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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예배 모습은 어떠했을까

[서평] 김정 <초대교회 예배사>(CLC)

크리스찬북뉴스   기사승인 2017.03.24  17: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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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예배사> / 김정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 펴냄 / 256쪽 / 1만 2,000원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산을 해 본다면 총 8번 정도 주일예배를 빠졌던 것 같다.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군 복무를 하는 중에 천리 행군을 하면서 8번 빠졌다. 물론 천리 행군 중에도 중대 예배를 드리기는 했다. 그렇게 치면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더욱이 신학교에서 예배학을 공부하고, 그리고 지금은 예배를 인도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목회자로서 약 20년 이상 예배를 위해 살아왔고, 심방 예배까지 포함한다면 엄청난 횟수의 예배를 드리고 인도해 왔다. 즉 예배에 익숙할 만큼 익숙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배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전 최초의 교회에서는 어떻게 예배했을까', '구약 이스라엘의 제사(예배)는 어떠했을까' 궁금증이 몰려왔다. 그래서 본서를 잡게 되었다. 예배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과연 오늘날 예배당에서 하는 예배가 성도들의 신앙 성장에 가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예배는 무슨 목적으로 하는 것인가' 등의 의문에 있었다. 물론 원론주의자들은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그것이 궁극적 목적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교회 예배에 뭔가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초대교회 예배

'초대교회(고대 교회)의 예배 모습은 어떠했을까', '초대교회 예배는 어떤 것이 중심이 되었을까'. 정말 궁금했다. 근대 이후의 교회 예배에 대한 책은 다수 있지만 초대교회 예배에 관한 자료들은 적어도 한국에는 많지 않다. 그래서 필자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본서를 펼쳤다. 다행히 필자가 원하는 부분의 80% 이상을 해소해 줬다.

<초대교회 예배사>는 <디다케>, <디다스칼리아>, <변증서>, <사도전승> 등 고대 자료를 근거로 고대 교회 예배 상황, 동방과 서방 교회 예전과 그 차이점, 그리고 신학적 의미를 풀어 준다. 어떻게 보면 매우 무겁고 딱딱한 주제일 수 있었는데, 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를 위해 글을 썼는지 부연 설명과 복잡한 문제를 빼고 핵심만 전달하고 있어서 전혀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았다.

1장은 '예배의 의식과 시간'이지만 의식보다는 시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고대 기독교가 왜 유대 전통인 안식일(7일)에 집착하지 않고, 주일(일요일, 8일)을 중심으로 예배하게 됐는지, 교회력의 탄생 이유 등을 역사적 사건(자료)에 기반해 설명한다. 2장은 '예배의 의식과 공간'이다. 고대 교회는 예배의 '공간'을 어떻게 형성했고, 고대 교회 공간의 배치들을 통해 공간이 갖는 상징과 그 의미와 차이를 설명해 간다. 본서의 본론에 해당하는 3장 '세례의 기원과 발전', 4장 '성찬의 기원과 발전'은 저자가 지금 현대 교회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담겨져 있다고 여겨졌다. 필자도 이 부분의 회복이 오늘날 교회 회복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변화

예배의 특징적 변화는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고대 교회의 예배로, 고대 교회 예배의 특징은 '박해'다. 둘째는 중세 교회의 예배로, 중세 교회 예배 특징은 제도화다. 마지막으로는 개신교회의 예배로, 지금의 개신교회 예배 특징은 '설교 중심'이다. 이러한 변화와 특징을 취하게 된 이유는 '환경과 상황'의 변화에 있다. 예배 형식과 중심이 변화된 것이다.

각 시대마다 예배의 강조점과 중심이 달랐다는 것은 대부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회 모습은, 말씀에서 다시 제도와 형식화로 돌아가 버린 듯하다. 말씀이 중심이라고 강단에서 외치고 강조되고 있지만, 대부분 강조되고 있는 말씀은 성경을 지칭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설교'를 지칭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같은 주, 같은 믿음, 같은 세례

익히 알고 있듯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예배 형식과 순서, 강조점은 시대별로 특징이 다르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에서도 각각의 문화와 환경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즉, 예배는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예배의 다양성을 획일화하려는 태도가 중세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배 획일화는 통일성과 편의성을 제공했지만, 그로 인해 예배는 제도화와 형식화의 길을 걷게 됐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다수 성도를 상대로 설교(가르침과 선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성도의 현실적 삶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힘들게 되었고, 말씀 내용이 아닌 예배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 신앙의 질적 저하를 필연적으로 가져왔다. 결국 짧은 예배 시간에 성도들의 신앙심을 고취하려고 참된 가르침보다는 정서적 감흥을 주기 위해 온갖 장치를 고안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에는 크게는 동방과 서방 교회, 작게는 각 교회마다 예배 형식과 방법이 달랐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에 공인되면서 잘못된 정치적 결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대형 교회들이 탄생해 교회 일치성은 정치와 제도적 일치의 정통성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즉, 복음을 지키고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고 보수하기 위해 신학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 교회 이전 교회에는 다양성만 있고 통일성(일치성)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고대 교회는 예배의 다양성을 보장하면서 예배의 일치성을 놀랍게 유지시키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밝히고 있듯이 "같은 주, 같은 믿음, 같은 세례"(엡 4:5)로 일치되는 것이었다.

성도에게 고함

필자는 신학이나 예배에 관한 책을 목회자만 읽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성도가 신학교에 가서 배울 수는 없을지라도 신학책을 읽고 공부할 것을 적극 권고한다. '국가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듯이, 필자는 교회의 수준 또한 '성직자의 수준'이 아니라 '성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성직자의 수준이 교회의 수준을 결정짓는 일은 중세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성도가 성직자에게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성직자가 성도의 신앙생활을 돕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고, 지배하고, 조종하기 시작한 것이다(판단과 조정이 부분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물론 이는 개신교인들이 싫어하는 '계몽주의'일 수 있다. 일반 백성이 계몽되었을 때 중세 봉건제도를 벗어나 오늘날 같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에게 신학적 계몽(?)이 일어나야 한국교회가 한발 더 성경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계몽주의의 부작용처럼, 성도의 신학적 계몽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런 부작용조차 성경적인 신앙 발전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교회 역사(교리 논쟁)는 증명해 주고 있다.

<초대교회 예배사>라는 제목에 놀라지 마라. 전혀 어려운 책이 아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핵심만을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책이다. 필자가 이 책을 한국교회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에게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고대 기독교가 세례와 성찬을 통해 어떻게 신앙 중심을 잡을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세례와 성찬이 형식에 불과할 정도로 쇠약해 있다. 본서를 통해 '세례'와 '성찬'의 참된 의미 회복과 고대 기독교인이 어떻게 예배했고, 그 예배의 본질과 중심이 어떠했는지 살피면서 예배를 점검하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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