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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야말로 페미니즘 필요해

[인터뷰] 복합 문화 공간 '두잉' 김한려일 대표 "사회가 비난할수록 더 크게 외쳐라"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7.02.17  23: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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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강남역 살인 사건, 여혐, 메갈리아, 미러링, 꼴페미, 미소지니(misogyny), <시사IN> 절독 사태, #OO계_내_성폭력. 이 단어들은 모두 2016년 한국 사회를 관통한 키워드 '페미니즘'(여성주의)과 연관 있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단어다.

불편한 단어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북카페가 있다. 이곳에서는 페미니즘 서적 600여 권을 만날 수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책을 분류한 카테고리를 보면 '페미니즘과 종교', '페미니즘 신학', '페미니즘 철학' 등이 있다. 그뿐 아니라 세월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서적 등도 있다. 북카페이기도 하고, 때로는 갤러리, 상담 공간이 되기도 하며, 세미나도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한다.

2월 4일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 페미니즘 카페 '두잉'(Doing)을 찾았다. 7호선 청담역 6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빌딩 지하에 자리 잡은 두잉. 계단을 따라 가게 입구로 내려가는 길에는 신인 작가의 전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장 김한려일 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페미니즘 복합 문화 공간 '두잉'. 이곳은 카페, 갤러리, 세미나실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굴곡진 인생이
페미니즘으로 이끌다

김한려일 씨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을, 동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M.Div.)을 전공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목회상담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목회상담학까지 공부한 전도사가 어떻게 페미니즘 카페를 차리게 됐을까. 그 이유를 물어보려던 찰나 김한려일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신학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페미니즘 카페를 열게 됐는지 궁금하시죠? 하지만 저는 그런 전제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원론적 사고방식이죠. 우리 사회도 잘못됐고, 신학을 공부하는 방향 자체가 잘못 설정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잠자코 그의 신앙 이야기부터 듣기로 했다. 김한려일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에 처음 발을 들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신(김한려일 씨는 인터뷰 내내 '신'이라고 말했다 - 기자 주)을 처음 만나는, 소위 거듭남을 체험했다. 우울증이 심했던 그에게 신은 위로자였다.

계속 교회에 다니던 그는 기독교교육학과를 택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운동권에 몸담았다. 대학가 반정부 투쟁이 한창이던 1986년이었다. 선배들에게서 유물론적 무신론을 접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신의 존재를 인간이 인정하고 말고 하는 게 의미가 없어 보였다. 신과 한순간도 떨어져 본 적 없이 살았다고 믿었는데, 이런 생각이 드니 괴로웠다.

"내가 신이 있다고 하면 신이 있고, 없다고 해서 없다면 그게 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이 있다고 말하는 자체가 자기가 신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은 '신은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정의하는데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유물론적 무신론에 빠진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데는 또 한 번의 개인적인 체험 때문이었다. 대학교 3학년, 집을 나오기로 결심하고 처음 자취방을 구했는데 하필 강도가 들었다. 강도가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고 싶냐"고 물으며 수차례 위협할 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던 신이 없다면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잠겨 살 때였기 때문이다.

그때 신을 만났다. 감정이 있는 온전한 인격체가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체험이었다. 다행히 강도는 돈만 들고 나갔다. 그때 김한려일 씨는 신이 자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꼈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자신처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상담해 주는 카페를 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두잉' 김한려일 대표가 독자들에게 추천할 책을 고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신학교 동기와 결혼했지만 남편은 김한려일 씨에게 집착했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사랑을 증명하려던 남편은, 툭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두 아이를 키우게 됐다. 일을 해야 했고 그렇게 워킹맘이 됐다. 교계 방송국, 자영업을 거치며 아이 둘을 키워 냈다.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상담에 미련이 남았다. 2008년, 뒤늦게 이화여대에 입학해 일하면서 공부를 마쳤다. 2010년 <여성주의 목회상담학 방법론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회상담과 여성주의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였다.

