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의식 있는 여성을 외롭게 만든다. 잠잠하라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말하지 못하게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문제아 취급한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오신다고 일하던 마르다를 칭찬하면서 여성의 모범상을 만든다. 마르다가 좋은지 마리아가 좋은지는 여성 스스로가 선택하게 해야 한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교회 안에서 억압받은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집담회 자리. 패널로 나온 강호숙 박사는 여성을 억압하는 한국교회에 일침을 가했다. 강 박사가 발언하자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맞아"라고 호응했다.

강 박사 말이 곧 교회 현실이다.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성 역할에 조금씩 금이 가는데, 교회는 여전히 굳건하다. 교회 구성원 중 다수인 여성은 교회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봉사한다. 주일만 되면 여성은 교회 안에서 가정일을 한다. 교인들 점심 준비는 물론 꽃꽂이, 청소 등을 도맡는다

일하는 것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교회는 성경 속 몇 구절을 근거로 여성들을 억압한다. 순종을 강요한다. 2월 24일 금요일 밤, 교회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언니들이 자기가 겪어 온 교회 생활을 터놓았다. 함께심는교회(박종현 목사)가 운영하는 카페 플래터스에서 진행된 집담회에는 강호숙 박사(전 총신대 강사), 이정후 교인, 박지원 감독, 최자은 과장(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패널로 함께했다. 박종현 목사가 사회를 맡았다.

교회에서 수십 년간 신앙생활해 온 교회 언니들이 집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정후 씨, 강호숙 박사, 박종현 목사, 박지원 감독, 최자은 과장. 뉴스앤조이 최유리

남성은 성경 공부
여성은 점심 준비
문제 제기하면
"불순종의 영이 있다"

박종현 / 자기 소개 부탁한다.

이정후 / 50대 여성으로 모태신앙이다. 소위 사람들이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4대째 기독교 집안이다. 지금은 가나안 교인이다.

강호숙 /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보수 신앙과 보수 신학을 다져 왔다. 작년까지는 총신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해고된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예배하고 있다.

박지원 / 20분 정도 되는 영화 '교회 언니들'을 만들었다. 교회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영화다. 교회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불편해 1년가량 교회에 안 나가고 있다.

최자은 / 목사의 딸로, 한때 교회 언니였다. 학교나 직장 생활보다 교회 활동에 더 매진했었다. 교수님이 "너는 왜 월요일 아침 수업마다 지각하니?"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지금은 기본적인 교회 생활만 하고 있다.

박지원 감독은 교회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교회 언니들'이라는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박종현 / 교회 구성원을 보면 여성이 대다수인데, 남성이 여성이 억압하는 분위기다. 교회 안에서 어떤 경험을 했나.

최자은 /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개척 교회를 했다. 어린아이들이 오면 내가 예배 시간 내내 아이들을 돌봤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했던 거 같다. 피아노를 배워서 교회 반주도 했고. 이후 아버지가 큰 교회로 가면서는 찬양팀 싱어와 유치부 교사를 담당했다. 목회자가 콘티를 짜는 찬양 인도자나 공동체를 돌보는 리더 자리는 권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리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어색했다.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박지원 / 20살을 기점으로 교회 안 여성 문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목회자가 여자 청년에게 "연애 잘하고 있지?"라고 종종 물었다. '잘'이라는 말이 곧 혼전순결 지키고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남자 청년에게는 묻지 않는 질문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남자친구와 스킨십을 할 때 괜한 찝찝함과 죄책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대놓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웠고. 여자 청년들이 말은 안 했지만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이정후 / 할 이야기가 많다. 현재 가나안 교인인데, 생각해 보면 교회를 떠난 이유가 진리에 대한 거부감 보다는 교회 안 문화에 신물이 나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나를 부적응자로 볼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교회 문화가 전혀 아름답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교회는 여성들이 스스로 경쟁하게 만든다. 누가 먼저 권사 직분을 받고 목사님을 잘 보필하는지 대결하게 하는 것 같다. 여성 교인들은 교회가 정한 틀 안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검열하고 무임금 노동력을 제공한다. 남성이 목사와 성경 공부할 때 여성은 이들에게 제공할 밥을 짓는다. 목회자는 열심히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칭찬한다. 마르다 예를 들면서 말이다. 남성은 뒷짐지고 있고. 이게 반복되고 구조화되면서 점점 남성 중심의 교회가 강화되는 듯하다. 예수님은 나에게 와서 쉬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여성들은 교회 와서도 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전도사님이 교회에서 하루 동안 일할 사람을 찾았다. 몇 번 부탁이 와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부탁 때문에 우리 아이는 다른 곳에 맡겨 두고 교회에 갔다. 한복을 입고 오래서 갔더니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 있는 자리에서 서빙을 시키더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만을 터뜨리니 나이 드신 권사님들은 이것도 못하고 주방에서 부침개 만들고 있다고 했다. 황당했다. 문제를 지적하자 "불순종의 영이 있다"고 말했다.

