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인용에 분노한 탄기국 회원들이 헌재로 행진하려 하자 경찰이 막아서며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했다. 한쪽에서는 기뻐 함성을 질렀고, 다른 한쪽에서는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3월 10일 안국역 일대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하던 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회원들이 헌재와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면서 경찰 버스와 차벽을 부쉈다. 이 과정에서 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등 사상자가 발생했다.

불상사가 일어난 이유가 있다. 경찰 병력이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인데도 주최 측은 애국 시민의 힘을 보여 주자며 불법 행진을 독려했다. 무대에서는 "언제까지 앉아서 태극기만 흔들 것인가", "자리에서 일어서 달라",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 달라"는 호소가 계속됐다. 흥분한 시민들은 경찰 버스 창문을 깨뜨리고, 밧줄을 묶어 버스를 끌어당겼다.

무대 뒤편에서 폭력 시위가 한창일 때, 진실을 호도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뚫고 나가자는 이분들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 말해도 듣지 않는다. 연좌로 하실 분은 하시고, 각자 알아서 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청와대 앞에는 촛불 용공 세력들이 대통령을 한시라도 끌어내리겠다고 청와대 앞쪽으로 몰려갔다. 그쪽에는 차벽이 없다. 300여분 정도 청와대 앞으로 가서 저 촛불 세력 만행을 막아 달라."

그러나 이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이날 경찰은 청와대를 시작으로 안국역 일대까지 경찰 버스로 길목을 막았다.

탄기국 집회는 총체적 난국을 맞았다.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등 시위가 과격해지자 경찰은 최루가스를 쏘며 맞섰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중·노년층이었기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무대도 난장판이었다. 서로 마이크를 잡겠다며 승강이를 벌였고, 공지 사항도 자주 바뀌었다. 무대를 바라보다 지친 노인들은 아예 등을 지고 앉았다. 고개를 떨군 채 태극기만 흔들거나, 자리를 뜨는 사람도 보였다.

무대 위에서는 서로 마이크를 잡겠다며 승강이를 벌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두고 집행부는 먼저 자리를 떴다. 박사모 회장과 탄기국 대변인을 맡고 있는 정광용 씨가 무대에 섰다. 그는 "특공대를 조직해서 박근혜 대통령 자택을 보호해야 한다. 자택은 삼성역에서 아주 가깝다. 제가 지금 대통령 자택으로 가려 한다. 여기는 여러분이 꼭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가겠다고 하면서 정작 집회 참가자들에게 자리를 지켜 달라고 한 것이다.

정 씨는 "경찰이 최루탄을 쐈다. 최루탄이 좀 맵다. 쏴도 흩어지지 마라. 흩어지면 지는 거다. 여기는 꼭 성지로, 애국 성지로 사수해야 한다. 사수 뜻이 뭔가. 죽을 '사' 지킬 '수'다. 죽음으로 지키는 거다. 본진을 형성해야 한다. 여기를 지키지 못하면 다 죽는다"고 했다.

정 씨는 경찰이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저는 여러분들을 좀 더 지휘해야 할 것 같다. 도피 생활하면 여러분이 나를 숨겨 줘야 한다. 경찰이 나를 체포하러 오면 막아 줘야 한다"고 했다. '혁명 원서'인 새누리당 입당 원서를 작성해 달라는 말을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예닐곱 명이 달라붙어 정 씨를 호위했다.

탄기국 대변인 정광용 씨는 참가자들에게 현장을 끝까지 지켜 달라고 한 뒤 자리를 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빠져나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몇몇 시민은 정 씨를 향해 "어디를 도망가느냐", "이대로 가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하며 길을 막았다. 정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대를 뒤로한 채 낙원상가 방향으로 힘겹게 나아갔다. 가던 중 정 씨 일행과 길목을 지키던 경찰들이 한 차례 뒤엉키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정 씨는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계속 걸었다. 낙원상가를 지나자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정 씨가 탄 차량은 남산 방향으로 달렸다. 그의 곁을 지키던 한 남성은 사라지는 차를 향해 '필승'을 외치며 거수경례했다.

이날 일부 언론은 경찰이 폭력 시위 선동 문제 등으로 정 씨를 지명수배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지명수배한 사실이 없으며, 정 씨가 폭력을 선동한 사실이 있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사하겠다고 했다.

몸싸움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경찰에 맞서는 탄기국 회원들. 뉴스앤조이 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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