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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는 어쩌다 '반공'에 사로잡혔나

[인터뷰] 역사학도 강성호 씨 "한국교회, 새마을운동 통해 반공주의에 포섭"

이용필 기자   기사승인 2017.02.18  14: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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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 2월 4일 서울 대한문 앞. 반공을 앞세운 구호들이 끊이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매주 토요일 서울 대한문에서 열린다. 수만 명이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기각', '특검 해체' 등을 외친다. 2월 11일 현장에서 만난 한 목사는 "이번 사건은 누군가가 기획한 것으로 종북 세력과 연관 있다. 나라가 공산화되기 전에 한국교회가 들고일어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는 JTBC를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목에 걸고 있었다.

탄핵 반대 집회에 기독교인도 적지 않게 참석하는 것으로 추측되지만, 여느 시위에 비해 조직적이지는 않다.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해 왔던 대형 교회 목사들도 시국 이야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한국 기독교 흑역사>(짓다) 저자 강성호 씨는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대형 교회 목사들이 지금은 빠질 때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탄핵 반대 집회 메시지는 명확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이고, 반대 세력은 '악'(종북)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철저히 이념 문제로 몰아 간다. 탄핵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빨갱이'로 규정하는 발언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어느 단체보다 이념 문제에 예민하다. 탄핵 반대 집회를 취재하면서, 대체 반공 이념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졌다. 한국교회사를 연구해 온 30대 역사학도 강성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강 씨는 반공주의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정립됐다고 말했다. 1970년 박 전 대통령의 제창으로 시작한 새마을운동을 통해 반공 사상이 확대됐다고 했다. '종교인 새마을운동 교육'을 받은 목사들이 이 운동에 적극 앞장섰고, 교회 저변에 반공 사상이 심어졌다고 했다.

인터뷰는 2월 17일, 강성호 씨가 전남 순천에서 운영 중인 책방 '그냥과 보통'에서 진행했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반공'
탄압받고 월남한 이들의
증오와 원초적 분노"

한국교회 반공 이념은 어디서 왔을까. 역사학도 강성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탄핵 반대 집회를 취재하면서 대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의문이 들었다. 논리는 없고, 반공 이념만 있다. 반공 사상은 한국교회도 못지않은데, 이 사상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그들의 세계관은 여전히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다. 1990년대 이후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알다시피 반공주의는 한국전쟁 전후로 생겼다. 북에서 탄압받고 월남한 이들의 증오와 원초적 분노인 것이다. 반공주의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작은 '미끼'만 던져도 다 들고일어날 수 있었다. 반공주의는 박정희 대통령 때 이론적으로 정립됐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던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 시기를 전후해 반공주의를 수용하지 않았나 싶다.

- 한국교회가 국가로부터 반공주의를 주입받았다는 의미인가.

그런 셈인데, 우리가 잘 아는 새마을운동과 관련이 깊다. 1975~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종교계를 대상으로도 새마을운동을 전개한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성직자를 불러다가 2박 3일 정도 교육을 시켰다. 이때 교육받은 목회자들은 교회만의 새마을 담론을 만들었다. 교인들은 교회를 통해 새마을운동의 논리를 주입받았고, 친권력 사고방식이 형성됐다. '교회' 새마을운동을 주도한 주도한 교단이 최태민이 가입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 교단이다. 새마을운동을 바탕으로 한국 개신교가 반공주의와 친권력적인 담론을 수용한 것이다.

- 새마을운동이 효과를 보려면 참여하는 인원이 많아야 하지 않을까. 당시 교육을 받은 목사는 몇 명이나 됐는가.

교육받은 목회자는 수백 명이다. 이들이 흩어져 각 교회에서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 설교를 했다고 생각해 보라. 반공주의 사상이 저변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당시 내무부가 발간한 자료를 보면, 새마을운동을 다녀온 목사들은 "나는 새 나라 새 일꾼이라는 포부를 가지고 연수를 받았다. 교회 성장을 통해서 교인들에게 이념을 전파하고, 국가 안보와 경제성장을 위해 신앙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새마을운동은 전두환 대통령 때까지 이어졌다. 1985년경 한 진보적인 단체가 교회 새마을운동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 국정 농단이 불거지면서 최태민과 함께 자연스럽게 박정희 전 대통령도 덩달아 부각됐다. 당시 박 전 대통령과 한국교회는 무슨 관계였는가.

1960~1970년대 말 교계 신문들을 살펴보면, 한국교회가 박정희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려고 애를 썼던 흔적이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대통령이 구미상모교회 주일학교 출신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친기독교화하는 것이다.

자료를 찾으면서 괴서(怪書)를 종종 접하곤 한다. 꿈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한 목사는 천국에 있고, 북한 정권에 협력한 목사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아예 박정희 대통령을 기독교인으로 묘사했다. 한국교회는 박정희 대통령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정서가 있었다.

- 한국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이나 딸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애정도 크다. 일부 목사는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며 대형 십자가를 들기도 했다.

십자가 행진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다. 박정희 대통령 때만 해도 십자가 행진은 저항을 상징했다.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울 종로에서 기독 청년들이 가두시위를 했다. 전태일 열사 사건 직후였는데 비인간화된 사회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십자가를 들었다. 그러자 경찰이 십자가를 빼앗아 훼손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십자가는 저항과 정의의 상징이 됐다. 나아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나 '바퀴 달린 십자가'가 나오고, 탄핵 반대 집회에 대형 십자가가 등장했다. 1971년 4월을 기억하는 입장에서 십자가의 의미가 퇴색된 게 아쉬울 따름이다.

