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외쳐 댔지 핵보다는 해 / 그들에게 전해 우리는 핵보다는 해 / 핵보다는 해 더욱더 사랑해 / 핵보다는 바람 더욱더 사랑해 / 핵보다는 당신 더욱더 사랑해 / 핵이 없는 미래 더욱더 사랑해" - 그린그레이 '핵보다는 해' 중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주기를 기억하는 행사가 진행된 광화문광장. 한 가수의 랩이 울려 퍼졌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탈핵'이 적힌 손팻말을 앞뒤로 흔들며 '핵보다는 해'라는 가사를 따라 했다. 곡을 마친 래퍼는 자신을 "환경 래퍼, 그린그레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랩에는 '핵', '지구', '안전', '핵 마피아' 등 환경 단체가 외치는 구호에서 들어 볼 법한 단어들이 나왔다. 힙합 신에는 사회문제를 주제로 하는 '컨셔스 랩(Conscious Rap)'이 있다. 그러나 컨셔스 랩 중에도 환경문제를 소재로 한 랩은 드물다. 특히 탈핵(脫核)을 말하는 랩은 전무하다.

그린그레이를 3월 14일 서울 건대입구역에서 만나, '환경 랩'을 하는 이유를 들었다. 그린그레이는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환경 래퍼인 '그린그레이'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환경 중요성 알리다
래퍼의 길로
환경·사회문제 가사로

- '그린그레이'는 무슨 뜻인가.

그린과 그레이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색깔이다. 환경을 주제로 랩을 해 보자고 생각하면서,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고민했다. 그때 두 색이 떠올랐다. 그린은 자연을, 그레이는 도시 개발을 의미하는 색깔이다. 개발이 진행되는 도시에서, 자연을 지켜 나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었다. 그래도 명색이 환경 래퍼니까 녹색('그린'그레이)을 앞에 두었다.

- 환경을 주제로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중학교 때부터 힙합을 들었다. '중2병'을 힙합으로 극복했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중1인 1999년에 처음으로 힙합 붐이 일었다. 당시 드렁큰타이거나 허니패밀리가 나와 랩을 선보였다. 듣기만 하다가 대학 다니면서부터 가사를 썼다. 그때는 '소울브릿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환경보다는 일상에 일어나는 일을 주제로 삼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2011년부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2년 일했는데, 이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내가 하는 일은 환경 동아리를 하는 중고등학생, 대학생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거였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스펙만을 위해 오는 학생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것저것 생각해 보다가 랩 가사를 써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환경을 주제로 가사를 쓰니, 나도 재밌고 학생들도 재밌어 하더라. 결국 이쪽으로 계속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심 끝에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 지금까지 정식 발매된 음원이 3곡이다.

'핵보다는 해', '바람이 되고 싶어', '내복'이다. '핵보다 해'는 내가 가장 많이 부르는 대중적인 노래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2012년 사고 1주기 때, 행사에 모인 사람들이 '핵보다는 해'라는 구호를 외쳤다. 구호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핵보다는 해'를 곡 제목과 후크로 사용했다.

탈핵을 주제로 랩을 쓰게 된 이유는 이렇다. 당시 방사능에 노출된 일본 주민들이 행사에 와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 눈에는 심각한 문제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다"고 말했다. 위험을 망각하고 있었다. 이 일은 언제든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잊지 말자고 가사를 썼다. 기사를 쓸 때 후쿠시마 문제를 다룬 뉴스나 다큐멘터리영화를 참고했다.

'바람이 되고 싶어'는 미세 먼지가 주제다. '핵보다는 해' 가사를 보면, "핵보다는 바람"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 후속곡 느낌으로 써 봤다. '바람이 되고 싶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미세 먼지가 있는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뜻도 있고, 당시 내가 마음이 답답해서 이런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뜻도 있었다.

'내복'은 에너지 절약 문제를 이야기하는 곡이다. 흔히 정부가 겨울만 되면 내복 입자는 말을 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내복 착용에 거부감이 있다. 내복은 노인이 입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복을 주제로 가사를 썼다. 1절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내복의 심정을, 2절은 멋을 잔뜩 부린 주인공이 추위 때문에 다시 내복을 입는 내용이다.

 

그는 주로 환경을 주제로 랩한다. 사람들은 '핵보다는 해'를 가장 좋아한다. 사진 제공 그린그레이

- 발매되지 않은 랩 중 옥시 가습기 문제를 다룬 '옥시토신'이라는 곡도 있던데.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일어났는데, 지난해 많이 이슈가 됐다. 피해자 가족 중 한 분이 가습기 살균제를 주제로 랩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 왔다. 그분께 제안을 받고 인터넷 뉴스 밑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마음이 아팠다. "돈 받으려고 쇼하는 거 아니냐", "자기네들이 가습기 써 놓고 왜 지금 와서 이러느냐"는 댓글이 있었다. 만약 피해자나 유가족이 보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댓글을 보면서 감정이입이 됐고, 옥시의 행태를 비판하는 '옥시토신'를 썼다.