젊은이들과 소통 위해
복합 문화 공간 만들어

김한려일 씨는 늘 외로웠다. 마음 나눌 친구가 없었다. 동년배 친구들은 나름 특이한 그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매 맞는 그를 보며 "나는 사랑받고 잘 사는데 너는 그렇지 못해 불쌍하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는 워킹맘인 김한 씨를 앉혀 놓고 '일하는 여성들'을 비난하곤 했다. 외로웠던 김한 씨는 이화여대에서 목회상담학을 공부하며 만난 20대, 30대와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됐다.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선 지금 그가 꿈에 그리던 페미니즘 카페를 연 것도, 더 많은 20~30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다. 김한려일 씨가 보기에 지금 20대 페미니스트들은 굉장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자신과 달리, 이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 "가서 더 배우고 와라",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20대가 고맙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행동하는 페미니스트가 확실히 많아졌다. 더디긴 하지만 사회 인식도 변하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조금 더 진일보하는 걸까. 그러나 김한려일 씨 입에서는 의외로 "절망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30년이 지났지만 사회는 더 악해졌어요. 변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만 더 똑똑해졌죠. 남성들은 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에게 공격당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따라서 '여성 혐오'도 눈에 보이게 증가했고요. 인적 자원이 풍부해진 것은 희망적이지만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절망적이라는 뜻이에요."

'두잉'은 북카페를 표방한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페미니즘 관련 책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여성주의를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그만큼 사회적 반발도 크다. 조금만 여성주의를 입에 올리면 '메갈'이라며 비아냥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페미니즘보다 인권 운동이 먼저"라는 해괴한 논리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페미니즘을 외쳐야 하는 이유는 뭘까.

"메갈리아 때문에 페미니즘이 욕을 먹어요.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 이래 페미니즘이 이렇게 이슈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나 싶어요. 없었죠. 시끄럽다고, 욕먹는다고 멈춰야 할 게 아닙니다. 분명 그 싸움 가운데서 건질 게 있어요. 욕하는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이게 대체 뭔가' 하고 들여다봅니다. 가만히 있으면 무시하는데 계속 얘기하면 무서워합니다. 말조심하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계속 외치고 싸워야 해요."

변화 원하는 교인들
기다리지만 말고 움직여야

김한려일 씨는 자신을 "종교는 없는데 유신론자"라고 말한다. 한때 문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교회.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말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기독교가 만들어 낸 신을 믿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김한려일 씨는 기독교가 예수를 신격화하고 그를 '종교'로 만드는 과정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종교가 사람을 우매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배운 예수는 기독교가 말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여성을 인간 취급하지도 않던 시대에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도,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 아닌 "예수처럼 행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요. 예수는 나처럼 행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 구원은 한국교회가 말하는 천국을 뜻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범주 내에서 구원이 천국 가는 것이라고 정했겠죠. 복음을 굉장히 가벼운, 돈 주고 살 수 있는 티켓처럼 여기게 됐어요."

그는 한국교회에 더욱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교 중에서도 유독 개신교가 사회와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한려일 씨는 "교회가 사회·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도 심하게 뒤떨어져요.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고립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직접 행동에 옮기자는 뜻으로 장소 이름을 '두잉'(Doing)으로 정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에서 실천할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목회자 중심인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자가 변하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목회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교인 중 사고가 트인 사람들이, 누가 뭘 해 주기 기다리지 말고 먼저 행동하면 좋겠어요. 관심 있는 교인들이 모여 책이라도 읽으면 좋겠죠. 그리고 알았으면 목사에게 질문을 해야 해요. '목사님, 그건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야 해요.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더 능동적이어야죠."

페미니즘에 문외한인 교인들이 입문할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강남순 교수의 <현대 여성신학>(대한기독서회), 메리 데일리(Mary Daly)의 <교회와 제2의 성>(여성신문사)을 추천했다. 후자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지만 '두잉'을 방문하면 읽을 수 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카페 벽면에 걸린 '두잉 페미니즘'(Doing Feminism) 에코백이 눈에 들어왔다. 왜 '러닝(Learning) 페미니즘' 혹은 '스터딩(Studying) 페미니즘'도 아닌 '두잉(Doing) 페미니즘'일까.

"신학도 공부하거나 배운 뒤에 끝이 아니라 실제로 삶에 녹여내야 하잖아요. 페미니즘을 배우고 아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몸소 행동에 옮기자는 뜻에서 '두잉'으로 지었어요. 삶과 일치하지 않는 학문, 머릿속에만 있는 학문은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페미니즘 복합 문화 공간 '두잉'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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