- 대형 십자가를 든 이들은 군소 교단 소속 목사들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안마다 목소리를 내온 대형 교회 목사들이 잠잠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분들은 대형 교회를 꾸릴 만큼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가. 비즈니스 감각도 좋다. 치고 빠지는 걸 잘하는데, 지금은 빠질 때라고 판단한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엄청 치고 나가지 않았는가.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는 나무로 만든 대형 십자가가 등장한 적 있다. 뉴스앤조이 현선

"한국교회가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 앞장? 
어불성설"

- 보수든 진보든 한국교회가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 등에 앞장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역사학도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3·1 운동을 보자.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그중 정춘수 목사의 경우, 붙잡혀 신문받을 때 "자치를 이야기한 것이지 민족 독립을 이야기한 건 아니다"고 번복했다. 또 16명 중 절반 이상은 일제강점기 말 친일로 돌아섰다. 기독교가 3·1 운동을 포함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는 건 과대 포장이다.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사회진화론적 세계관은 경쟁의 담론으로 시작했으나, 1930년대 초중반에 큰 좌절을 겪으면서 일제에 협력하는 논리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교회 입맛에 맞게 역사를 재구성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순교자로 인정하는 양주삼 목사 사례를 보자. 그는 1930년대 감리교를 대표하는 목사였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1930년 후반부터 친일로 돌아섰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 세력이 만든 친일파 팸플릿에 양 목사 이름이 들어가 있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잡혔다가 풀려난 기록도 있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납북됐다가 행방불명됐다.

한국교회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할 때 불리한 내용은 '생략'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교인)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초대 감독을 했던 분이 납북돼서 순교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흑역사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은혜만 받을 수 있다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보인다.

민주화 운동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인데, 내부적으로도 소수만 동참했다. 민주화 운동은 소수 기독교인이 전개한 것이지, 한국교회가 앞장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교회 문제,
역사 회의론 빠질 정도로 반복"

강 씨는, 교회 문제는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지금까지 조사해 온 근현대사 속 한국교회와 현재 한국교회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갈수록 타락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1960~1980년대에 일어난 일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큰 사건이 많았는데, 그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목사가 여고생을 성추행하고, 어떤 목사는 권총으로 살인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교회 문제는 늘 있어 왔다. 역사 회의론에 빠질 만큼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차라리 교회가 망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웃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교회는 굳건하다. <뉴스앤조이>, <복음과상황>과 같은 매체가 정화 차원에서 교회 문제를 보도하고 있고, 한국교회 내부적으로 개혁 운동이 전개되면서 유지되는 것 같다.

- <한국 기독교 흑역사>가 3쇄를 넘었다고 들었다.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는가.

안 그래도 두 번째 책을 쓰는 중이다. 하루 종일 작업에 매달리고 있고, 2월 말 탈고를 목표로 잡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2012년까지 한국 개신교가 선거 국면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공명선거 운동의 다양한 결을 살펴보고, 1987년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한 에큐메니컬 진영의 분열을 다룰 생각이다.

복음주의권은 선거법 준수 운동에 머물러 있고, 에큐메니컬 진영은 야권과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극우 보수 세력은 교회 이익을 위해 정치 세력화를 꾀해 온 이력 등이 있다. 이번 책은 한마디로 '선거로 보는 기독교 역사'가 될 듯하다. 우리가 선거운동을 어떻게 해 왔는지 역사적으로 반추하고, 올바른 정치 참여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려 한다.

- 에큐메니컬 진영의 분열?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분열했을 때, 진보 기독교 인사들도 두 갈래로 나뉘었다. 대표적인 예로 김상근 목사는 DJ계였고, 김동완·박형규 목사는 YS계였다. 선거 때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했고, 분열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성찰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 책 출판 이후 강의를 많이 다니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작년에 강의할 때였는데 동성애자 그룹 몇 분이 집단으로 수강했다. 반동성애 진영으로부터 당한 게 많다 보니 기독교에 대해 알고자 했다. 왜 폭력을 휘두르는지 궁금해하더라. 다른 분들에 비해 적극적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출세를 위해 목사가 된 사람은 없느냐는 질문이 기억에 남는데, 사실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웃음) 강의가 끝나고 다른 수강생이, 일제강점기는 아니지만 아는 분 중에 출세를 위해 목사가 되신 분도 있다고 하더라.

- 앞으로도 한국교회사를 파고들 생각인가.

고민 중이긴 한데 공부의 외연을 넓히고자 한다. (한국교회사는) 활동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너무 제한돼 있다. 일단 사람들이 한국교회사에 관심이 없다. 굳이 매달릴 이유가 있을까 싶다. 일반 한국사를 하면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원래는 '국가 폭력'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관심이 많았는데, 'MB 장로'가 등장하면서 전공을 선회했다. MB 등장과 함께 한국 개신교가 이상해졌다는 신호가 피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원 없이 (한국교회사) 자료를 봤기 때문에 이만하면 됐다 싶다. 지금 관심은 1970~1980년대에 자행된 '고문'이다. 파고들면 그 안에 개신교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강 씨가 순천에서 운영하고 있는 책방 '그냥과 보통' 내부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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