관심 없거나 반응 좋거나
핵발전소 전기 공급받는
수도권 사람들 책임감 갖길
'환경 래퍼' 많아졌으면

- 현장에서 '환경 래퍼'라고 소개하면,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일단 반응은 두 가지다. 환경에 관심 없는 사람은 무반응이다. 내 랩을 그저 그런 곡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환경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주변 래퍼들에게 같이 콜라보레이션 하자고 해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꽤 된다. 반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엄청 좋아한다. 내 정체성 때문인지 탈핵이나 환경 단체 행사에 종종 간다. 거기서 수녀님들을 종종 뵙는데, 반응이 좋다. 단순한 랩은 직접 따라 불러 주시기도 한다.

- 환경에 무관심한 리스너가 대부분일 텐데,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나.

그게 최근 나의 고민이다. 사람들은 환경에 관심이 없으니 내 랩을 접할 방법이 없다. 일단은 가사를 쓸 때 직접적인 환경문제 담론을 꺼내지 않고, 우리 일상과 연결돼 있는 환경문제를 다뤄 볼 생각이다. 연인과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보낸 자동차 없는 하루를 이야기한다든지. 버스 정류장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난 내용을 쓰면서 버스 타기 운동을 언급하는 식으로 써 볼까 한다.

또 하나는 랩 스킬이다. 리스너들이 원하는 랩 스킬을 구사하면 더 많은 사람이 들을 텐데, 아직까지는 그러지 못하는 거 같다.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발음이 분명해야 하는데 최근 힙합 신은 뭉개는 식으로 많이들 표현한다. 그들이 보기에 내 랩 스킬은 올드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랩 스킬을 구사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합의점을 찾아야 할 거 같다.

그린그레이는 환경 단체에서 일하면서 탈핵에 관심이 많아졌다. 사진 제공 그린그레이

- 거주지가 대전이다. 최근 대전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7월부터 핵 재처리 실험을 한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핵과 관련한 실험을 하기 위해 전국 핵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이 모이는 곳이다. 직원들은 대전 시민과 환경 단체에 "안전하다", "핵폐기물을 완벽하게 관리한다"라고 말하지만, 아니다. 직원이 착용한 작업복을 세탁한 물을 일반 하수도로 배출하고, 직원의 장갑을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린 사실이 드러났다. 핵폐기물을 매립한 사실도 2월 초에 밝혀졌다. 방사능이 기준치 미달이라고 말하지만 문제가 있다.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수요일마다 집회를 연다.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대전 시민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고, 한국원자력연구원 앞, 대전 시청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한다. 그러나 정작 대전 시민은 위험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지인들에게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행태를 설명해도 "설마 큰일 일어나겠어"라고 반응한다.

대전 시민도 모르니 대전 주변에 있는 세종시, 청주는 물론 수도권에 있는 사람이 알 수 있겠나. 나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지방에 있는 핵발전소 문제에 의식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해 줬으면 좋겠다. 사실 핵발전소는 사고가 발생하면, 1차적으로 그 지역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핵발전소가 세워져 있는 경주나 부산, 울산 지역이 그렇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있는 대전이 그렇다. 왜 지방에 핵발전소가 있나.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있는 거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해 주었으면 한다.

- 현재 만들고 있는 곡이 있나.

가제이긴 한데 핵 마피아들을 디스하는 '핵 그만해'를 준비 중이다. 그린그레이로 4년 정도 활동했는데, 현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게 몇 있다. 그중 하나가 핵 마피아다. 한국에는 핵발전소를 둘러싼 문제들이 계속 발생한다. 그런데 핵 마피아들은 안전하다고만 한다. 대통령은 문제가 있으면 탄핵이라도 하지만, 핵발전소는 그럴 수 없다. 한 번 터지면 수습이 불가능한데 왜 핵 마피아들이 안전하다고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최근에 원자력연구원 앞에서 공연을 했다. 랩을 하는데 원자력연구원 직원이 나와서 보고 있었다. 직원 눈에는 우리가 "핵발전소는 안전한데 괜히 유난 떠는 사람들"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하면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현실이 느껴졌다. 그때 느낀 감정을 가사로 쓰고 있다.

그는 '환경' 하면 '그린그레이'가 생각났으면 좋겠다. 또 자기뿐 아니라 다른 래퍼들도 환경을 주제로 랩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어떤 래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나.

나는 가리온제리케이허클베리피를 리스펙트한다. 세 래퍼의 공통점은 소신 있게 본인의 길을 가되 허세 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해서 좋다. 이런 점을 본받고 싶다. 특히 제리케이는 내 롤모델이다. 한국을 포함해 해외에도 랩으로 환경을 이야기하는 래퍼는 드물다. 제리케이 곡 중 '마왕'이라는 노래가 있다. 처음 들었을 때 랩 스킬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리스너가 좋아하는 랩 스킬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나도 그런 곡을 만들고 싶다.

'환경' 하면 '그린그레이'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랩 스킬이 더 좋아져야겠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나 외에도 환경을 이야기하는 래퍼가 많아지면 좋겠다. 누군가는 환경 래퍼가 많아지면,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줄어든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사람들이 관심만 갖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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