강호숙 / 나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나보다는 오빠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신학교에 갔다. 그런데 신학교도 가정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성에게 잠잠하라고 하고,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전도사만 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잘못된 것 아니냐고 목소리 내면 박사도 아닌데 이야기한다고 반박했다. 마음 독하게 먹고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해내며 어렵게 박사 학위를 따고 강의했다. 그런데 한순간에 해고를 당했다.

강호숙 박사는 교회가 여성들의 제자 됨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전도는 괜찮지만
안에서는 조용하라는 교회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갖다 버리자

박종현 / 교회가 흔히 말하는 여성상은 무엇인가.

강호숙 / "남편에게 순종하라", "잠잠하라", "여자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남자들을 주관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로 성경 몇 구절을 근거로 든다. 이것들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다. 이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하지만 죽어서 가는 하나님나라에서도 통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무엇이 문화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구분해야 한다.

"잠잠하라"가 나왔으니 말해 보자. 언어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잠잠할 수 있나. 성령을 받아 제자가 돼라는 예수의 명령을 받은 여성의 입을 막으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전파할 수 있겠나. 교회가 오히려 여성의 제자 됨을 방해하고 있다. 웃긴 점은 여성들이 이런 담론을 꺼내면, 교회 밖에서 전도하는 건 또 괜찮다고 말한다. 다만 교회 안에서만 하지 말라고 한다. 이건 진리가 아니다. 현재 교회가 말하는 것들은 문화일 뿐이다. 교회는 진리로 여성을 해방해야 한다.

최자은 과장은 목사 딸로서, 여성으로서 교회에서 불편함을 느꼈지만 문제를 제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박종현 / 사회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 교회 언니들이 보는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최자은 / 페미니즘의 시작은 참정권 문제였다. 당시 투표권이 없던 여성은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성이 소외된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겠다 싶어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됐다. 교회도 이런 관점으로 페미니즘을 봐야 한다. 교회 안에 소외되는 사람이 많다. 장애인이 있고, 동성애자도 있다. 그중 가장 소외된 영역이 어디인가 했을 때 그게 여성이라고 본다. 영화에서 박 감독이 페미니즘은 운동이라는 표현하는 데 동의한다. 페미니즘은 남성에게 있는 의무를 덜어 주고, 여성 권리를 행사하게 하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해 준다.

강호숙 / 페미니즘은 여성 됨의 근원적인 물음이다. 여성 됨이 무엇인지 여성 스스로가 규정하겠다는 말이다. 지금은 남성이 "여성이라면 자고로 이래야지"라는 말을 한다. 여성 정체성과 여성 성 역할을 남성이 정한다. 페미니즘은 이런 남성들 행동이 여성의 자유를 박탈한다고 본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만드는 천부인권을 여성이 스스로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는 게 페미니즘이다. 내가 속한 교단과 학교는 페미니즘을 자유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인간 됨의 문제다. 인간답게 같이 살자는 거다. 인간 됨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 중 일부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열린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존중해야 한다. 이는 불평등을 평등으로 만드는 정의 문제기도 하고 연합하려는 사랑의 가치이기도 하다. 목사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교제 공동체'를 교회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이정후 / 하나님은 인간을 모두 동등하게 지었다. 남성도 1, 여성도 1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회는 여성을 1이 아니라 0.8쯤으로 본다. 문제는 교회도 여성을 0.8로 본다는 거다. 아니 사회보다 더 하다. 0.2를 채워 줘야 할 교회가 오히려 여성의 0.1을 남성 직분자에게 준다. 교회에 가면 늘 여성인 내가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나안 교인 이정후 씨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없애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박종현 / 교회나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교회 언니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자은 / 최근 교회에서 일할 일꾼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교인들이 일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열심히 교회 봉사했지만 사회에서 몸담고 있다 보면 의식이 생긴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청년 시절에도 그랬지만, 교회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언니들은 많다. 그런데 우리 역할이 성경에 기반했을 때 옳은지 말해 주는 교회 언니들은 없었다. 교회 안에서 페미니즘 담론을 끌어내려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개척자 정신이 필요하다. 나도 이런 과정이 힘드니까 교회를 멀리하게 됐고.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교회에서 목소리 내는 교회 언니가 필요했을 것 같다.

강호숙 /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식 있는 여성은 교회에서 왕따가 된다. 문제아 취급한다. 교회는 지금까지 성경을 가부장적인 틀 안에서 해석했다. 성경 구절을 근거로 문제 제기도 하지 못하게 했다. 이제는 여성이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다. 여성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여성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어떤 존재로 지으셨는지 스스로 알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 설교자와 리더가 많이 세워져야 한다. 교회는 결코 남성성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공감과 케어 능력이 높은 여성, 관계의 수평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이 들어오면 사랑과 평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변하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열린 교회가 답이다. 열린 교회를 만들기 위해 여성 목회자 할당제라도 도입하며 좋겠다.

이정후 / 교회 안 여성 문제를 살펴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여러 모양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있다. 침대 크기에 맞춰서 다리가 긴 사람은 자르고 다리가 짧은 사람은 억지로 잡아당긴다. 이제는 그 침대를 다 갖다 버리고 교인들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여성을 상대로 일어나는 마녀사냥이 사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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