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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만 쉬어도 피폭당하는 경주 나아리 사람들

[현장] 월성 1호기 반대하며 투쟁하는 이들의 외침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최유리   기사승인 2017.03.02  17: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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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기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월성 원전 1호기가 있는 경주 나아리를 찾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지금 기자님도 피폭당하는 중이에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제 곧 집에 가시잖아요. 근데 저희는 아니에요. 계속 피폭당하고 있죠."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경주에서 만난 신용화 사무국장(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은 기자에게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순간 섬뜩했다. 취재하러 가면서 피폭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신 사무국장 말처럼 2시간 동안 참가자들은 피폭당했다. 유독 따뜻했던 바람에 방사능이 섞였는지도 모른 채.

2월 마지막 날, 아침 8시 30분.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예수살기·기독교환경운동연대 ·잘 가라 핵발전소 10만 서명 기독교 본부가 함께 준비한 경주 탈핵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목회자와 교인 30여 명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올라탄 참석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탈핵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을까. 한국교회환경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유미호 실장이 이야기를 꺼냈다.

"환경 운동 처음 시작할 때 관심을 뒀던 게 반핵입니다. 20여 년이 넘기까지 여전히 그 자리, 아니 더 심각한 상황에 머무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인데요. 이번 방문으로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이 완전히 취소됐으면 좋겠습니다."

경주에 있는 월성 원전 1호기를 반대하는 대책위를 만나러 가는 길, 유독 송전탑이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35년 가동된 월성원전
아이들 몸에도 삼중수소

경주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오가는 길만 총 10시간이 걸렸다. '자고 일어나고 휴게소를 들르고'를 반복해 경주에 다다랐다. 창밖으로 여러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구미를 지나 경주로 가는 길이 가까워지자 이곳저곳에 송전탑이 눈에 띄었다. 어떤 곳은 송전탑 숲 같았다. 크기가 다른 송전탑 무리. 적게는 한 줄, 많게는 산 너머로 다섯 줄이 연달아 놓였다.

참가자들이 도착한 곳은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대책위)가 있는 나아리다. 나아리는 월성 원전 1호기가 인접한 마을이다. 원자력홍보관과 식당가를 지나 5분만 걸어 나가면 바다 끝자락에 월성 1호기가 보인다.

나아리마을 상황은 이렇다. 2015년 동국대·조선대 산학협력단과 한국원자력의학원 등 3개 전문 기관이 조사한 결과, 주민들 몸에서 100%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삼중수소는 그 자체로는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삼중수소가 있는 공기를 흡입하거나 피부를 통해 흡수되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핵발전소 가까이 사는 주민일수록 검출 빈도와 농도가 높았다. 어린아이는 성인의 3~4배가 나왔다.

삼중수소는 반감기가 12.32년으로 완전히 소멸하는 데 약 25년이 걸린다. 경주에서 5.8 규모 지진이 일어나고 잠시 원전을 멈췄을 때, 몸속 삼중수소 수치가 감소했다. 그러나 재가동 직후 원래 수치로 복구됐다.

그렇다고 제 맘대로 이사도 가지 못한다. 거주 대책을 뒷받침하는 법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원자로 반경 914m 안에 있는 시민만 이주 비용을 받는다. 현재 나아리의 식당가 및 생활 제반 시설은 914m 바깥에 깔려 있다. 거주민이 피폭 위험성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대책위는 지금이라도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 달라고 주장한다.

대책위는 원자력홍보관 바로 옆에서 2년 넘게 농성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대책위원회는 원자력홍보관 바로 옆에 농성장을 만들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저항하는 의미로 자신들의 관을 짜서 거리에 놓았다. '30년을 피눈물 속에 살았다',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예고된 제2세월호 참사', '죽기 전에 살 곳 찾자'가 적힌 팻말이 곳곳에 놓여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지 921일, 2년 반이 훌쩍 지났다.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이주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소리치지만 관심 갖는 사람은 드물다. 초반에는 대책위가 돈 타 내려고 그런다는 말도 들었다. 경주시장은 한 번도 농성장을 들르지 않았다.

