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갓페미' 행사에 참여한 한 사람이 '하나님, 당신도 페미니스트이신가요?'라는 후기를 썼다. 그거를 보는데 마음이 찡하더라. 하나님 역시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계시고, 당신이 지으신 여성들이 이렇게 대우받기를 원하지 않으셨겠다는 생각 때문에 나 스스로도 위로를 받았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IVF(한국기독학생회) 서서울지방회에서 페미니즘 토크 '갓페미'를 기획한 장미빛 간사가 말했다. 3월 9일 열린 갓페미는 서서울지방회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과 타 지방회 학생이 올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지금까지 했던 연합 행사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여성 멤버들 반응이 좋았다. 갓페미 행사를 기념하며 만든 엽서와 스티커 100세트도 모두 팔렸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교회와 선교 단체에서 겪은 경험담을 쉴 새 없이 털어놨고, 비슷한 경험을 한 서로를 응원했다. 행사를 마무리하면서는 이런 자리가 또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그날의 여운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소셜 미디어에 갓페미를 해시태그로 단 사진과 후기들이 올라왔다.

갓페미가 끝난 지 일주일 되던 3월 15일, 그때의 여운을 가지고 행사를 기획한 IVF 서서울지방회 장미빛(성공회대 담당)·전해운(이화여대·추계예대 담당)·표선아(홍대 담당) 간사를 만났다. 갓페미를 기획한 이유와 행사를 진행하면서 했던 생각, 신앙인으로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보는지 등을 들을 수 있었다.

3월 8일, '갓페미'라는 이름 아래 IVF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모여 페미니즘 토크를 나눴다. 60여 명이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전해운 간사가 만든 '갓페미' 스티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갓페미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전해운 간사(전) / 지난해는 페미니즘과 관련해 여러 일이 있었다. 한국 사회는 강남역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여성 혐오'가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IVF는 사회문제에 반응하고 공부하는 특성이 있다. 여성 혐오나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이 이슈를 놓치지 않고 학생들과 풀어 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지난 학기 IVF 서서울지방회는 "여자들은 잠잠하라"가 나오는 고린도전서를 본문으로 성경 공부했다. 이 본문으로 여성 발언권을 막는 한국교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바울은 종이나 주인, 가난한 사람이나 부한 사람, 여성이나 남성 모두가 복음 안에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 구절로 판단하기 보다 전체적인 바울 사상을 봐야 한다고 당시 이야기 나눴다. 이화여대 백소영 교수님을 모시고 '성경과 여성'을 주제로 연합 예배를 하기도 했다. 간사들은 물론 학생들도 페미니즘책을 읽으면서 젠더 감수성을 키웠다.

표선아 간사(표) / 내부에서도 우리의 상황을 생각해 볼만한 계기가 있었다. 다함께 모인 자리에서 나온 설교를 듣고 몇 학생들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간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던 터라, 설교에서 나온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이후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 보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미빛 간사(장) / 지금 우리 셋이 함께 살고 있는데, 그것도 한몫한 것 같다. 사역 끝나고 와서 셋이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같이 페미니즘 이야기도 많이 한다. 갓페미도 셋이 이야기하면서 만들어진 행사다. '이 이슈는 한번쯤은 짚고 갈 필요가 있구나'라는 점에 서로 동의했다.

'갓페미'는 IVF 서서울지방회에서 캠퍼스 간사로 활동하는 세 간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왼쪽부터 표선아·전해운·장미빛 간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 당일 참여한 남성 숫자가 좀 적었던 것 같다.

장 / 처음부터 남성 숫자를 10명으로 제한했다. 여성이 50명 정도 됐고, 남성은 10명이 채 안 됐다. 원래 기획이 여성들만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하자는 거였다. 그런데 준비하면서 남학생들도 참가하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 의견을 수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더욱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남성을 한 그룹에 한 명씩 넣을 것인지 자원봉사로만 받을 것인지 고민하다가 남성은 남성끼리 이야기하도록 했다. 남성이 그룹에 한 명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여성들이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할 거 같았다. 여성끼리는 이야기하다 보면 공감대가 생기는데, 남성에게는 이게 왜 성차별이 될 수 있는지 한 번 더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이 시간만큼은 필터링 없이 마음껏 자기 이야기를 하기를 바랐다. 또 모르는 남성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고 그래서 일부러 제한을 두었다.

- 학생들 반응이 뜨거웠다.

표 / 일단 자기 이야기를 하고, 여자들이 주체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장이 그동안 전무했다. 그 점이 학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만들었던 거 같다.

장 / 학생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졌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이전 같았으면 IVF가 페미니즘 강의를 듣거나 성경적 관점으로 페미니즘을 나누는 방식으로 접근했을 거다. 그런데 갓페미는 그들이 주체가 되어서 말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내가 유별나서 그런 건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둘 모이니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불편함이 페미니즘 이슈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학생들은 그걸 좋아했던 거 같다.

전 / 사회에는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강좌나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학생들은 이 주제를 자신이 신뢰하는 공동체(IVF)에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 장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IVF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마음껏 말하는 시간을 마련했으니,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다.

표선아 간사는 갓페미 때 '여성 사역의 길'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공동체 안에 여성 사역자의 롤모델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갓페미에서 '여성 간사의 길'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여성 간사로 살면서 힘든 점이 있나.

