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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강간·살인 예고 올라와도 수사 안 해

직접민주주의 표방 '페미광장' 포럼…생물학적 성별, 세대, 공간 초월 연대체 추구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7.02.24  16: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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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주최 측이 준비한 자료집 120부는 행사 시작 전 동났다. 연세대학교 연희관 UN홀 객석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세미나실 뒤편에는 서서, 혹은 바닥에 앉아 발제를 듣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이날 열린 행사와 행사 주제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발제 2시간, 토론 2시간. 참석자들은 주어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토론에 열중했다.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페미광장'은 여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출발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온·오프라인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2030의 등장, "나의 몸은 나의 것"을 외치는 낙태죄 폐지 검은 시위, 촛불 정국에서 나타난 '페미존' 깃발 등 2016년은 '페미니즘' 단어가 여론 전면에 등장한 해였다.

자주 등장했다고 해서 고무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집회에서 발언하는 여성들의 신상이 털렸다. 집회에 참여했다 사진을 찍힌 여성들은 외모 비하, 성희롱, 성적 대상화 등 '여성 혐오'가 담긴 댓글들을 접한 뒤 마스크를 써야 했다. 진보 정치에서도 페미니즘을 논하긴 했지만 늘 후순위였다. 박근혜 퇴진 국면에서도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여성 혐오'가 나타났다.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페미광장' 첫 포럼이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페미광장은 2017년 대선에서 페미니즘 정치의 장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다. 대의정치로 수렴되지 않는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광장 정치. 누구나 와서 발언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광장으로서의 페미니스트 정치의 장'을 만들어 내는 게 목표다. 페미니즘 의제를 정치 의제로도 만들어 갈 예정이다. 2월 23일에는 첫 공식 행사 '페미니즘, 정치의 패러다임을 싹 바꾸자'가 열렸다.

'여성' 정치는 가라
페미니즘 정치가 온다

포럼은 기조 발제와 의제 발제, 토론으로 이어졌다. 기조 발제는 이현재 선생(여성문화이론연구소)가 맡았다. 그는 생물학적인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여성 정치'는 그동안 여성을 잘 대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선생은 남성과 여성으로 대변되는 성별 이분법에 기반한 정치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 '페미니즘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성 정치가 아닌 페미니즘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페미니즘 정치는 여성뿐만 아니라 이성애 중심적 젠더 이분법 때문에 성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되는 모든 사람이 주체 혹은 대상이 되는 정치를 의미한다."

'페미니즘 정치'의 또 한 가지 특성은 '여성 차별'을 경험한 여성들이 다른 모든 차별받는 이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자를 희생 대상으로 삼아 배제하는 모든 종류의 권력을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 정치는 다른 수많은 의제에 밀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여러 의제를 탁 트인 광장에 나와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의제 발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등장하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유림 선생은 '나의 몸은 나의 것'으로 대변되는 낙태죄 폐지 운동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낙태죄는 있어도 잘 적용하지 않는, 있으나 마나 한 죄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과거 '가족계획'이라는 이름하에 묵인되던 낙태는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 수술을 시행하는 산부인과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여전히 낙태죄는 형법상 처벌 가능하며 가족 안에서 여성의 행위를 통제하기 위해 작동한다.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여성이 낙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경우, 당사자가 어니어도 고발 가능하다. 악용의 여지가 있다."

그는 국가가 여성의 난임과 저출산 외에는 '여성 의제'에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정상적'이라는 단어로 정의되는 이성애 결혼 제도권 안에 있는 여성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결혼한 여성의 초음파 진료는 무료고 가족제도 밖 여성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저출산을 논하지만 미혼모 지원책은 없다. 청소년 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실질적인 성교육이 전혀 없다"고 했다.

포럼은 기조 발제와 의제 발제 순으로 이어졌다. 이현재 선생이 기조 발제를, 알바노조 이가현 위원장, 불꽃페미액션 민주 선생, 성과재생산포럼 이유림 선생이 의제 발제를 맡았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어 민주 선생(불꽃페미액션)이 여성의 '월경'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정치 의제들을 소개했다. 세계 각국과 비교할 때 유독 비싼 한국의 생리대 가격, 무상 생리대 지급 결정을 찬양하지만 무상 생리대 지급을 신청하기 위해 '저소득층 자녀'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는 무상 생리대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본인 월경 주기 등 상세한 개인 정보를 담은 신청서를 작성한 후 보건소에 제출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랬을 경우, 1번에 3개월치 생리대 일괄 수급받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이마저도 3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한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월경 경험이 여성의 보편적인 경험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변되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퍼져 나가길 원한다. 여성의 재생산권은 그 사람의 시민권이다. 더 많은 이들이 직접 떠들고 설칠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넓은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정치로 가는데 월경이 주요한 논의의 주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알바노조 이가현 위원장은 유독 여성 노동자들에게만 강요되는 '외모 평가'와 '성적 대상화' 등을 다뤘다. 그는 외모 평가 점수를 매겨 시급에 차등 적용한 CGV '꼬질이' 제도, "외모에 자신 있는 사람만 지원하라"고 했다가 본사 차원에서 사과문을 발표한 쥬씨 채용 과정 사례를 예로 들며,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노동조합을 통해 대응할 경우 해결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혼자 문제 제기하려면 어려우니 여성주의 가치로, 여성주의 의제로 함께 노조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들 발언 막는
'온라인 페미사이드'
왜 수사하지 않는가