탈핵 기도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홍보관 옆에 자리를 폈다. 부산, 대구 지역에서 온 목회자들도 함께했다. 사람들은 둥글게 앉아 대책위원회 이야기를 들었다. 황분희 부위원장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4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한 황 부위원장. 가족력이 없는 그는 자신이 암에 걸린 게 의아했다. 지금은 혹시라도 손자들이 자신보다 더 고생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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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전기를 싸게 생산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전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지만, 저 원전으로 아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알려 주셔야 합니다. 원전은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없습니다. 제가 올해 70인데, 할머니인 제가 여기 뛰어든 이유는 (원전을) 손자들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입니다. 제 손자 두 명이 피폭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우리 실정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한수원과 정부 당국이 나아리 지역 주민에게 보인 태도를 질책했다. 책임이 없다는 한수원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사투리가 섞인 그의 억양이 조금 더 세졌다.

"한수원과 정부에게 떠들어 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준치 미달, 법이 없다.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겁니다. 왜 책임이 없습니까. 자기네들 때문에 지역 주민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우리는 방사능으로부터 오염돼서 몸에 방사능이 엄청 들어 있습니다. 공기, 물, 먹거리 다 오염됐습니다. 다른 곳에서 사 올 능력도 없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지하수도 그냥 먹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책임이 없습니까. 제발 여러분이 다니시면서 우리가 편하게 전기 쓰는 순간,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으니 뭔가를 해 줘야겠다고 이야기해 주시고 도와주세요."

현장에 방문한 목사, 교인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대책위는 속이 탄다. 매일 피폭당하고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숨만 쉬어도 피폭
떠날 방법은 없어
이주 대책도 전무

황분희 부위원장만 답답한 것은 아니다. 신용화 사무국장도 마찬가지다. 신 사무국장은 11년간 자녀 두 명,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10년 넘게 살았지만 원전의 위험성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역시 한수원과 정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러나 경주에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알음알음 공부하고 경주에 드나드는 기자들을 통해 방사능의 위험성을 인지했다.

지금 그는 100% 방사능에 노출되고 있다. 원전이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방사능 때문에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오염당하는 셈이다. 항상 노심초사하고 겁이 난다. 한수원도 가 보고 국회도 가 봤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우리 소관, 책임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한수원은 몸속에서 나온 삼중수소의 원인이 월성 원전 1호기라는 근거를 대라고 했다. 지진으로 잠시 가동을 멈췄을 때, 삼중수소 수치가 감소했다는 이야기를 해도 통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나아리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부동산에서도 나아리에서 나오는 집을 받아 주지 않는다. 한수원에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고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만 한다. 대한민국은 현행 원자력안전법(제89조)에 근거해 보상을 시행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원자로에서 반경 914m 바깥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주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신용화 사무국장, 황분희 부위원장을 포함한 대부분 주민은 원자로 반경 1km에 거주 중이다.

신용화 사무총장은 914m라는 기준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한국이 법체계로 캐나다 원전 시스템을 가져오면서, 캐나다가 쓰고 있는 법도 함께 가져온 것이다. 캐나다는 원전 주변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게 신 사무총장 설명이다. 그는 한수원이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914m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이는 한국 정부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고 한 일이라고 했다. 법에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으니 지금이라도 법을 제정해 주기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좋은 곳인 줄 알았죠. 근데 대책위원회 활동하면서는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냥 우리 집 사 달라고 했어요. '집 사 주면 한수원에 팔고 나갈게'라고 했어요. 부동산에 내 놔도 안 받아 주거든요. 내 놓을 필요 없다고 해요. 내놔도 아무도 안 들어간다고 말해요. 그러면 저희가 나갈 방법이 없잖아요. 이 집도 저랑 남편이 일하면서 저축하면서 모은 집이에요. 저 집 두고 나가면 저희는 어떻게 살겠어요. 그렇다고 애들을 데리고 월세로 살 수도 없고. 그래서 반은 잊고 반은 인식하면서 사는 거죠."

신용화 사무국장은 말을 마치며, 방문한 사람들, 탈핵에 관심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당부했다. 현재 원전 옆에서 피폭당하는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원전에 문제가 있으니 경주시장과 한수원 사장에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전화로 촉구해 달라고 했다. 법안이 바뀌도록 목소리 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밤 10시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은 여전히 네온사인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일정을 마치고 참석자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다섯 시간을 넘게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산 위에 세워져 있던 송전탑 무리는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자취를 감췄다. 밤 10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의 밤은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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