장 / 학생들과 예배하면서 교단 총회에 여성 총대가 없는 현실을 보여 주는 영상을 보았다. 그때는 한국교회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구조가 선교 단체 안에도 있다. 여성 시니어 간사들이 별로 없다. 롤모델이 되는 여성 사역자가 없는 것이다. 상위 리더십이 모두 남성이다 보니 연차가 올라가면서 결혼·육아로 대두되는 고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표 / 캠퍼스 사역 간사 중 육아휴직을 하면서 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른 지방회에서 육아하시면서 캠퍼스 사역하셨던 분이 계시긴 했는데, 얼마 안 돼 그만두셨다. 아이를 낳고 다시 오신 케이스가 흔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봐 온 여성 간사들은 대부분 3년이나 6년 임기를 마친 뒤, 결혼하고 육아를 했다.

전 / 간사가 되기 전 인터뷰를 하는데 "남자친구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남자친구 있는 사람은 "결혼 언제할 거냐"고 묻기도 하고. 간사를 준비하는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받은 질문이었던 거 같다.

남성들도 받는 질문이기는 했는데, 뉘앙스 차이가 있었다. 남성은 격려 차원에서 질문을 받는 반면, 여성은 사역을 위해 미뤄야 하는 일처럼 느끼게 했다. 물론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한 명이었지만, 여성 간사는 은연중에 일하려면 결혼을 뒤로 미루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해운 간사는 다른 간사들과 페미니즘 책 나눔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참가자들이 갓페미 후기도 많이 썼던데.

전 / 그날 갓페미를 마치면서 참가자들이 쪽지에 느낀 점을 썼다. 집에 와서 참가자들이 쓴 내용을 하나씩 보면서 울컥울컥했다. 그날은 우리가 답을 주거나 강의를 하거나 궁금한 것을 풀어내는 시간은 아니었다.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만 만들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했다. 그 진심이 느껴지니까 얼마나 이런 장이 없었을까 싶어 짠했다.

공통적으로는 '이게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구나', '내가 유별나거나 까탈스러운 프로 불편러가 아니구나'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자신이 겪어 왔던 게 일반적인 여성의 현실인 것을 깨달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표 / 한 남성은 "비주류가 돼 보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날 여성이 5배 정도 더 많았으니까. 남성들은 갓페미가 열린 강의실에 들어올 때부터 약간 주저했다고 하더라. 내가 여기 들어가도 되는지 눈치 보이기도 하고. 남성은 자신이 소수가 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잠시나마 '비주류가 되는 게 이런 거겠구나' 싶었다고 하더라.

장 / 여러 반응이 기억난다. 'IVF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 줘서 고맙다'라든지 '신앙과 페미니즘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됐다'라는 걸 보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

- 나온 얘기들을 바탕으로 책자를 만들겠다고 했다.

전 / 당일 나왔던 이야기들을 모아서 상반기 안에 만드는 게 목표다. 전국 지방회 간사들에게 배포할 생각이다. 일단 간사들은 공동체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지금 현재 학생들의 변화하는 생각을 잘 캐치하지 못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지금 학생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여성 혐오적인 설교를 들었을 때 불편해한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다. 여성을 혐오하는 설교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니까.

표 / 어떤 사람에게는 페미니즘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익숙해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설교 부분만 보더라도 한국교회는 설교자가 갖고 있는 권위를 중시하니까 한 번에 바뀌기는 어려울 거 같다. 공식적으로 설교자에게 이런 설교를 금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해결 방식을 고민해 요청할 수밖에 없다.

장 / 간사나 설교자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우선 학생들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설득력이 있고 사역자가 더 절실하게 느끼겠다 싶었다. 수련회 경우, 지금까지는 대표 간사나 총괄 디렉터 간사가 설교자와 소통했다. 누군가를 거치면 100%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소책자를 만들어 학생들 생각을 전달하기로 했다.

장미빛 간사.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갓페미를 준비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각자에게 페미니즘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전 / 페미니즘이 복음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예전에는 불편하지 않던 말과 시선이 불편해졌다. 처음에는 집에 와서 무작정 울기도 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걸 알게 하셨나요' 하면서(웃음). 그때는 정말 심각했다.

그럴 때 <특강 예레미야>(김근주, IVP)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 마음을 울린 구절이 있다. 예언자들은 가장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의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약한 자, 가난한 자와 함께한다는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페미니즘은 여성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복음과 페미니즘이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표 / 나를 알아 가는 과정이 복음과 비슷하다. 복음을 알고 내가 죄인임을 깨달으면서 회심을 하지 않나. 이와 비슷하게 나는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가 누구인지 더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있는 여성성이 사회에서 학습된 여성성인지 아니면 원래 나의 기질인지를 하나씩 물어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나 스스로가 새롭고 신앙적으로도 물음을 던지게 된다.

장 / 복음을 알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듯이,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서 여성을 배제한 채 살 수 없다. 갓페미에 온 참가자가 '하나님도 페미니스트인가요?'라고 쓴 걸 보면서, 결코 하나님은 여성이 이런 대우를 받기 원하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등하게 지으셨다면, 여성이 여성스러움에 갇히지 않고 같이 어울려 살아가기를 원하셨을 텐데 지금 세상을 보며 안타까워하시겠다 싶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 많은데, 그중에는 여성 문제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고 나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그러니까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면서 함께 풀어 가야 할 중요한 이슈라고 본다. 갓페미를 하면서 이 부분에 사명감을 더욱 느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