이날 참석자들의 가장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주제는 '디지털 성폭력'이었다. '21세기 마녀사냥 온라인 페미사이드'(여성 살해)라는 주제로 이원윤 선생(DSO, 온라인 페미사이드 대항연합)이 발표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호주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한국 경찰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처리한 일이 있었다. 이원윤 선생은 이 사건을 다룬 호주 방송에 출연했다. 호주 방송에 나와 한국 사회를 고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베'의 공격 대상이 됐다. 입에 다 담을 수 없는 인신공격, 언어폭력에 시달리다 고소를 결심하고 경찰에 찾아갔지만 경찰은 "진짜로 한국 남자가 다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고소인이 욕먹을 짓을 했을 경우, 고소가 반려될 수 있다"는 등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한국 온라인 사회에서 여성은 '발언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고, 공격 대상이 된다. 이원윤 선생이 보여 준 사진 두 장이 그 사실을 반증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 뒤 처음 열린 추모 집회 사진에는 여성들 모두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찍은 사진에서는, 모두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 온라인에서 집회에 참석한 여성의 신상을 털고, 모욕적인 비난 댓글들이 오간 것이다.

이원윤 선생은 사진 두 장을 비교하며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온라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 혐오' 발언, 강간 예고, 살인 예고 글이 올라간다. 하루에 수십 개씩. 이원윤 씨와 '디지털 성폭력 아웃'(DSO)팀은 이런 글들을 경찰에 신고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 편이 아니다. 경찰의 대응을 들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한 남성은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 약을 타 먹여 이미 정신이 없는 여성의 나체 사진을 올리고 이 여성을 강간할 것이라고 예고하는 글을 올렸다. DSO는 이 게시물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답은 황당했다. 어디인지도 모르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출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것은 죄가 아닐까. 경찰은 "아직 아무 죄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페이스북에서 자기 계정으로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도 처벌할 수 없다. 경찰은 '서버가 해외에 있다', '댓글이 지워졌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 '페이스북 프로필이 댓글을 단 본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라는 이유로 수사할 수 없다고 했다.

이원윤 선생은 온라인에서 여성이 피해자일 때와 남성이 피해자일 때 경찰의 대응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이트에 올라간 '남자 목욕탕 몰래 카메라'를 예로 들었다. 다른 곳에 돌던 영상이 이 사이트에 올라왔는데, 경찰은 네티즌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했다. 여성이 피해자일 경우에는 본인이 신고해도, 여러 명이 신고해도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던 경찰이 네티즌 '한 명'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이 선생은 '여성이 피해자일 때'는 왜 똑같은 법을 적용하지 않는지 질문을 던졌다.

'온라인 페미사이드'는 온라인에서 여성에게 재갈을 물려 침묵하게 만들려는 집단적 의지가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 더 활발히 발생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여성을 향한 성희롱, 성적 대상화, 언어 성폭력 등은 "마녀사냥당하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라"는 암묵적인 협박을 전제한다.

"이 경고에 대해 '나는 무섭지 않다. 아무리 마녀사냥을 한다 해도 발언할 것이다. 끝까지 저항하고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언제까지 우리가 남성들이 즐기는 포르노의 대상으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발언했다고 사형당하는 마녀가 돼야 하는가. 우리는 포르노 속에 등장하는 대상화된 여성이 아닌, 그냥 온전한 여성, 동등한 인격체로 존재한다고 선언하고 싶다."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을 이어 갔다. 두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참석자들도 악성 댓글 단 가해자를 고소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 선생 말에 공감했다. 한 참석자는 페이스북에 달린 악성 댓글을 고소하려 경찰에 찾아갔지만 받지 않고 반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경찰이 한 일이라고는 가해자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 "당신이 악성 댓글 작성한 사람인가"라고 묻는 것이 전부였다. 가해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면 고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악성 댓글 단 사람이 여성이면 어떻게든 수사를 진행해서 잡아내는데, 남성이면 피해자가 가해자 신상 정보를 찾아서 경찰에 갖다 줘도 수사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페미광장' 첫 번째 포럼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두 시간 동안 토론하며, 서로 같은 점과 차이점을 발견했다. 페미니즘 의제를 말하지만 그 안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페미광장'은 이제 막 시작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포럼과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페미광장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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