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반년 전, 졸업을 앞둔 대학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언론사에 들어가고 싶은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필요한 토익 점수와 자격증, 읽을 만한 책을 묻고, 야근 빈도, 주말 근무 여부 등을 물었다.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어느 언론사를 가도 일은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후배는 알겠다면서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며칠 전, 그 후배가 생각났다. 언론사 취업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물었다. 후배는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법학을 전공했는데, 요즘에는 그쪽이 취업이 잘되는 것 같아 진로를 변경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30만 명이었던 청년실업자(15~29세)가 2016년 43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아실현, 장래 희망은 구직에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일단, 취업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하다.

나의미래공작소(김준영 대표)는 취업을 준비하는 기독 청년들을 위해 '크리스천, 올바른 일과 취업에 대해 말하다'를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은수미 전 의원(더불어민주당)을 강사로 초대했다. 2월 21일 한강중앙교회(유요한 목사)에서 열린 강연에 청년 30여 명이 참석했다.

은수미 전 의원은 일자리를 단순히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악한 사람'이 만들었을까

"여러분에게 일자리는 무엇인가요?" 은수미 전 의원이 참석자에게 질문했다. 일자리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밥벌이가 될 수 있고, 자아실현을 이루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명예를 얻기 위해 일자리를 얻기도 한다.

은수미 전 의원은 일자리를 단순히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여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한 고문 기술자를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제4·5 공화국 때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붙잡아 고문을 가했던 인물이었다. 은 전 의원은 그에게 당시 왜 그런 일을 했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겐 그저 먹고사는 문제였다"며 퉁명스레 답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중하면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먹고살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사고·사색·묵상, 정의와 공정을 포기하는 건 동물과 같다는 말이다.

"문체부 공무원이 악한 의지가 있어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을까요. 위에서 시키니까 한 거죠. 거부하면 노태강 국장처럼 해고되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리게 되면 '악의 평범성'을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악이 꼭 특별한 모습을 한 건 아닙니다. 평범한 얼굴을 하고 우리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문체부 공무원의 행동이, 그 고문 기술자의 태도가, 악의 평범성을 낳는 것입니다."

많은 청년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고시 공부에 전념하거나 대기업에 수십 통씩 원서를 넣는다. 은 전 의원은 구직난을 겪는 청년들이 취업에 몰두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같은 현실이 우려된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시민이 될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은 전 의원은 하루 8시간만 일해도 생계를 해결하고 시민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은수미 전 의원은 자신이 만난 한 아르바이트생과 일용직 근로자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 날, 한 아르바이트 청년이 그에게 물었다. "의원님, 촛불 집회 나가고 싶은데 주말마다 일해야 해서 못 가고 있어요. 야간 수당도 못 받고 최저임금에 불과한 (돈을 받는) 그 일이 저에게는 무척 중요하거든요. 이런 제가 좋은 시민이 될 수 있을까요?"

지난해 총선이 끝난 뒤 성남에서 만난 한 일용직 근로자는 은 전 의원을 보자 갑자기 사과했다. "의원님에게 표를 주고 싶었는데, 투표에 참가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새벽부터 인력 사무실에서 대기해요. 일을 구하면 하루 종일 일하고 귀가하죠. 하루라도 안 벌면 식구들이 굶어요. 투표날도 예외가 아니에요. 일당을 포기하고 은 의원을 찍는다 해도 제 일당이 바로 오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들에게 정치, 이념, 자유, 평등은 먼 얘기다. 개인에게 탓할 문제는 아니다. 은 전 의원은 소시민이 하루 8시간만 일해도 생계를 해결하고 시민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일자리 문제는 개인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치권에 요구해야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좋은 일자리 부족은
정부와 정치권 탓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구직자 모습은 의자 놀이에 비유되곤 한다. 무대에 10명이 있고 의자가 10개 있으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 수는 그대로 두고 의자 수를 줄인다면? 사람들은 경쟁을 벌인다. 은 전 의원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사람은 10명인데 의자는 5개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자를 놓고 계층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이 군가산점제를 놓고 싸우고,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임금피크제를 놓고 갈등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임금과 고용 문제를 놓고 대립한다. 하지만 이건 본질적으로 계층 간 다툴 문제가 아니다. 은 전 의원은 손가락을 정치권과 재벌에게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세율을 높이고, 증여세를 제대로 거두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은 전 의원은 청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최저임금법, 비정규직 문제, 산재 보상 제도 등을 개선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청년 구직자들이 연대해 지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독서 모임이든, 토론 모임이든 일단 모임을 하세요. 일상에서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개진하며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은 SNS가 발달되어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요. 정권이 바뀌고, 관련 법이 제·개정되고 제도화하는 기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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