에게 기쁨을 주었어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의 행적이 탄핵 인용 사유가 되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쉬웠어요. 압수 수색을 시도했을 때 대통령의 7시간 기록을 확보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실망은 그날 하루뿐이었어요. 가족들은 '앞으로 더 싸우는 거구나' 생각했죠. 20번의 촛불 집회를 통해 보여 준 하늘의 뜻. 이것을 이끈 분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요.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울분을 가만히 바라만 보시지 않는구나, 거대한 흐름을 이끌어 내어 탄핵 정국을 만들고 우리 사회 안에 있는 많은 문제를 모두 드러낸 분이 하나님이구나, 생각했어요. 지금은 아쉽지만 앞으로 계속 싸워 나간다면 언젠가는 박근혜 7시간도 밝혀낼 겁니다.

거리에 있는
하나님을 보다

- 세월호 참사로 신앙의 변화를 경험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신앙의 변화를 이야기해 주세요.

최순화 / 참사가 없었더라면, 교회 안에서 봉사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보다, 자기들끼리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겠죠. 어떤 만족을 찾으려고 무지 애를 썼을 것 같습니다.

교회가, 유명 목사가, 유가족들에게 뱉었던 뼈아픈 망언들을 많이 들었어요. 장례 치렀으니까, 천국 갔으니까, 예전처럼 돌아와서 신앙생활하라고, 나라 경제를 위해 더 이상 그렇게 나서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는 분도 있었어요.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 사는 삶이 신앙의 참모습이 아니에요. 그런 삶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요. 50년 넘게 신앙생활했지만, 그것이 이 일을 이겨 낼 수 있는 어떤 힘도 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픔만 주었어요.

예수님은 가장 아픈 사람, 가장 낮은 사람과 함께했습니다.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의문이 많아요. 해결하지 못한 게 많지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은 믿어요. 하나님께서 제게 보내 주신 사람을 통해, 제가 울 때 함께 울고 계시고 가장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껴요.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는 참사를 겪고 나서, 거리에 자신과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박은희 / 저는 누군가를 돕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 신학을 배웠어요.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그러다가 오히려 제가 피해 당사자가 되었죠.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강도당한 이웃을 돕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피를 철철 흘리고 강도 만난 이웃이 되어 거리에 나앉게 되니, 소위 멘붕이 왔었어요.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지.'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이를 극복한다고 생각했던 게 '교회에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다'였어요. 그렇게 저를 위로했죠. 나중에 내가 얼마나 잘못된 신앙관을 스스로에게 심어 왔는지 깨달았었죠. 누군가에게 계속 좋게 보이고 착하게 보이면서 스스로 만족을 느끼며 살았던 겁니다. 교만했던 거죠.

그래도 교회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줄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대형 교회 목사가 "하나님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 "아이들을 희생시켰다"고 말하며 저희에게 칼을 꽂았어요. 하나님은 죽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의 목숨을 대신 가져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유가족이 되고 보니까 우리들처럼 쓰러지고 피 흘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국회, 대기업, 청와대 앞에서 이분들은 10년씩 노숙해요. 왜 그럴까요. 자신들의 말을 아무도 들어 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길거리에 나오고, 나중에는 높은 곳에 오르고, 단식하고 머리를 깎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절박하게 벼랑 끝으로 쫓겨나고 있을 때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늘 즐겁고 흥겹고 아름다고 예쁜 것만 생각하고 살아온 건 아니었는지.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비웃기만 했어요. 지금 교회가 그 모습과 다르지 않아요. 우리는 거룩하니까, 품위를 찾아볼 수 없는 저 거친 언어, 거친 복장, 거친 삶에 우리가 왜 가까이 가야 하느냐며 살아온 것이죠.

참사 이후 기도가 나오지 않았어요. 성경을 읽다가 그 안에 예수님 모습이 우리와 너무 똑같게 느껴졌어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보여 준 사랑을 느끼며, 저희는 다시 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한국교회가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가 이렇게 썩어 문드러졌으면 교회는 회개해야 해요. 지금 한국교회는 버려지기 일부 직전이에요. 사회가 엉망이 됐으면 책임을 느껴야 하는데, 책임을 느끼지 않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부디 제대로 된 교회를 이뤘으면 좋겠어요.

안산 합동 분향소에 열심히 찾아와 저희를 위로하는 교회는 모두 작은 교회였어요. 저희가 보기에는 그 교회가 덩치 큰 교회보다 훨씬 커 보였어요. 사회와 고립되고 누구처럼 구중궁궐 안에서 나 자신만 내 주변 언저리만 가꾸는 데 바쁘지 말고, 더 깊숙이 사회에 관심을 갖는 영성을 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전 신앙생활이 너무 부끄러워요.

가족들은 세월호를 끝까지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한 세월호 가족분께서는, 가장 큰 위로를 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고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에게 위로가 된 사람들은 누구였어요.

박은희 / 예수님 말이 정답 같아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슬픈 자에게 어쭙잖은 위로의 말을 했던 게 후회됐어요. 이번 일을 겪고 질문이 많아졌어요. 왜 선한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해야 했는지, 왜 고통받는 이 세상에 우리는 태어났는지, 왜 저 악을 하나님은 처단하지 않으시는지, 질문이 너무 많아요. 이런 모습을 지적하지 않고 같이 질문하는 분들을 만나면 반가웠습니다. 여러분은 질문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안산 합동 분향소 목요 기도회가 2015년 1월 첫 주, 주일 예배가 2015년 1월 마지막 주에 시작했어요. 장신대 하나님의선교라는 친구들이 만들어 주었어요. 매주 수업을 마치고 2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2년 넘게 지금까지 기도회를 맡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지금 이 시간 박수 쳤으면 좋겠어요. 꾸준히 변함없이 함께하는 분들 보면서 저희가 힘을 얻습니다.

최순화 /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700여 시민단체가 모였어요. 우리 가족들을 전적으로 도와주고 집회도 이끌어 주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놀라웠어요. 우리는 내 자녀의 억울함 때문에 거리로 나왔는데, 그들은 순전히 우리들 목소리를 대변해 주고 있었죠.

팽목항에서도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이름도 빛도 없이 마음 하나로 함께해 준 분이에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피켓을 들고 서명을 받고 리본을 만들고… 고마운 분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감사한 건, 친구가 한 명 생겼어요. 제가 조금 까칠하고 친근한 편이 아닌데, 이런 부분을 모두 받아 주고 수용해 주는 친구예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것 같아요. 그 친구를 통해 큰 힘을 얻어요.

세월호 가족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잊지 않고 있다고 표시해 주는 것이에요. 리본을 달고 있는 분들이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도 더 많은 분이 리본을 달고 '잊지 않고 있다'는 표시를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입고 있는 옷에 'REBORN'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요. 부활을 의미하고 있죠. 오는 부활절은 세월호 3주기와 같은 날이에요. 그때까지 미수습자들도 모두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세월호를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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